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원로 월주 스님, 회고록·사진집·법문집 펴내
토끼뿔 거북털
월주 스님 지음, 조계종출판사
724쪽, 3만원
太空
태공 송월주 대종사 사진집 간행위원회 엮음
조계종출판사
344쪽, 3만5000원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
송월주 지음, 민족사
400쪽, 1만6500원
2003년 10월 10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직 사임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그날 저녁 고건 국무총리는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과 개신교의 강원용 이사장, 그리고 불교의 월주 스님을 비롯해 각계 시민대표들을 총리공관 저녁모임에 초청해 의견을 들었다. 무거운 책임에 눌려 내각 총사퇴까지 고민했던 총리에게 세 종교지도자는 “국정 공백이 없도록 내각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조언과 격려는 고건 총리가 재신임정국을 극복하고 훗날 탄핵 위기를 관리하는데 버팀목이 됐다.
김수환, 강원용, 송월주. 이들 세 지도자는 최근 현대사에서 늘 함께 거론돼왔던 우리 사회의 원로다. 두 분은 타계했지만 산수(傘壽)를 넘긴 월주 스님은 매년 10여 차례 해외 구호 현장을 방문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월주 스님이 금산사 만월당에서 자신의 삶과 수행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월주 스님이 최근 회고록과 사진집과 법문집을 한꺼번에 펴냈다. 출간 기념으로 9월26일 금산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스님은 회고록 제목부터 설명했다.
“육조혜능대사 말씀 중에 ‘불법은 이 세간 가운데 있으니 세간을 떠나서 깨닫지 못하네. 세간을 떠나서 깨달음을 찾는다면 마치 토끼뿔(거북털)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토끼뿔(거북털)은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죠.”
『토끼뿔 거북털』은 10.27법난 이야기로 시작된다. 50년대에 출가해 불교정화를 온몸으로 겪었으나 10.27법난으로 개혁의지는 꺾이고 만다. 시민운동에 발을 들이고 1994년 개혁종단의 총무원장으로 복귀해 4년 간 ‘깨달음의 사회화’라는 새로운 신행운동을 전개한다. 다시 사회로 나와 위안부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 집’과 국제구호단체 지구촌공생회를 이끌면서 ‘진리는 세간 속에서 실현해야한다’는 자신의 화두를 되새긴다. 책 후반부는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를 비롯한 사회인사 40명과 법정 스님, 청담 스님을 비롯한 불교인사 34명과의 인연이야기다. 광범위한 활동을 펼쳐왔던 월주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론 조계종의 근현대사이며 또 때론 질곡과 영광을 함께했던 한국사이기도 하다.
회고록에는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한 쓴소리도 있다. <오도송과 임종게>(227쪽)에 대한 일갈이 대표적이다. 스님은 “생전에 오도송을 전한 적도 없고, 임종게를 직접 남기지도 않았는데, 입적 후에 오도송과 임종게가 발표되는 일이 있다. 이것은 진실하지 않다. 오히려 평생 수행자의 길을 걸은 은사와 스승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회에 보내는 목소리도 따끔하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278쪽) 이외에 남북문제에 있어서 휘둘리지 말 것(288쪽)을 주장하기도 하고, 시민사회운동은 도덕성을 그 뿌리에 두어야 한다(246쪽)며 시민운동 활동가의 원칙 없는 정치 참여나 일부 도덕성 문제를 질타하기도 한다. 세상이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평소 스님이 보여준 진심이 담긴 행보 때문이다. 불교계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사진집 『太空』에는 1950년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까까머리 사진을 비롯한 60~70년대의 흑백사진과 최근의 국제구호 현장 활동사진까지, 80여 년 삶과 60여 년 수행의 자취 400여 장면이 담겨 있다.
월주 스님은 조계종총무원장,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금산사와 영화사 조실, 지구촌공생회 이사장, ‘나눔의 집’ 이사장, ‘함께 일하는 재단’ 이사장 등의 소임을 맡아왔다. 그동안 해온 법문과 축사, 권두언, 인터뷰 기사 등의 편린을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에 실었다. 스님의 일상을 담은 김묘광 작가의 사진이 삽입돼 이 책에 깊이 배어 있는 월주 스님의 따뜻한 가르침을 환기시킨다.
“일단 미수(米壽·88세)까지 활동하고 건강하면 더 할 겁니다. 이번에 못 담은 이야기를 모아 3년 후에 개정증보판을 낼 계획입니다.”
월주 스님은 거처인 금산사 만월당에서 기자들에게 자신의 불교관을 설명했다.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입니다. 지혜의 수행과 자비의 실천이 수레의 양쪽 바퀴와 같고 새의 양 날개와 같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수행에만 지나치게 치우친 면이 있는 한국불교의 풍토를 반성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앞장서야 한다면 내가 하자’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죠.”
월주 스님은?
1935년 전북 정읍 출생. 1954년 법주사에서 금오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56년 화엄사에서 금오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각각 수지했다. 정화운동이 한창이던 1961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파격적으로 130여 개 사찰을 관할하는 금산사 주지로 임명됐다.
이후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원(1966년~1981년), 총무원 교무부장(1970년~1973년), 총무부장(1973년), 중앙종회의장(1978년)을 거쳐 1980년 4월 제17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에 당선됐다. 하지만 6개월 만에 신군부가 일으킨 10.27법난으로 강제 퇴임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1994년 11월, 14년 만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재선출돼 개혁종단을 이끌었다. 이후 현재까지 불교계는 물론 시민사회운동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민족서로돕기 상임공동대표 겸 이사장(1996년~2006년), 실업극복국민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1998~2003), ‘나눔의 집’ 이사장(1998년~현재), 지구촌공생회 이사장(2004년~현재) 등을 역임하거나 맡고 있다.
종교계 안팎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인정받아 2000년 국민훈장모란장을, 2011년 국민훈장무궁화장을 각각 수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