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사람  김성채

 

 

전통사찰 법당 어간문 문턱에는 “좌우측의 문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부탁드리는 말씀이 놓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안내판이 없더라도 어간문을 통해 법당에 드나드는 불자는 볼 수 없습니다. 법당예절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이 예절은 방을 들어설 때 다짜고짜로 웃어른을 마주 대면함을 피한다든지, 뵙고 나올 때에도 한두 걸음 뒷걸음친 다음 방을 나오는 우리의 예절에서 나온 듯싶습니다.

 

그런데 동국사는 이와 다르게 불자도 어간문으로 출입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신발을 신은 채 들어설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렇지만 부처님께 경배를 올리기 위해서는 신을 벗어야 하며, 전통사찰에서 법당 문 밖에서 신을 벗은 다음 섬돌을 딛고 법당에 들어서듯 섬돌 역할을 하는 낮은 쪽마루가 길게 놓였습니다.

 

 

 

쪽마루를 딛고 올라선 법당마루 끝자락에는 장의자가 놓여있는데, 창건 당시부터 그러했는지 최근에 놓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거동이 불편한 불자나 연세 많은 보살님을 배려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웅전 내부는 외부가 그러했듯 단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불단도 그렇고, 기둥을 결구한 상인방, 보아지 등 모두가 짙은 밤색이 칠해졌고, 빈틈없이 연등으로 가려진 우물반자 천정 역시 짙은 밤색이 칠해져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사부대중에 둘러싸여 공경과 찬탄을 받으시고, 설법을 펴실 때마다 하늘에서 천신과 하늘 ․ 용이 꽃비가 내리면서 찾아오며, 긴나라와 마후라가는 천상의 음악을 연주합니다. 그런 불국토의 모습을 법당에 나타내고 장엄하는 것은 부처님의 덕성을 보여주고, 믿음을 두텁게 하려함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검소하게 꾸민 동국사 대웅전은 다른 무엇을 상징한 것인지, 다른 까닭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지 궁금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전통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것도 있는데, 상인방과 보아지에 조각한 당초문양과 이름을 알지 못하는 꽃 그리고 투각한 공작과 노송 등은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입니다.

 

 

 

동국사 대웅전은 불단을 뒷벽에 붙여 설치하여서, 법당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게 한 까닭에 부처님의 둘레를 도는 예경은 드릴 수 없습니다. 불단 앞 네 개의 기둥(내진주)을 축으로 장마루가 분리된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것으로 법당이 내진과 외진으로 구분되었다는 것과 강점기에는 우리와 다른 일본식으로 불전행사가 치러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불단 중앙에 모신 석가여래 삼존불 좌우측은 칸칸이 벽으로 불단을 나누었고, 칸칸마다에는 각각 지장탱·산신탱·독성탱·신중탱·칠성탱을 모셨습니다.

 

 

불단을 보는 맨 왼쪽에는 지장보살을 모셨습니다. 석장을 들고 좌대에 앉아계신 지장보살상 뒤에는 지장탱화가 걸려있는데, 탱화 상단에는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그리고 죽은 사람들을 심판한다는 명부의 시왕이 그려졌습니다. 하단에는 여러 지옥이 그려져 있는데, 우두 ․ 마두(牛頭 馬頭)옥졸이 활활 타오르는 불 위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죄인을 삶아대는 화탕지옥, 죄인을 무거운 돌산에 넣고 누르는 중합지옥, 몸에 검은 줄을 긋고 톱질하는 흑승지옥, 혀로 쟁기질하는 발설지옥, 얼음 속에 넣어 꽁꽁 얼리는 한빙지옥 등이 그려졌습니다.  
검디검은 먹 바탕에 그려진 탱화는 무시무시한 지옥을 그렸으면서도 세필로 금색을 입힌 탓에 화려함과 기품이 담겼습니다. 다른 사찰에서 지장보살과 여러 권속을 그린 탱화를 볼 수 있었고, 한 폭에 여러 지옥을 나타낸 지옥도 탱화도 여럿 보았지만 이렇게 두 개의 내용을 한 폭에 등장시킨 탱화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장탱화를 그린 화승은 화폭을 위아래로 구분하여, 지장보살께서 지옥을 관장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실하게 나타냈습니다.

 

 

 

지장보살 오른쪽에는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습니다. 전통사찰 어느 곳을 방문하더라도 산신각을 볼 수 있는데, 도심에 세워진 사찰에서 그것도 부처님 바로 옆에 모셔진 산신탱화를 보면서 산신에 대한 민간신앙과 사찰을 수호하려는 오랜 전통을 보게 되었습니다. 탱화 중앙에는 호랑이에 기대어 앉은 산신이 자리하고 그 뒤쪽으로 공양하는 동남동녀가 서있는데, 동남동녀가 훌쩍 커버린 성인으로 그려져 ‘동남동녀란 몇 살까지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탱화 역시 검은 바탕에 금색으로 그려졌습니다.

 

 

불단 중앙은 좌우 불단보다 앞으로 내어 삼존불을 봉안하였는데, 닫집은 짜지 않았습니다. 탱화를 모신 다른 불단보다 앞으로 튀어나온 불단 역시 검소함을 유지시키면서 좌대 중간부분의 당초문양만 투각하여 금색 칠을 입혔는데, 대웅전 안에서 가장 화려한 꾸밈입니다.  
대웅전 “소조 석가여래 삼존불”은 본래 김제 금산사에 모셔져있던 부처님인데, 해방이 되면서 일본 승려들이 일본 불상을 가지고 귀국하였고 적산가옥이 된 금강사를 매수한 당시의 주지 김남곡 스님께서 금산사에 양해를 구하고 동국사로 모셔온 것이라 합니다. 삼존불상은 조성이 이루어진 기록을 알 수 있는 복장 유물이 발견되어, 불교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인정되어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석가여래부처님을 협시하는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동국사 삼존불은 석가여래불 ․ 가섭 존자 ․ 아난존자로 구성되어 좌측에는 가섭존자, 우측에는 아난존자가 시립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찰에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석가여래불의 협시불로 구성한 것과 비교하면 보기 드믄 경우가 되겠습니다.
가섭존자는 대머리에 주름살과 하얀 수염으로 연로함을 나타냈지만 살짝 지은 미소에 앞니를 드러나게 빗어서 보는 이들에게 친근감을 갖게 하는 이미지를 표현해냈습니다. 아난존자는 석가여래 부처님처럼 큰 귀에, 가는 눈썹과 수염 그리고 떴는지 감았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눈을 갖춘 모습에 머리를 삭발한 젊은 사미승으로 조성하였습니다. 아난존자는 총명하고 단정한 용모를 지녔고, 나이 들어서도 주름이 없었으며, 누구에게나 부드럽게 대한 때문인지 아니면 부처님과 사촌인 때문인지 부처님과 쏙 닮은 모습입니다.
가섭존자는 부처님의 가르침 속속 들이를 깨닫고 두타행을 실천하여 불자들에게 귀감이 되시는 분이고, 아난존자는 “너는 이제부터 내가 한 말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전해 주어라“는 부처님의 부촉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훌륭한 가르침이 우리에게 이어지게 하신 분입니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부처님의 속과 겉을 살뜰히 모시고 챙겼던 존자이기도 하지만 업적이 너무나 크기에 협시불로 모시는 것도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두 존자의 불상을 보고 놀란 것은 지금부터 무려 368년 전에 제작되었음에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런 자세로 빗었다는 것 그리고 얼굴 표정과 집게손가락만 세워 구부린 채 합장한 손의 생김 등은 보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시키는 현대 미술작가들의 감각과 비슷해서 감탄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삼존불 오른쪽에는 독성탱화와 칠성탱화가 모셔져 있습니다. 독성탱은 이 세상의 연기법을 가르침 없이 스스로 깨친 성자인 사유로, 칠성탱은 북두칠성이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들인 사유로 전통사찰에서 각각 산신각 ․ 독성각 ․ 칠성각 등의 전각을 지어 모시거나, 삼성각을 지어 세분을 같이 모시기도 합니다. 동국사는 전각이 대웅전 하나인 때문에 일렬로 설치한 불단에 삼존불과 여러 탱화를 같이 모셨는데, 불단이 설치된 내진을 살펴보면 여러 탱화를 모시기 위해 법당 내부를 개조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부를 개조한 사유는 해방이 되어 사찰을 인수하면서 산신이나 칠성을 모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동국사 칠성탱화는 치성광여래의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 두 보살의 밖으로는 일곱 분의 여래를 그렸고, 아래쪽에는 북두칠성을 의인화한 칠원성군이 그려져 있습니다. 치성광여래는 신광(身光)과 두광(頭光)을 따로 그렸고, 두광만 나타낸 칠여래는 좌우에서 치성광여래를 향해 합장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칠원성군은 관모와 관복을 갖추었고 홀을 쥔 관인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칠원성군이 인간의 수명과 운명을 관장한다는 믿음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까닭에 칠원성군은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운명이 기록된 장부를 살피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데, 이는 칠원성군이 인간사에 대해 불철주야 관심을 갖고 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보살님들께서 사찰을 방문할 때마다 칠성각에 들러서 절을 올리며, 자손의 번성과 수명이 북두칠성처럼 길고 앞날이 훤하게 뚫리기를 기원하는데, 이것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전통이라 생각합니다.

 

 

동국사은 대웅전이 유일한 전각으로 주련은 아미타불을 찬탄하는 장엄염불 시작부분 여섯 구절이 걸려있습니다. 건물이 커서 기둥이 더 많다면 당연히 그 뒤의 많은 구절이 걸렸을 것입니다. 석가여래를 주불로 모신 전각이면서 불자들에게 장엄염불을 되뇌게 하는 이유는 법장비구가 중생들의 고통을 구제하려는 큰 원을 세워 수행한 후, 아미타부처님으로 성불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이름을 듣기만 해도 자신이 이룩한 극락세계에 나고, 위없는 올바른 깨우침을 갖게 하셨기에, 동국사는 창건 당시부터 불자들이 극락세계에 왕생할 큰 기회를 빠짐없이 갖게 하려고 이 주련을 걸어놓았습니다.

 

아미타불진금색 상호단엄무등륜 백호완전오수미 감목징청사대해 광중화불무수억 화보살중역무변(阿彌陀佛眞金色 相好端嚴無等倫 白毫宛轉五須彌 紺目澄淸四大海 光中化佛無數億 化菩薩衆亦無邊)
아미타 부처님의 참된 금빛 몸이여, 상호가 단정하고 엄숙함은 비할 바 없네. 백호는 완전하여 다섯 수미산을 합한 것 같고, 푸른 눈의 맑기는 큰 바다와 같네. 원광 속에는 또 수많은 부처님들이 계시고, 화현한 보살들의 모습도 끝없이 많구나. 

 

 

 

동국사에 일제가 군국주의에 편승하여 행동한 흔적이 남아있기도 하지만, 그 쓰라린 역사의 자취를 보존하여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계를 삼는 것도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식민지 잔재는 어떤 것이라도 청산해야 한다고 거세게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작 청산해야 할 것은 그릇된 역사관입니다. 부처님을 모시는 동국사 대웅전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이즈음 같아서는 동국사 대웅전 건물에서 배울 것이 상당히 많다는 생각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옳게 따름이 우선인데, 여기저기에서 유행처럼 번져가는 지나치게 크고 화려하게 장식하는 불사(佛事)로 혀를 차는 불자들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동국사는 도시 속에서 작지만 아름답고 우리에게 진실함을 보여주는 사찰입니다. 꼭 방문하시여 마당에서는 우리의 근기에 맞춰 나타나시는 관세음보살 삼십이응신의 의미도 새기고, 대웅전에서는 세필로 그려진 금빛 찬란한 다섯 장의 먹탱화도 보셨으면 합니다. 뒤꼍 바람소리가 시원한 대나무 숲은 직접 방문하시어 보시도록 사진을 올려드리지 않았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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