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들의 열반송은 속박과 번뇌, 미망과 아집 속에서 살아온 일생을 더듬고 마지막 입멸의 순간에 던지는 ‘깨달음의 노래’이다. 그래서 열반송은 유한의 세계가 아닌 손닿을 수 없는 무한의 세계이며 생사의 걸림이 없는 자유자재와 결코 이름 지을 수 없는 선의 세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열반송은 큰스님들이 가시는 길에 대중을 위해 남겨놓은 마지막 법문이다. 그러므로 열반송은 기본적으로 자비심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비심이 없다면 육신의 수명이 다하는 결코 녹록치 않을 마지막 순간에 어찌 마음을 내어 법문을 토해낼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 일구이기에 열반송은 한 선지식의 생애를 농축한, 한 선지식의 일생동안 경영한 살림살이를 응축한 일종의 엑기스 같은 존재이다. 열반송이 다른 게송들에 비해 훨씬 더 큰 감동과 교훈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이 책은 성철 스님 외 92인의 큰스님이 남겨놓은 열반송을 불국사 주지로 있는 성타 스님이 엮어놓은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짧은 해설과 감상을 덧붙여 놓았다. 또한 각장마다 스님들이 걸어온 행적과 일화들을 함께 소개하여 큰스님들의 삶의 흔적들을 간결하게 정리했다. 생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큰스님들의 말씀, 열반송. 물 흐르듯이 꽃이 피듯이 그냥 그렇게 욕심 없이 세상을 살다간 스님 네들의 일상과 같은 선어들이 주옥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삶이 향기로왔기 때문일 것이다.

일생 동안 돌고 돌았지만

아직 한 걸음조차 옮긴 바 없네.

본래부터 그 자리는

천지 이전의 것이었네.

廻廻一生

未移一步

本來其位

天地以前

성림 월산 스님의 열반송이다. 간결하고 단아한 것이 근현대 고승들의 열반송 중 백미로 손꼽히는 깨달음의 노래이다. 이 열반송에는 월산 스님 한 분의 삶 뿐만이 아니라 그의 법맥에 녹아 있는 경허, 만공, 보월, 금오로 내려오는 도도한 진리의 혈맥이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서암 전 조계종정의 열반송은 솔직하다 못해 담백하기까지 하다. 스님은 입적을 앞두고 한 말씀 남겨달라는 후학들의 요청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나는 그런 거 없다.정 물으면“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그게 내 열반송이다.

기자는 약 15년 전쯤 봉암사에서 서암 스님을 친견하고 두 시간가량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느꼈던 특유의 솔직함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스님은 “스님, 요즘 수행자들이 계행이 좀 철저하지 못하다는 말이 많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 답하시기를, “그래도 내 젊을 땐 혹시 길가에서 여인과 마주치면 여인들이 옆으로 돌아서서 내외를 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요. 여자들이 아주 깨 벗고 다니지 않습니까. 솔직히 내가 요즘 젊음이로서 출가했다면 자신이 없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요즘 수행자들 잘 하고 있는 편입니다.”하는 것이었다.그런 스님에게서 얼마나 큰 감동을 느꼈던지, ‘아 이래서 사람들이 서암 큰스님, 서암 큰스님 하는구나’라는 혼잣소리를 부지불식간 되뇌인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는 이밖에도 많은 스님들의 열반송이 다뤄져 있다. 한 편 한 편이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일독을 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