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는 가뭄에 작물들이 가까스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한 달 넘게 비가 내리지 않는다. 사상 초유의 고온이 이어지고 있다. 뉴스에서는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난리다. 농업용수는 끊긴지 오래고, 수돗물의 수압도 이전만 못하다. 더 큰 문제는 밭에 심어놓은 작물들이다. 물이 부족해 가까스로 생명을 이어가는 중이다. 거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서리태조차 물이 부족해 이파리가 말라붙기 시작했다. 고추는 아침 해가 뜨기 무섭게 맥없이 이파리를 늘어뜨린다. 일주일전 파종을 끝낸 들깨들도 실낱같은 물기에 의지한 채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만간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망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밀려온다. 그러다보니 밭에 사용해야 하는 농업용수를 논에다 끌어대는 이웃의 얌체 같은 행동이 점점 얄미워진다. 이런 얌치머리 없는 이들이 동네에 두서너 집쯤 된다. 논에는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양수기가 설치되어 있어 가동하면 될 것을, 전기 값이 아까워 이웃의 농사를 망치고 있으니 생각할수록 괘씸하다.
물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면서 ‘밭농사용 농업용수를 논에 끌어대는 행동을 중지하라’는 이장님의 경고가 방송됐다. 적발될 경우 강력한 조치를 하겠다는 이장님의 말씀이 마치 복음처럼 들린다. 그러나 여전히 농업용수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저장해놓은 농업용수도 거의 고갈된 모양이다.
부처님 재세시에도 사카 족과 꼴리야 족의 물싸움이 있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룬 후 5년째 되던 해, 부왕 숫도다나의 병환이 심각하다는 전갈을 받고 까삘라왓투로 갔던 일이 있었다. 이 해 여름 로히니 강을 사이에 둔 사캬 족과 꼴리야 족 땅에 극심한 가뭄이 계속됐다. 논바닥은 갈라지고 타는 볕에 모가 누렇게 탔다. 그러다가 두 부족의 농부들 사이에 서로 물을 사용하겠다며 다툼이 일어났다. 서로 물을 양보하라며 시작한 다툼이 순식간에 커져 양측의 군대와 왕족들까지 나서 전쟁직전 상태까지 치달았다.
일촉즉발의 순간, 강둑을 거슬러 한 비구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부처님이었다. 부처님을 발견한 양 종족은 칼과 창을 내려놓고, 진영의 한 가운데 자리한 부처님의 발아래 예배했다.
“왕족들이여, 친족 간에 왜 싸우는 것입니까?”
“저들이 우리를 개돼지라고 모욕했습니다.”
“대추나무에 둥지를 튼 문둥이라고 한 것은 당신들이요.”
높아지는 언성을 가로막으며 부처님께서 다시 물었다.
“왜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입니까?”
한 사람씩 돌아가며 왕족과 장군들에게 그 연유를 물었으나 그들도 그 원인을 모르고 있었다. 차근차근 싸움의 발단을 찾아보니, 논에서 물을 대던 농부들에게서 다툼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됐다.
부처님은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로 왕족들에게 물었다.
“이 강물과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소중합니까?”
“물보다 사람이 더 소중합니다.”
“그런데도 물을 위해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버리겠단 말입니까? 말라버린 로히니 강바닥을 피로 물들이겠다는 말입니까?”
사캬와 꼴리야 왕족들은 머리를 숙였다. 붓다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사람들을 가까이 불러 모았다. 칼과 창을 던지고 몰려든 군사들에게 붓다가 말했다.
들깨들도 실낱같은 물기에 의지한 채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러분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느 종려나무 숲에 한 그루 도토리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 아래 살던 토끼 한 마리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지.’ 바로 그때 도토리 하나가 종려나무 잎사귀에 털썩 소리를 내며 떨어졌답니다. 겁 많은 토끼는 깜짝 놀라 ‘큰일 났다. 하늘이 무너진다!’라고 외치며 달렸답니다. 옆에 있던 토끼가 이 말을 듣고 함께 달리기 시작했고, 두 마리 토끼는 곧 세, 네 마리로 점점 늘어나더니, 마침내 수천 마리 토끼가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토끼들의 소란에 온 숲은 벌집을 건드린 듯 들썩거렸습니다. ‘다들 왜 저러지? 무슨 일인가?’ ‘큰일 났어. 하늘이 무너졌대.’ 이 말을 들은 노루도 멧돼지도, 물소도 코끼리도 모두 두려움에 떨며 덩달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높은 언덕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자는 생각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졌다고? 그럴 리가 없지.’ 그런데 그들이 달리는 길목에는 벼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다들 떨어져 죽을 게 뻔했습니다. 숲의 동물들을 가엾게 여긴 사자는 쏜 살같이 행렬 앞으로 달려가 큰 소리로 포효하였습니다. 사자의 기세에 놀란 동물들이 멈춰 서자 사자가 물었습니다. ‘왜 도망가는가?’ 그러자 동물들이 대답했습니다. ‘큰 일 났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누가 그것을 보았는가?’ 코끼리, 물소, 멧돼지, 노루 누구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까닭을 추궁하던 사자는 그 말이 겁쟁이 토끼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사자가 토끼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보았느냐?’ ‘네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사자는 숲 속 동물들과 함께 두려움에 떠는 토끼를 앞세워 하늘이 무너지는 걸 봤다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굵은 도토리 한 알만 뒹굴 뿐 무너진 하늘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사자는 도토리를 주워 토끼에게 보였답니다. ‘이것이 네가 보았다는 하늘인가?’”
부처님의 이야기를 듣던 사캬 족과 꼴리야 족 군사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부처님이 미소를 보이며 다시 말했다.
“친족들은 서로 화해해야 합니다. 친족이 화목하면 어떤 적들의 침략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저 히말라야의 숲을 보십시오. 거센 태풍이 불어도 온전합니다. 수많은 나무와 잡초, 덤불과 바위가 서로 뒤엉켜 의지한 저 숲은 무엇 하나 다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넓은 들판에 홀로 선 나무를 보십시오. 굵은 가지와 무성한 잎을 자랑하지만 태풍이 휩쓸고 가면 뿌리째 뽑힙니다. 감정이 없는 풀과 나무도 함께 어울려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두 부족의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부디 싸우지 말고 한마음이 되십시오. 하나가 되어 화목할 때 여러분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마땅히 불자가 지녀야할 삶의 태도이건만, 그것을 현실에서 적용하고 실천하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농업용수 훔치는 이웃을 미워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막상 말라 신음하는 작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나브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 나는 언제나 몸과 마음이 성숙해질 수 있을까. 오늘따라 작열하는 햇볕이 더 뜨겁다.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