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장(場)에서만 뻥튀기를 업으로 삼던 사람이 스무 명쯤 됐었슈. 내가 스물부터 이 일을 시작해 시방 꼭 57년짼데, 이젠 다 죽고 나만 남았슈. 뻥튀기로 평생을 살아보니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슈. 옛날에는 뻥튀기 튀기려고 하루 종일도 기다리며 줄을 섰는디, 요새는 한 시간도 못 기다려. 저, 저거 봐유. 한 십분 남짓 기다리다가 그냥 (옥수수를) 가지구 가잖유. 참 많이도 변했슈.”
당진장에 묵은 서리태 한 되 튀기러 가 만난 뻥튀기 아저씨의 넋두리가 구수하다. 쪼글쪼글한 주름을 실룩이며 때론 수줍은 듯, 때론 자조하듯 내뱉는 얘기가 잘 새겨보면 그대로 법문이다. 80이 다 되셨으니 할아버지라 불러야 마땅하겠지만, ‘뻥튀기 할아버지’란 단어의 조합은 영 생경하다. 역시 뻥튀기와 어울리는 단어는 아저씨인 듯싶다. ‘뻥튀기 아저씨!’

당진장에서 57년째 뻥튀기 일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와 뻥튀기를 하러온 아낙네들.
“왜 그렇게 다들 일찍 가버렸는가 생각해보니, 이 일이란 게 화장실도 제때 못 가지, 밥도 제때 못 먹지,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 있어야 하지…. 그러니 몸이 성하겠슈. 난 참 오래 사는 거유. 나 하나 남았다니까! 그래도 손님은 별루 없슈. 요새 누가 강냉이 튀겨 먹남유. 애들도 이런 거 잘 안 먹잖유.”
매 5일, 10일마다 당진장이 서는데 마침 오늘(15일)이 장날이어서 아침밥 먹은 후 구경삼아 아내를 따라 나섰다. 현묘재에서만 하루 종일 지낼 게 아니라 가끔씩 바깥바람도 쐬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지만, 콩도 튀기고, 또 다가오는 아버지 제사상 준비도 하고 해서 겸사겸사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골장터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사람 사는 냄새를 흠뻑 맡아보고 싶었다.
당진장이 서는 시내까지는 승용차로 20분 거리다. 시골장 치고는 꽤 큰 규모인데,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다. 서해안에 자리한 도시인 터라 생선, 젓갈, 해초류 등 해산물을 파는 곳이 즐비하고, 각종 야채와 과일, 신발, 붕어빵, 옷가지, 농기구 판매상 등 그 종류를 헤아리기 어렵다.
‘순서대로 튀겨드릴 테니 걱정 말고 장 한 바퀴 돌아보고 오라’는 뻥튀기 아저씨의 재촉에 작은 카메라를 들고 장 구경에 나섰다. 제사상에 올릴 과일을 사고, 증조할아버지 제사에 맞춰 화천에서 올 손녀들 먹 거리를 챙겼다. ‘손녀바보’ 아내는 손녀들을 위한 물건을 살 때는 연신 입가에 미소가 넘실댄다. 이곳저곳 들러 가격도 물어보고, 아이쇼핑도 하면서 3백 미터쯤 길게 펼쳐진 장을 돌아본 후 다시 뻥튀기 골목으로 들어섰다. 웬걸,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도 아직 멀었다. 분명 이 마음 약한 뻥튀기 아저씨가 바쁜 일 있다며 순서를 새치기하는 아낙들의 콧소리 섞인 생떼를 이겨내지 못했을 터다.

당진장의 모습. 5일마다 서는 당진장에는 늘 인파로 붐빈다.
“한 바퀴 더 돌고 오슈, 점심 먹을 때도 다 됐구먼유.” 아저씨의 능청스런 재촉에 ‘이번엔 순서를 지켜주셔야 해요’라는 다짐을 받으며 다시 장터로 발길을 돌렸다.
마침 출출한 것이 시장기가 느껴져 장터국수집으로 들어섰다. 이 집의 대표상품은 한 그릇에 4,000원 하는 장터칼국수다. 칼칼하게 우려낸 멸치육수에 투박하게 썰어진 국수가닥이 어우러져 내는 맛이 그만이다. 만원을 내고 2000원을 거슬러 받으니, 7,8천 원 식대에 익숙한 때문인지 공돈이 생긴 기분이다.
두 바퀴째 시장을 도는 터라, 눈요기나 하자고 장마당을 천천히 누볐다. 마침 신발을 파는 노점에 진열된 털신이 있어 내 것과 아내 것, 두 켤레를 12,000원에 구입했다. 절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털신인데 막상 시골에서 겨울을 맞고 보니 왜 필수품인줄 알겠다.
한 시간 가까이 시장구경을 하고난 후 뻥튀기 장을 다시 찾았다. 우리 콩을 담은 옛날 분유깡통 앞에는 여전히 쌀을 담은 깡통 두 개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한 통 튀기는데 평균 10분이라니 30분은 더 버텨야 한다.
뻥튀기를 하러 온 사람들과 이야기꽃이나 피워야겠다는 요량으로 슬쩍 끼어들었다. 우리 부부를 지켜보던 80대 중반쯤 돼 보이는 할머님이 말문을 여신다.
“어디 사시유?”
“면천 살아요. 거기서 2년째 농사짓고 있어요.”
“서울서 왔슈? 농사짓기는 아까운데…”
“농사짓기 아깝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은 농사짓기에는 젊어유. 아까워.”
“젊다뇨? 이사람, 할아버지에요.” 아내가 은근슬쩍 대화에 끼어든다.
“그런데 할머니, 옛날엔 뻥튀기를 참 많이 먹었어요. 그렇죠?” 아직은 할아버지 소리가 겸연쩍어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 순간 뻥튀기 아저씨가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럼유. 옛날에야 어디 먹을 게 있었슈. 애들 군것질 거리도 마땅찮았구, 먹을 게 없어서 뻥튀기로 양을 한껏 늘린 후 물과 함께 먹으며 허기를 달랬지유. 그런데 요샌 잘 안 먹어유. 옛날엔 스무 명이나 뻥튀기를 했어도 사람들이 저만치 줄을 섰다니까. 또 아침에 와서 저녁까지 기다리며 흩어지는 뻥튀기를 집어먹는 아이들도 많았지유. 후~, 변했슈,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슈.”

뻥투기 아저씨의 '뻥이요~'라는 구호와 함께 뿜어나오는 김. 연기처럼 뻥튀기장을 지웠다가 이내 사라진다.
10분마다 아저씨가 익숙한 구호 ‘뻥이요’를 외치면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일제히 귀를 막는다. ‘뻥!’ 소리와 함께 뻥튀기 기계에서 뿜어져 나온 김이 뿌연 연기처럼 시야를 가렸다가 이내 사라진다.
‘세상도 사람도 너무 변했다’는 뻥튀기 아저씨의 체험에서 나오는 넋두리, 뻥튀기 장을 하얗게 지웠다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뿌연 김! 이보다 더 실감나게 가슴에 팍팍 꽂히는 무상(無常)을 보여주는 법문이 있을까. 조선의 고승 진묵대사의 ‘진승은 저자거리로 내려가고, 가승들만 넘쳐난다’는 말이 회자되는 이즈음, 모처럼 시장에서 선지식을 만나는 환희를 맛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