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치유적 요소 내재, 문학치료 도구로 활용 가능”
동방대학원대학교 변영희 박사, 학위논문서 밝혀

만학의 소설가 변영희 박사
우리나라 소설 중 ‘최고’의 걸작은? 고등학교 학생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구운몽〉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교과서와 각종 시험의 지문에서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구운몽〉은 조선 숙종 때 서포 김만중이 선천 유배 시절에 지은 고소설. 불도를 닦던 성진이 여덟 선녀와 희롱한 죄로 인간 세상에 양소유로 태어나 여덟 여인과 인연을 맺고 입신양명하여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렸으나 깨어 보니 모두 꿈이었다는 내용이다. 문체가 우아하고 묘사가 세밀하며 사상적 깊이까지 더한 작품으로, 저작 초기부터 상층 사대부에서 시작해 하층민에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레 독서층이 넓어졌다.
지명도가 높은 만큼 <구운몽>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관련 연구논문 수십 편에, 석·박사학위 논문도 십여 편이나 있다. 이들 연구를 종합해보면, <구운몽>의 주제가 ‘부귀공명 일장춘몽’이라는 설, 굴원의 《초사》와 〈이소〉가 남긴 뜻이 있다는 평가 등으로 요약된다. 《초사》와 〈이소〉는 모두 초나라 국운을 탄식하며 돌을 품고 멱라수에 몸을 던져 순국한 굴원의 글이다.
이런 기존의 연구가 <구운몽>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 채 표피적인 주제나 주변적인 의미를 작품의 핵심 주제로 잘못 판단했다는 지적과 함께 <구운몽>을 새롭게 평가한 논문이 나왔다. 제목은 『<구운몽>에 함유된 불교사상과 마음치유 요소 연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에서 지난 8월 박사학위를 받은 변영희 박사가 논문의 주인공이다.

변영희 박사의 학위논문 표지
변 박사는 <구운몽>이 구현하는 서사는 「금강경」과 같은 불교경전에 널리 차용되는 구름과 꿈의 비유와 연관이 있고, 또한 불교의 구도 행각과 연결돼 있음에 주목했다. 나아가 김만중이 슬품과 우울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 <구운몽>을 쓰게 됐다는 창작 동기에도 주목했다.
변 박사는 <구운몽>에 함유된 불교적 요소와 불교사상의 양상을 점검했다. 금강경의 공사상, 법화경 사상, 능엄경 사상, 유식사상, 정토사상 등 불교사상이 농축돼 독자로 하여금 ‘성찰’과 ‘방하착’의 사유를 통한 마음치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변 박사는, <구운몽>이 기존 사대부들이 가졌던 한문학 중심의 문학관이 아니라 우리말로 된 최초의 독자성을 지닌 문학관을 보여주었다는 점, 불교적 소재를 적절하게 활용해 인식의 전환이라는 탁월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점을 <구운몽>이 함유하고 있는 의의와 가치로 밝혀냈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구운몽>에 마음 치유적 요소가 내재돼 있어 <구운몽>이 문학치료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낸 것. 변 박사는 “문학은 작가를 치유함으로써 글을 쓸 동기를 제공한다. 또한 등장인물을 치유해 그것을 바라보는 독자들에게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준다.”면서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를 치유하고, 양소유에게 새로운 자기성찰과 깨달음을 일깨워 주며, 또한 자신을 걱정할 홀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는 창작동기가 이를 잘 입증한다.”고 말했다.
“<구운몽>이 결코 ‘허무와 절망’의 서사(敍事)가 아니라 ‘해방과 희망’의 서사로 읽혀질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한 부분도 주목된다. 변 박사는 “기존의 해석과 달리 <구운몽>은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인생에 대해 성찰하고 관조하는 기회를 갖게 하고 아울러 불안과 외로움 속에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치유와 긍정의 힘을 갖게 한다.“고 설명했다.
만학의 소설가 박사… 수려한 문체에 “논문이냐 수필이냐”
올해 77세인 변영희 박사는 충북 청주 출신의 소설가다. 장편소설로 <마흔넷의 반란>, <황홀한 외출>, <오년 후>, 소설집 <영혼 사진관>이 있으며, 수필집으로 <비오는 밤의 꽃다발>, <애인 없으세요?>, <문득 외로움이> 등 15권이 있다.
스님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그 분이 한 때 주석했던 서울 경희대 옆 연화사는 어린 시절의 놀이터였다. 아버지는 이후에도 외할아버지가 계시던 충청도 지역의 안심사, 법주사, 용화사에도 형제들을 자주 데리고 가셨다. ‘머리 깎으면 좋겠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뒤로 하고 학창 시절 이웃종교를 경험하며 사유의 세계를 넓혀나갔다. 젊은 시절 사업을 하다 병을 얻어 수년 간 투병 생활을 해야 했던 그에게 어느 날 2남1녀 가운데 둘째 아들이 말했다. “엄마는 공부 말고 잘 하는 게 뭐가 있나? 엄마, 지금이라도 공부를 다시 시작해보는 게 어때?”
그 말에 용기를 얻어 “<구운몽>을 연구해보라”는 막내 딸의 안내를 받기 시작했다. 문학도는 불교를 알아야 제대로 된 문학도가 된다는 생각이 늘 머리를 감쌌다. 동국대 불교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한 지 10여 년. 그 사이 집안에 큰 불행한 일이 닥쳤다. “그 공부해서 교수할 군번도 아니고 뭘 그렇게 투자를 많이 하냐”는 주위의 걱정과 우려에도 그의 노년을 기꺼이 헌납했다.
마침내 논문이 완성됐다. 작가가 쓴 논문은 비전공자도 읽기가 편했다. 심지어 “논문이냐 수필이냐”는 농담까지 들을 정도로 그의 수려한 문체는 심사위원들에게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8월 25일 학위수여식에서 총장은 그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