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농사를 지어본 이는 다 아는 것이지만, 아무리 주워내도 끝없이 나오는 것이 돌조각들이다. 우리 밭 역시 꽤 오래 전부터 밭으로 경작한 곳인데 돌들은 끊임없이 나온다. 누군가 몰래 와 만들어놓고 가는 건 아닐진대, 어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놀라울 뿐이다. 벌써 이 밭에서 3년째 농사를 짓고 있지만 주워내는 돌의 양은 줄어들 줄 모른다. 첫해에는 돌을 주어 외발 리어카에 싣고 산 기스락에 내다버렸지만 작년부터는 생각을 바꿔 밭모퉁이에 돌탑을 쌓았다. 
그런데 돌탑 쌓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등산길이나 절 입구에 쌓아놓은 돌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쳤는데, 막상 내가 쌓으려다 보니 만만치가 않다. 돌의 크기나 생김새가 제각각이고, 그때그때 주워낸 돌로 쌓다보니 모양도 엉성한데다, 무너져 내리기 일쑤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 법인데, 정성이 덜 든 탓이겠다.

작년부터 쌓은 돌탑은 두 개가 되었다. 돌의 양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잘 쌓는 사람이라면 탑 하나로도 충분히 소화할 양이겠지만 아직은 서투니 그리 되었다. 아무튼 돌탑 두 개가 밭의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으니, 오가는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기 마련이다. 아랫집 대치교회 다니는 할머니는 ‘볼썽사납게 웬 돌탑을 쌓느냐’고 볼멘소리를 하고, 밤나무 집 노부부는 ‘참 예쁘게도 쌓았다’며 칭찬한다. 
어제는 감자를 심기 위해 한나절 넘게 아내와 함께 두둑을 만들고 비닐을 씌웠다. 오랜만의 삽질에 허리와 어깨가 뻑적지근하다. 두둑을 만드느라 흙은 뒤집었더니 여지없이 돌조각이 한 짐 쏟아져 나왔다. 리어카로 한 대는 족히 되는 돌조각들을 여유를 갖고 정성껏 쌓아올렸으면 좋으련만, 대충 얹어놓고 마무리할 요량으로 서둘다가 그만 우르르 돌탑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그러면 그렇지,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교훈을 어긴 과보이니 달게 받을 밖에. 휴~, 무너진 돌탑을 다시 쌓아올리는 작업은 훨씬 더 까다롭고 힘겹다. 
어디 돌탑 쌓는 일뿐일까. 따지고 보면 세상 일이 다 그렇다. 어떤 일이든 숙달되지 않거나 정성이 깃들지 않으면 서툴 수밖에 없는 게 인생살이 아니겠는가. 문득 지리산 박남준 시인의 시 ‘흰부추꽃으로’의 첫 구절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다 그렇다”가 떠올라 짐짓 미소를 머금었다.
몸을 쓴 탓에 간밤에 모처럼 단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 페이스북을 보니 불교계의 살아있는 전설 중의 한 분이신 선진규 법사님께서 내게 공개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이학종 기자! 세상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함께 변하던지 아니면 내 것을 강하게 지키던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하는 것)인데 (한국)불교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니 답답하지 않습니까! 어디선가 소리치고 나오도록 메시아 역할 해보세요!!”
기자 생활을 접고 산골에 묻힌 사정을, 연초 봉하마을을 찾았을 때 법사님의 주석처 정토원에 들러 분명히 말씀드렸는데도, 요즘 불교계 사정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답답하셨던 모양이다. 현재 불교계 돌아가는 사정을 굳이 알려하지 않고, 또 알고 싶지도 않아 오직 ‘글농사’와 밭농사만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대선배님의 할(喝)에 정신이 번쩍 뜨여, 오랜 만에 주요 불교매체들을 검색해 요즘 교계 사정을 둘러보았다.
기자 생활을 접고 불교계를 떠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돌아가는 사정은 여전해보였다. 어느 곳 하나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없어 보였고, 활기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상식이 통하지 않는 관행도 변치 않은 듯했다. 오죽하면 산수(傘壽)를 훌쩍 넘긴 대선배님께서 거두절미하고 메시아 역할을 하라고 소리치셨을까. 메시아는커녕 지난 30년 기자생활 동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고 물러난 딱한 처지임을 내 스스로 잘 알고 있지만, 대선배님의 비명 같은 간절한 외침에 ‘고민해보겠습니다’라는, 결코 진실하지 못한 답변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오전 내내 대선배님의 할이 화두가 되어 뇌리에 맴돌았다. 18년 전, 그러니까 21세기가 처음 시작된 지난 2000년, 새천년은 문화가 주도하는 시대가 될 것이며, 우리 문화의 바탕을 이루고 있고, 질 높은 문화적 자산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불교가 융성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는 기획기사를 쏟아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때 뭘 모르고 써댔던 기사들이 한없이 부끄럽게 다가온다. 음악, 미술로 대표되는 문화 분야에서 오늘날 불교가 차지하는 위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불교의 영향이 컸던 전통예술 분야도 그 주축이 이웃종교로 넘어간 지 오래다. 하물며 정치, 경제, 교육, 과학 등의 분야는 더 말해 무엇 하랴.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이후 지난 8,9십 년대까지 세상의 존경을 받던 선지식들이 간헐적으로나마 출현했지만 이제 그 맥도 끊어진 듯하고, 급기야 불교 교세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모여 사는 수도권에서 3등 종교로 전락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이렇다 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진규 법사님은 바로 이 점을 답답하게 받아들이신 것 같다. 그분께는 작금의 한국불교 모습이 1700년 동안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있는 오늘의 한국불교! 산골에 내려와 있든, 현장에 서 있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입장에서 공업의 과보까지 피할 길은 없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고민도 된다.
어제 쌓은 돌탑이 밤새 제법 많이 내린 비바람에 잘 견뎠는지 살피러 현관을 나선다. 저벅저벅, 100여 미터 남짓한 거리를 걷는 발걸음이 사뭇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