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의 성자', '위대한 성인', '법(Dhamma)의 거인', …. 우 빤디따 스님을 소개할 때 붙는 수식어들이다. 우 빤디따(1921~2016) 스님은 20세에 구족계를 받고, 29세가 되던 해부터 마하시 스님의 지도 아래 사띠빠타나 수행에 입문한다. 스님은 1982년 마하시 스님이 입적하자 그 뒤를 이어 마하시 수행 센터 원장을 역임했다. 이후 빤디따라마 수행 센터를 건립해 위빠사나 수행 지도에 전념해 왔다. 우 빤디따 스님에게서 지도를 받은 대표적인 서양 명상 수행 지도자로는 미국의 조셉 골드스타인, 잭 콘필드, 샤론 살즈버그 등이 있다.
스님의 등장으로 인해 서양에서의 위빠사나 명상 지도와 수행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스님이 처음 서양 땅에 발을 내디뎠던 당시 세랍 63세. 이 책은 그런 스님이 2003년 5월, 미국에서 진행한 사띠빠타나 위빠사나 법문을 엮은 것이다.
우리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는 ‘번뇌’다.
“‘잔인하고 사악한 지배자'인 번뇌는 결과적으로 삶의 모든 찰나에서 일어나는 윤회의 순환을 만들어 내고, 고통스런 삶을 반복적으로 일으킨다. 윤회는 태어나고, 죽고, 존재하는 순환을 말한다.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피할 수 없음을 뜻한다. 노화, 부패, 사망은 단지 삶이 끝났을 때에만 겪는 것이 아니라 매 찰나마다 일어나고 있다. 삶 자체가 고통이다. _ 67쪽
중생의 번뇌 끊기에 대한 간절함은 스님의 신조에서도 드러난다. 『번뇌에게 베풀어 줄 자비는 없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탈의 가능성을 품었기에 우리 모두의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것이야 말로 사람의 일생에서 지고의 가치를 지닌다.” _ 34쪽
우 빤디따 스님은 해탈을 이루기 위한 궁극의 수행법으로 “사띠빠타나 위빠사나 수행”을 제시한다. 이는 몸과 감각, 마음과 모든 현상(사물)의 생멸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리는 사념처(四念處) 수행을 근간으로 한 마음챙김 수행법이다.
“사띠빠타나 위빠사나를 행하는 수행자는 대상을 알아차리는(noting) 순간순간마다 거룩한 팔정도에 든다. 팔정도야말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 162쪽
스님은 알아차리는 모든 순간, 팔정도는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대상을 알아차리기 위한 매 순간 노력, 그것은 팔정도의 바른 노력(正精進)에 해당된다. 노력을 기울일수록 산만함이 줄고 대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바른 마음챙김(正念)이다. 마음챙김이 연속적이고 지속적이게 되면 마음은 대상에 고정되어 머물게 된다. 이는 바른 집중(正定)이다. 이 세 가지를 묶어 '집중의 묶음'이라 한다. 이는 곧 계∙정∙혜, 삼학의 '정'에 해당된다.
이렇듯 사띠빠타나 위빠사나를 수행하며 겪는 과정과 단계, 원리는 붓다의 가르침에 무엇 하나 어긋나지 않는다. 이로써 번뇌는 끊어지고, 결국 우리는 윤회의 고통에서 멀어지게 된다.
우 빤디따 스님의 사띠빠타나 위빠사나 수행 법문은 불법을 통해 마음이 어떻게 치유되는지 그 근본 원리를 전하는 데 방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혜와 실천의 조화라는 붓다의 길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 그동안 위빠사나 명상을 실천해 오며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선명히 알기 어려웠던 독자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이다.
안타깝게도 우 빤디따 스님은 2016년 4월 입적하셨다. 더 이상 스님을 법석에 모실 수 없는 현실에 있지만 스님의 가르침을 책으로나마 만날 수 있게 된 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사띠빠타나 위빠사나 수행의 초심자에게도, 수행을 계속 해 오고 있는 실천자에게도 그 정수를 내보임으로써 해탈의 길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지침이 될 것이다.
“대상이 떠오르자마자 수행자는 그것을 인지해야 한다. 대상은 지금 당장 나타나고 지금 당장 사라지기 때문에 그것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겨냥의 힘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대상이 왜 그런지, 무엇인지, 어떻게 그러한지 등을 물어 볼 시간이 없다. 묻기 위해 멈추면 이미 마음은 대상에 도달하지 못한다. 대상을 놓치면 암흑 속에 떨어진다.” -174~175쪽
“위빠사나 수행은 좋거나, 나쁘거나, 중립적인 경험과 번뇌가 일어나는 것 사이의 연결을 끊어낸다. 습관적 반응이 일어나고자 하는 순간 마음챙김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 시에 대상이 일어나는 것을 마음챙김이 항상 쫓아가고 있는 게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2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