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조스님의 목숨 건 결기가 세상을 분노와 통곡으로 휘감는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의 퇴진과 적폐청산을 주장하며 폭염 속에서 40일 가깝도록 단식정진을 멈추지 않고 있는 설조스님의 비장함이 마치 시한폭탄처럼 교단안팎에 엄중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전하는 바 설조스님의 세수 88세. 세간에서는, 그리고 범부로서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육체적․정신적 임계치를 넘어선지 오래다.

 

 

그래서다. 제가 드리는 첫 번째 제언이다.

 

‘조계종단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세운 재가대중에게 희구하는 바, 설조스님의 단식을 이젠 아쉬움과 비통함을 삼키고서라도 만류하고, 만류하고 또 만류해주기를 바란다. 그래도 설조스님이 의지를 놓지 않으시거든 병상의 부모님을 모시듯 삼가는 마음으로 단식을 멈추시도록 행동(?)을 감행해주기를 권청한다. 다른 이들에 의한 강제행위는 도리어 불상사를 야기할 수 있기에 설조스님의 뜻을 가까이서 받들고 있는 재가대중의 간곡함으로써 부디 설득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어느 순간부터 단식정진하시는 설조스님을 보면서 세월호 침몰사건이 기시감으로 다가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온 국민이 TV생중계로 세월호의 침몰순간을 속수무책 지켜봐야 했던 뼈아픔처럼, 진정 현실화되어서는 안 될 설조스님의 마지막 모습이 정신을 온통 집어삼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설조스님의 단식정진은 그 배경과 시작과 모든 조건에서 세월호 침몰사건과는 비교될 수 없는 명제임에는 분명하다.

 

어떤 명분으로든 설조스님의 단식의지가 존중(?)되어 결과적으로 입적하시는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 살인공범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길 바란다. 그것은 결코 불교적 해법이 될 수 없거니와, 생사불이의 비장함을 보여주면서까지 현하 종권세력들로 하여금 권좌에서 내려오길 꾸짖고 있는 설조스님에게 도리어 무거운 살생업보의 짐을 지우는 일과 다르지 않다. 어느 순간 불행하게도 정말 그리된다면 입적 책임을 서로 전가하게 되는 반전의 상황이 오히려 본질을 흐리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노스님을 희생 삼아 얻고자 함이, 개혁하고자 함이 과연 어느 정도의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겠는가 싶은 의구심이 이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다. 제가 드리는 두 번째 제언은 이렇다.

 

재가불교운동의 획을 그으며 이 시간까지도 설조스님의 비장한 결기를 떠받치고 있는 재가대중 대표자들이 이젠 한 테이블에서 만나 머리를 맞댈 수 있기를 청원한다. 설조스님의 단식은 종권쇄신을 위한 동기는 될지언정 재가불교의 위상을 담지해주는 구심점일 수도, 구극적인 지표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따라서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로서가 아닌, 진정한 시민운동을 담보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도 주체적인 ‘재가대중공동체’(가칭)의 출범을 공식화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출가교단에 대한 감시․비판․견제․지표제시 등 가시적인 불교혁신운동을 위한 단-중-장기적인 전략전술을 수립해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다.

 

지금의 긴박한 상황에서는 물론 그동안 재가단체들이 보여준 몇 가지 성성한 결실의 사례들을 몰라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다. 그 공적과 행보에 존경과 감사와 부러움과 미안함이 중첩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시다시피 모든 일에는 시절인연이 작동한다. 바로 지금이 그 시절인가 싶은 것이다. ‘재가대중공동체’ 결집이 현실화될 수 있는 적기이거니와, 설조스님의 입적과 종권세력과의 대치국면 등 작금의 움직임들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에 대한 ‘모든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3.1만세운동을 기화로 분출된 여러 개의 단위정부조직을 상해임시정부로 독립운동창구를 일원화해 모든 지표를 설정해 나갔듯 재가대중공동체가 자임하는 다각적인 역할이 그와 같은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작금의 목적한 바를 성취했을 경우와 성취하지 못했을 경우 교단의 향방과 재가대중의 역할을 놓고 심도 있는 논쟁과 차제적인 행동강령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종단혁신의 기치가 이번의 일회성으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도 순진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밝힌다.

 

‘재가대중공동체’의 계속되는 행보는 교단안팎에서의 시민운동으로 확장시켜 상시적 시스템을 갖추고 중-장기적인 지표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손바닥 뒤집듯 모든 것을 전복시켜 바꾸겠다는 조급한 마음을 냉철한 안목으로 추스를 수 있다면 중-장기적으로 종단혁신을 위한 논의와 행동으로 옮길 명제는 차고 넘친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로드맵은 별도의 시공간을 통해 제안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기실, 오늘날 교단적폐의 근본원인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모르지 않을 터이다. 그것은 재가대중공동체가 전개할 수 있는 시민운동의 노정이 너무도 선명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기도 하다. 불교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신앙심을 앞세운 신도단체의 한계를 벗고 이번 기회에 상시적이고 영속적인 진정한 재가조직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기를 빌어마지 않는 까닭도 그것이다.

 

 

또 하나의 기시감으로서 우려되거니와 간과해선 안 될 명제가 있다. 너무 앞서가는 기우일 지 모르겠으나, 어떤 명분으로도 무력적이고 폭력적인 행위가 어느 쪽에서든 자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불교적 도의를 수호하는 일이다.

 

불자로서, 지성인으로서 인간 붓다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힌 바를 실천에 옮기는 불교적 지혜는 정작 현장에서, 난제의 해법을 선택하는 기로에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파사현정의 기치를 세우고서 무력과 폭력이 동원되거나 방관 내지 동조한다면 이미 현정을 담보할 수 없는 혼돈 속으로 함몰된 것과 다르지 않을 터이다. 붓다의 가르침이 더욱 빛을 발하는 곳은 경전 속이 아닌 중생들의 치열한 다툼의 현장이어야 함을 거듭 제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재가대중 대표자들이 세간살이에서의 소소한 감정을 거두고 냉철하고도 질서정연하게 전략전술을 모색해야 한다는 시점이 ‘지금’이라고 강조하고 싶은 까닭은 그 때문이다.

 

지난 94년과 98년 당시의 종단사태가 던져준 교훈은, 갖가지 범계와 훼종행위를 성토하며 종단개혁을 외치고 교단정화를 염원했던 희구가 결과적으로 '종권쟁취' 내지 '사찰나눠먹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사부대중이 공히 함께하는 교단운영의 비전실현과 청정교단의 구현은 ‘강 건너 불’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았던 비애스러운 흐름을 지금까지도 우리 모두는 몸소 체험하고 있음이다.

 

망각해선 안 될 또 하나의 사실은 ‘출가대중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는 말이 오래도록 회자되어오듯 출가대중은 대체로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모습을 보이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 실상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주지하듯 출가대중 어느 한 편들기에 나섰던 재가불자들끼리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적대적 관계로서 서로 비방하고 원수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현실적 비애를 목도하고 있음이다. 작금의 상황에서만큼은 부디 ‘동조하는 자 우리 편(정의)이요, 동조하지 않는 자 상대편(적폐)’이라는 배타적 기운이 감돌지 않기를 서원하고 서원하는 바다. 

 

 

그래서다. 제가 드리는 세 번째 제언은 작금의 흐름을 거듭 예의 직시해 달라는 바람이다. 

 

작금의 움직임과 관련해 다행히 상식이 발동되어 목적한 바대로 교단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경우 교단차원에서 재가대중이 서 있게 될 위치, 즉 교단의 한 축으로서 재가교단의 위상정립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분위기와 감정에 휩쓸려간다면 94년과 98년 종단사태 이후 재가불교의 자화상을 보는 바와 같이 거개 다를 바 없게 된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작금의 비원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종국의 ‘승려대회’로써 문제를 풀어가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94년과 98년의 종단사태가 기시감으로 다가오듯 무력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가서는 이미 늪지대에 빠진 것처럼 헤쳐 나오기 쉽지 않을 터이다. 공수관계가 첨예하면 첨예할수록 집착과 감정의 수위는 조절의 경계를 넘어서 참으로 참담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는 적지 않은 출가대중의 전언들이 그 반증이다. 불행하게도 그리된다면 여기에 보태지는 또 하나의 비애가 바로 공권력 투입이다. 쌍방의 세력이 충돌했을 경우 공권력 투입의 전제는 제도권의 입장을 대변하고 비호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94년과 98년 당시처럼 쇠파이프와 각목과 짱돌이 난무해 대사회적인 경악과 불자대중의 수치를 안겨주었던 작태가 21세기 첨단의 지식산업시대에도 재연될까 싶은 생각이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혹자는 당시의 종단사태에 빗댄 ‘승려대회=무력․폭력’의 공식이 시민촛불혁명을 일궈낸 성숙한 한국사회의 정서상 지금도 유효하겠느냐는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승가의 태생적 단면을 회고한다면 이 같은 폭력적인 상황마저 염두에 둬야 하는 것도 전략상 긴요할 터이다. 반드시 기우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거듭 강조하는 바는, 무력적이고 폭력적인 사태는 파사현정의 기치가 하늘을 찌른다 해도 불교적 해법이 못되거니와, 재가대중이 또다시 어리석은 늪지대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절망적인 희원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94년과 98년 당시의 학습효과로서 충분히 인식하고도 남음직한데, 작금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면 감정의 교차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참으로 피눈물 나는 반복성의 교단흐름과 불자로서의 참괴함이 폐부를 찌르고도 남는다.

 

‘재가대중공동체’ 결집을 위한 대표자들의 회동과, 그를 통한 격의 없는 논쟁과 붓다의 가르침에 충실한 행동지표들을 설정할 수 있기를 주장하고 강조하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진정 상시적이고 영속성을 담보한 ‘재가대중공동체’ 결집을 통한 시민운동시스템을 이번 기회에 가동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붓다 재세 시 꼬삼비 지역의 출가대중이 양분되어 거세게 다투자 급기야 부처님마저 칩거해버린 사건에 직면한 재가대중은 당시 출가승려에 대한 ▶공양거부 ▶예배거부 ▶무관심(범단법)의 단체행동에 들어갔다. 이로써 출가대중의 발로참회를 이끌어낸 사례를 율장은 상세히 전한다. 재가대중의 지혜가 빛을 발한 교단사의 단면이다.

 

그래서다. 꼬삼비의 교훈을 현대적 의의로써 오늘에 되살리는 일도 그렇거니와, 아소까왕 당시 6만여 명의 적주비구를 축출한 정화결집의 동력을 추동할 수 있는 원력을 시나브로 세워봄직 하지 않겠는가.

 

작금의 상황으로 종권의 변화를 주게 되든 그렇지 못하든 재가대중이 서 있어야 할 지점에 대한 단상이 이상과 같다. 94년과 98년의 충격적이고도 폭력적인 종단사태를 최일선에서 경험한 한 사람이거니와, 그 이후 독립적이고도 주체적인 재가대중공동체의 영속적인 상시시스템 구축을 비원으로 끌어안은 명제이기도 해서 이렇게나마 재가대중에게 일단의 제언으로 남기는 바다.

 

가장 불교적인 방법으로 서원하시는 바 부디 성취할 수 있기를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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