새벽 정진은 집중이 잘 되는 편이다. 밤새 머리와 몸속을 다 비웠으니 정신이 맑아진 덕일 것이다. 오늘은 호흡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기로 마음먹었다. 호흡을 관찰해 집중력을 키우지 않으면 수행에 진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없이 일어나는 망상은 알아차리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고, 다리와 등에 찾아오는 저림과 쑤심 등의 통증은 그대로 관찰하면 가라앉는다는 이치를 알았으므로, 호흡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수행 장소인 법당으로 가서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3배를 올린 후 마음을 가다듬고 자리에 앉았다. 시작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므로 정성껏 다리를 포개 평좌(平坐)의 자세를 잡았다. 일단 자세를 잡으면 도중에 움직이거나 고쳐 앉는 것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자세를 고치는 순간 사띠를 놓치게 되고, 아무래도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심호흡을 하듯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렇게 몇 차례 호흡을 하고나니,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왔다. 차츰 호흡이 자연스러워지고, 의식적으로 아랫배의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했다. 망상이 떠오르면 ‘즉시 떠올랐구나,’ 라고 알아차리고는 이내 다시 호흡에 집중하기를 거듭했다. 처음부터 평좌 자세에 신경을 쓴 덕인지 무릎이나 어깨, 등에 손님처럼 찾아오던 통증이 미미해졌다. 밤에 충분한 수면을 취했으므로 혼침(昏沈) 현상도 찾아오지 않는다. 놓치지 않고 호흡에 집중하리라는 다짐이 뇌리에 또렷해졌다.
호흡의 세기가 조금씩 약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 변화를 흥미롭게 관찰했다. 그렇게 10분쯤 관찰을 했을까. 호흡이 점점 가늘어지기 시작한다. 호흡이 미세해지면서 어느 순간 호흡이 멈춰졌나? 하는 의문이 일어났다. 이러다가 숨이 멎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운 마음이 일순 찾아온다. 그러나 순간순간, 그런 망상들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숨이라도 멎으면 어쩌나 하는 공연한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시 미세하게 이어지는 호흡을 관찰했다. 그 순간, 나는 뒷골부분에 작은 파동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파르르, 파르르, 파동은 수초 간 이어지다가 1초쯤 멈추고, 다시 이어지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처음 경험하는 현상에 내심 당황했다. 이게 뭐지? 지금 바르게 가고 있는 건가? 순간 어김없이 망상이 틈을 비집고 들이닥쳤다. 아 망상! 망상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린 후 다시 호흡에 집중하니, 다시 사라졌던 파동이 찾아왔다. 수초 간 파동이 이어지다가 멎고, 다시 이어지다가 멎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처음으로 경험한 파동 현상에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런 의문은 나중에 사야도와의 인터뷰나 먼저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선배 수행자들에게 물으면 될 일이라 생각하고, 다시 호흡에 집중했다. 또 다시 두어 차례 파동이 일어났다가 지나갔다. 파동이 흐르다 멎는 체험을 관찰하다보니, 어느 새 한 시간 동안의 앉음수행 시간이 마무리되었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종이 울리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일어서지 않고 앉아있었다. 왠지 뿌듯한 만족감을 쉬이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어지는 아침 예불 시간에도 난생 처음 경험했던 파동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예불이 끝난 후 아침 죽 공양을 마치고 나서, 나를 테라와다로 이끌어주신 도이 법사님께 새벽정진에서 경험한 파동에 대해 물었더니,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신다.
“아, 그것은 호흡이 미세해지면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호흡이 멎는 듯 한 느낌이 들지만, 호흡이 멈춘 것은 아닙니다. 그럴 때 느껴지는 파동은 아주 좋은 진전이니까 더 열심히 정진하세요. 경우에 따라서는 파동이 한 시간 내내 지속되는 경우도 있어요. 호흡이 완전히 멈췄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럴 때는 몸 전체를 스캔하듯 관찰하고, 그 상태를 앎, 앎, 앎 하세요.”

 

 

 

예불에 이어 아침 죽 공양이 이어졌다. 오늘 아침 죽 공양은 쌀죽과 야채수프, 반숙달걀과 바나나 각 1개 등으로 차려졌다. 간식처럼 가볍게 먹는 죽 공양으로는 적당한 수준의 차림이다. 그런데 마침 오늘은 공양 올리는 후원자가 없다.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이런 날에는 수행센터 자체에서 공양을 차리게 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날에는 약간의 문제가 생긴다. 스님들과 한국에서 찾아온 특별한 미얀마 수행자들에게는 좀 다른 차림이 나왔기 때문이다. 일반 띨라신(여성출가자)이나 일반 재가 수행자들의 상에는 쌀죽과 계란, 바나나가 놓여 있지 않았다. 연유를 알아보니, 선원 자체의 재정형편이 넉넉지 않아 공양후원자가 없는 날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먹는 것 갖고 차별하는 것이 가장 서러운 일이라는데 가슴 한 쪽이 아파온다.
마하시 센터 등 다른 유명한 수행센터처럼 담마마마까도 이른 시일 내에 더 많은 후원이 줄을 잇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한국 비구니 혜송스님의 놀라운 원력과 성취를 오직 혜송스님의 일로만 맡겨둘 일이 아니라, 한국의 불자들이 지원하고 후원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행의 본향인 미얀마에 혈혈단신 날아와서 이 경이로운 불사를 일궈낸 혜송스님은 그야말로 한국불교의 자랑이요, 자부심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한국의 어느 스님도 이런 정도로 한국불교의 위상을 높인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더구나 불교의 수행전통이 살아 있는 나라 미얀마에서 당당하게 정부로부터 불교를 일으킨 공을 인정받아 큰 상도 받고, 수많은 미얀마 불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혜송스님의 어깨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드리기 위해 우리 일행은 작지만 정성을 모으기로 했다.
 
그런데…, 오전 앉음수행에서 파동을 체험하는 ‘성과’를 거둔 탓인지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졌다. 그 이상의 성과를 오후 앉음수행에서는 기필코 이루어내겠다는 욕심이 생긴 탓이다. 그러나 오후 12부터 시작한 좌선 수행에서는 망상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혼침까지도 밀려온다. 집중을 하려고 애를 써보지만 머리와 뒷목만 더 뻐근해올 뿐이다. 용을 쓴 탓인지 서늘한 날씨인데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수행의 성과에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바 있었는데 과연 그랬다. 2~3시간 진땀을 쏟다가 4~6시 수행에서는 마음을 비우고, 아랫배의 일어남 사라짐에 집중했다. 뱃속의 변화나 흐름에 집중하겠다는 욕심을 일단 접고 배의 부품과 꺼짐에 집중하니, 호흡이 조금은 편해졌다. 이제 막 집중력을 키워가는 걸음마 단계일 뿐인데 지나치게 서둘렀다. 애당초 미얀마 행을 결심했을 때, 혼자서도 수행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기초를 닦자는 것에 목표를 두었으니, 일단 마음부터 비워야겠다.

 

오후 2시 한국관에서의 법회시간이다. 혜송스님은 어제부터 열리는 법회축제와 관련하여 붓다에 대한 공양이 얼마나 얻기 어려운 공덕인가에 대해 설명했다. ‘붓다부자냐부에’(부처님께 공양 올림)에 대한 설명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우기(雨期), 즉 6월 보름부터 9월 보름까지 우안거(雨安居)를 했습니다. 우안거가 끝나면 10월 보름까지 한 달 안에 ‘까티나 축제’를 했습니다. 스님들께 가사공양을 올리는 매우 중요한 축제였습니다. 부처님 당시 코살라 국의 왕자들이 사르나트(녹야원)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도와 과를 얻었습니다. 이들은 부처님을 따라 코살라국 사왓티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도중에 엄청나게 비가 내려 가사가 다 젖었습니다. 아랫 가사, 윗 가사는 물론 여분까지도 다 젖었습니다. 부처님의 비에 홀딱 젖은 왕자들의 모습을 보고 카티나 축제, 즉 가사불사를 시작했습니다. 우안거를 해제한 후 한 달 안에 하루를 잡아 어떤 곳이든, 어떤 것이든 갈 수 있고, 보시를 받을 수 있게 허락한 것입니다. 이날 이후 불교에서는 까티나 축제가 성대하게 열렸고, 미얀마에서는 지금까지도 이 전통이 그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는 ‘결제 중에 돌아다니다가 죽은 비구는 시체도 거두지 말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결제 기간 중에는 이 나라 사람들은 결혼식도 하지 않습니다. 결제 중에는 음악도 듣지 않고,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행사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부부사이에도 성관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해제일이 다가오면 축제 준비로 난리가 납니다. 해제일이 되면 풍등을 날리고, 촛불을 켜고 신도들이 정성을 모아 까티나 축제를 엽니다. 미뤘던 결혼식도 한꺼번에 치러져 온 나라가 시끌벅적합니다. 이번에 담마마마까 선원에서 여는 법문 축제도 이런 일환으로 마련한 것입니다. 어제 우 타야로 사야도의 법문에서처럼 불사의 공덕을 지을 기회를 만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은 사리탑 준공 기념 법회축제의 두 번째 날로 담마마마까의 최고지도자 에인다까 사야도께서 설법에 나서는 날이다. 한국에서 온 수행자 일행은 에인다까 사야도에게 보시를 올리기로 하고 조금씩 정성을 모았다. 사야도의 법문이어서 그런지 어제 법회보다 더 많은 불자들이 함께했다. 오늘 에인다까 사야도의 법문 주제는 ‘불행 속에서 법을 만나 행복을 찾다’이다.

 

 

 

“사왓티에 열심히 사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부부는 부처님이 가장 오래 머무신 사왓티에 살면서도 일을 하느라 부처님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죽기 살기로 일을 해 부자가 되었고, 아들 일곱 명을 낳고 또 딸도 일곱 명을 낳았습니다. 이들 부부는 아이들을 잘 키워 모두 출가를 시켰고, 14명 자식 모두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재산도 주었습니다. 어느 덧 이들 부부도 늙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충분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죽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떠났어도 아내는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살았습니다. 그러자 자식들은 혼자 남은 어머니의 재산을 탐내기 시작했습니다. 14명의 자식들이 차례로 찾아와 어머니도 혼자 사시지 말고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눠주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여생을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시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끄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자식들의 집요한 요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할 수 없이 재산을 14명의 자식들에게 균등하게 배분하고 자신에게는 방 한 칸 남기지 않았습니다. 늙은 어머니는 제일 먼저 큰 아들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맏며느리의 불만이 시작되었습니다. 첫째라고 해서 재산을 더 준 것도 아닌데 왜 우리 집에만 있느냐며 노골적으로 홀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할 수 없이 늙은 어머니는 둘째 아들 집으로 갔지만 여기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아들 7명의 집에서 나온 어머니는 첫 딸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아들은 남의 집 딸을 아내로 맞아 불편했겠지만, 딸은 직접 낳았으니 좀 낫겠지, 하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정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맏사위가 맏사위라고 해서 재산을 더 준 것도 아닌데 왜 우리 집에만 있느냐며 구시렁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늙은 어머니는 이렇게 해서 7명의 딸집에서도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14명이나 되는 자식에게 버림을 받은 어머니는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었고, 자식을 잘 키워 다 출가를 시키고 모든 재산을 나눠주었지만 자식들에게 푸대접을 받고 내쫓긴 신세가 되었으니 스스로가 한심했습니다. 자식들에게는 정나미가 떨어졌습니다. ‘자식은 없는 셈 치자.’고 결심을 했지만 오갈 데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된 늙은 어머니는 무상을 절감하며 출가의 마음을 냈고, 사왓티의 비구니 상가를 찾아가 허락을 얻어서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재산도 다 잃고 자식도 다 버린 후에야 불법을 찾아온 늙은 어머니는 상가에 들어와 온갖 궂은일을 다하며 틈틈이 정진을 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출가를 했으니 시간이 없다. 여기서 더 늦추면 앞으로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라고 생각한 늙은 어머니는 하루 종일 손이 마를 겨를이 없을 만큼 바빴지만 정진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새벽부터 점심공양 때까지 일을 하고, 오후와 밤사이에 정진의 고삐를 바짝 죄었습니다. 수행을 하다가 지치면 ‘그래도 지금 수행을 해야지, 더 늙으면 더 힘들다.’라고 생각하고 위빠사나 수행을 열심히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꾹 참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했습니다. 남의 눈에 띠지 않는 장소에서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수행법 4가지를 철저하게 실천했습니다. 오전에는 몸 움직임을 사띠했고, 두 번째는 느낌을 관찰했습니다. 세 번째는 마음을 관찰했고, 네 번째에는 담마를 관찰했습니다. 들리고 보이는 성품들의 생멸을 즉시즉시 관찰하여 알아차리자 집중력이 생겨나 생멸을 알고, 생멸을 알자 곧 도과와 열반을 성취했습니다. 이 비구니 스님이 바후보티까입니다. 이 비구니는 불효한 자식들 때문에 자신이 성스러운 길에 접어들었다고 오히려 고마워하며 더 열심히 살았습니다.”

 

에인다까 사야도의 법문이 끝나자 야단법석에서 경청하던 3백여 사부대중들의 표정에는 환희로움이 넘쳐났다. 하늘에서는 알 수 없는 비행물체가 불빛을 번쩍이며 선회하더니 잠시 멈췄다가 날아가 버리는 신이한 광경도 있었다. 교계 최고의 파워블로거로 알려진 ‘진흙속의 연꽃’ 이병욱 선생은 UFO라며 동영상 촬영을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드론처럼 보였다. 하긴 드론이라는 것도 확실치가 않으니 미확인비행물체(UFO)라고 해도 맞겠다며 마주보고 서로 웃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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