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빛이 물든 강물
서성림 유고시집, 천년의시작
116쪽, 9000원

부부는 좀 떨어져 있어봐야 서로가 귀중한 존재임을 알게 되는가 보다. 서성림 시인이 그걸 가르쳐준다. “(…)혼자 밥해 먹으며/다림질도 한다니/집안일은 여자만 하는 줄 알던 고지식/새 사람 되었네 // 떨어져 있으니/미련스럽게 퉁퉁거리던/지난날 후회하며/환한 미소 지을 날 기다리는/사랑지킴이 (15쪽, ‘부부’)” 

그렇게 어렵던 시절을 30년 쯤 함께 겪고 나니 이젠 더 이상 티격태격할 일도 없다. “(…)유난하던 남편의 외고집/세월의 선물인지/요즘은 한결 누그러졌다//혼사를 두 번 치르고/손녀까지 얻고 보니/나도 조금 부드럽고/너그러워졌다 // 참 다행이라며/남은 생은 웃고 살자/두 손을 잡는다 (16쪽, ‘부부2’)

세월은 사람을 달관의 경지로 이끈다. 누구이든 젊은 날엔 남과 경쟁하며 밖으로만 향했을 터. 나이 들면서 가족을 생각하고, 자연을 동경하며, 나아가 종교를 삶의 중심으로 들어오게 한다.

『노을빛이 물든 강물』에는 남편, 며느리, 손자, 손녀가 자주 등장한다. 가족사랑은 이런 것이라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집안 걱정/세상 걱정/머릿속에 넣고 // 운전대 꼭 잡고/손녀 데리러/잠실서 수지로 // 굳은 얼굴/거친 몸짓으로/도착해도 // 활짝 웃으며/달려와 안기는 순간/마음은 창공을 난다 (33쪽, ‘상봉’)

이렇게 사랑의 마음을 한껏 펼치던 60대 중반 시인에게 어느 날 어둠의 그림자가 엄습해온다. “(…)갑자기 후들거리는 다리/굳어지는 입술/머리 아파/고개 들 수 없다 // 언제부터/병이 찾아와/숨어 있었나보다 // 놀란 가슴/응급실에서 여러 검사 하고 나니/뇌경색이 생겼다(…) (72쪽, ‘입원’)

11개월 여 투병했지만 끝내 시인은 일어서지 못했다. ‘학창 시절 일어학원에서 눈이 맞아’ 불광사 광덕 스님의 주례로 결혼했던 남편 정기웅(前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과 왕식, 주은, 준식 등 세 자녀, 그리고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 다섯 명을 남긴 채.

하지만 떠난 시인은 지상에 남은 우리들에게 말을 걸어온다. “청계산 기슭/남보다 먼저 피어나/고요한 천지에 함박웃음으로/꽃잎 펼치고/까만 꽃술 자랑하며/하늘하늘 행인을 유혹한다 // ‘나 예쁘지 않아요?/쉬었다 가세요-’(…) (41쪽,  ‘진달래’)

서성림 유고 시집을 읽은 김용택 시인은 한 사람의 생이 담긴 이 시집이 우리들에게 평화, 안정과 그리고 안심을 일러준다고 평한다. “아무 곳이나 펼치고 가만히 숨을 고르며 읽어보면 시가 어려워야 한다는 것도 꾸미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며, 시가 거창하게 인류와 사회에다 대고 외칠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108쪽)

책 뒷 표지에 실린 강은교 시인의 추천사는 정곡을 찌른다. “그의 시에선 ‘새벽 빗소리’ 내음이 난다. 오늘 그 내음을 잡아서 당신이 걸어가는 길에 뿌려보시라. 그 내음 따뜻이 당신의 손을 잡아주리라.”

 

故 서성림 시인은?

1951년 서울 출생. 1975년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1978년 정기웅 교수(前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와 결혼(주례: 광덕 스님). 1990년 조계종 불광사에서 신행활동(법명 자명심). 1995년 불광사 마하보디 합창단 입단. 일요법회 및 재일 음성공양, 국립국악관현악단 협연 등 2010년 까지 활동. 1996년 마하보디 합창단 소프라노 파트장 역임. 1998년 마하보디 합창단 공로패 수상.

 

2000년 『교단문학』으로 등단. 등단 후,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운영위원회 위원), 한국불교문인협회, 강남문인협회, 이대문인협회(이사 역임), 학여울문학회, 대경문학회(회장 역임) 등 활동. 2001년 대경문학회 동인지 『꿈을 빚는 사람들』 발간. 2002년 한국강남문학상 신인상 수상

 

2004년 시집 『초여름의 향기』 출간. 2006년 대경문학회 동인지 『그물에 걸린 별무리』 발간. 학여울문학회 문인지 『학여울』 발간. 이후 2014년까지 활동. 2007년 시집 『무지갯빛 바람소리』 출간. 2008년 이대동창문인회지 『맛. 멋. 그리고 향…기』 발간, 이후 2014년까지 활동. 불광사 다도반 활동 시작. 2014년 이대동창문인회지 『어디쯤일까』 발간. 『학여울』 12집 발간.

 

2015년 3월 10일 뇌경색으로 입원 치료. 2016년 2월 18일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