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이한상 거사의 신문기사 자료집이 출간됐다. <덕산 이한상>(活불교문화단)이라는 이 책은 책의 제목 앞에 ‘불교의 등불, 사회의 목탁’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덕산 거사의 일생을 한 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이처럼 위대한 활동을 했던 덕산 이한상 거사는 그러나 오늘날의 불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유는 그가 출가한 스님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그토록이루고자 했던 한국불교의 발전이 지지부진한 탓이기도 하다.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에 대한 재조명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그들이 한국불교를 향해 보여준 단심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있을 때, 제2, 제3의 덕산 거사가 탄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작업에 우리 한국불교는 너무나 소홀해왔다. 더더구나 재가불자에 대한 평가는 소홀을 넘어 인색하기까지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이제는 그 자신들도 인생의 회향지점에 와 있는 덕산 거사의 후학들이 뜻을 내고 힘을 모아 이런 책을 출간한 것은 매우 아름답고 다행한 일이다.
20세기의 유마, 덕산 이한상 거사의 모습.
덕산 이한상 거사는 20세기 불교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거목이었다. 재가자라는 이유로 그의 족적을 기리는 작업이 소홀하지만, 그가 20세기 초반 한국불교계에 끼친 영향은 너무나 지대했다.
삼보장학회, 광동학원 경영, 삼보법회 설립 및 운영, 불교종립학원연합회 구성, 삼보학회 설립, 사명대사 동상건립 등 다양한 불교문화 사업은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그는 흔쾌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단독 불사로 회향하였다.
알다시피 이와 같은 것은 재력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투철한 신심과 원력이 뒷받침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범인으로서는 실로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덕산 이한상 거사는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신 상경하여 1938년 경기공립공업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 풍전주식산업회사를 창업했다. 풍전산업을 15년간 이끌다가 1961년에는 대한전척공사까지 창업하여 임직원 3000명이 넘는 한국 최대 토목건축회사를 운영하게 된다. 그는 정부종합청사, 섬진강댐, 팔당댐, 경부고속도로, 풍전상가 등 한국 내 커다란 사업을 도맡아 했다. 그리고 이런 사업을 하면서 벌어드린 돈을 불교계의 진흥을 위해 아낌없이 회향했다.
덕산 이한상 거사의 가족. 오른쪽이 덕산 이한상 거사와 부인 이현숙 여사, 그리고 장남 이상일, 차남 이상문, 쌍둥이인 삼남 이상권, 사남 이상훈.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불교신문의 전신 ‘대한불교’를 행원스님(숭산스님)의 권유로 맡은 이후 10여 년 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불교계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장학사업과 불교학계의 발전을 위한 연구원들에 대한 아낌없는 후원 또한 불교 내부의 문제가 있을 때는 자정의 노력을 하게끔 쓴 소리도 하는 한국의 유마거사였다.
그는 국내에서만 불교를 위해 일하지 않았다. 세계불교도대회 참가 이후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눈을 떠 세계에 한국불교의 우수성을 알리고, 불교교류를 통한 외교관 역할도 하였다. WFB(세계불교도우의회)에서 부회장을 맡아 세계 각국의 불교저명인사를 한국에 초청하여 양국의 이익을 증대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한국의 불교를 해외에 널리 알리는데도 힘을 쏟았다.
“…대한불교신문사는 우리나라 불교계에 있어 유일무이한 보도기관이고 대한불교지는 역시 유일무이한 공기임을 자부하매 우리 조계종단의 3대사업의 하나인 포교에 박차를 가하며 불교계의 제반소식을 전함에 있어 와전을 방지 시정할 것과 각자 소신의 의견발표를 위하여 최대한 공개하도록 하겠다. …중략…대한불교지는 그러한 일반신문과 다른 주간이며 특히 정신(종교)을 상대로 하는 특수지다. 그 특수지를 특수지 답게 만듦에 있어 최선을 다하고자 하지만, 우리 불교계가 가지는 학적, 문필적 역량을 앞에 말한 광장을 통하여 발굴도 하겠고 한편 불교청년회 등을 통하여 육성도 기하면서 불교문화 진흥에 다소나마 기여하고자 한다.” -덕산 이한상 거사의 ‘대한불교’ 200회 발간 인사말 중에서
당시 월간신문이였던 대한불교는 종단의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발간이 어려웠다. 그런 것을 행원 스님(숭산 스님)의 권유로 1964년 덕산 이한상 거사가 운영을 맞게 되었다. 당시 신문 한 부의 값은 40원 신문 한부 인쇄비가 50원이였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그가 적자를 감수하고 자신의 사재를 들여 신문을 월간에서 주간으로 2면이던 것을 4면으로 증면하여 배포 한 것은 유일한 불교계의 보도기관인 ‘대한불교’의 포교매체로서의 역할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대한불교’는 주간 발행 이후 적어도 60년대 말까지 ‘불교와 사회를 연결하는 소통의 매체’로 발전했고, 불교내부의 갈등을 통합하고 조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그가 이끌었던 ‘대한불교’는 불교와 사회간의 소통의 광장이었고 그리고 이 소통의 광장을 통하여 한국불교는 그 정체성을 더욱 확고하게 세워 나갈 수 있었다.
‘대한불교’를 인수한지 10여년 1972년 3월 26일자 제447호를 마지막으로 신문사를 다시 종단에 돌려주고 덕산 이한상 거사는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주 카멜시에 최초의 한국사찰 삼보사를 세우고 남은 여생을 그곳에서 지내면서 미국에서 한국불교 포교를 하였다.
불교현대사에 큰 업적을 남긴 그가 1971년 고국에서의 치열했던 불교운동을 접고 덕산이 미국으로 건너간 지 40여 년. 안타깝게도 이제는 그와 불교운동을 함께 했던 가까운 사람들조차 그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고, 그가 했던 여러 중요한 일들도 사람들의 머리에서 사라져갔다.
덕산이 활동할 때보다 훨씬 좋은 여건을 갖춘 요즘, 더 많은 불교운동가들이 나와 많은 일을 해야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후학들이 덕산 이한상 거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비단 지금은 없는 한 사람에 대한 추억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재가 불교운동가의 표상을 널리 알려 제2, 제3의 덕산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뜻을 아울러 갖고 있다.
덕산 이한상 거사 신문기사 자료집은 活불교문화단이, 덕산과 불교운동을 함께 했던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동문들의 뜻을 모아 출판한 것이다. 불교계를 위해 많은 부분 도움을 주었던 그가 지금 불자들의 기억 속에 희미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또 그의 업적을 잊지 않기 위해 출판을 서둘렀다.
신문기사에 나오는 덕산의 활동상을 더욱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이진두 ‘불교신문’ 논설위원이 해제를 썼고, 박성배 뉴욕주립대 교수가 발문을, 그리고 송재운 동국대 명예교수가 해설문을 썼다. 이름 드러내기를 꺼리는 이용부 대한불교진흥원 이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뜻 깊은 불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산파역할을 담당했음을 본인의 뜻에 어긋나지만 아울러 밝혀둔다.
덕산 이한상 거사에 대한 이야기를 신문기사 자료집이란 형태로 만든 이유는 그의 업적을 본인들의 주관적인 기억보다 객관적 시각이 담긴 글로 알려, 읽는 독자로 하여금 판단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뒤늦게나마 한국불교에 큰 공헌을 한 거사의 보살행을 기록한 자료집이 나온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