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 칼럼] 한 지식인 불자를 대하는 조계종의 반응을 보고
"차분한 대처 아쉬워…‘과녁’을 봐야지 ‘표현’에 연연해서 되겠나"
Ⅰ.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기원정사)에 계실 때, 어느 날 제자들에게 과일의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종류의 과일이 있다. 어떤 과일은 설고도 익은 것 같고, 어떤 과일은 익고도 선 것 같다. 또 어떤 과일은 겉도 설고 속도 선 것 같고, 어떤 과일은 겉도 익고 속도 익은 것 같은 과일이다.
사람도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설고도 익은 것 같은가. 그는 오고갈 때 행동이 산만하지 않고 눈빛이 늘 법다워 보인다. 그러나 그는 계율을 범하고, 바른 행을 행하지 않으며,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인 척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익고도 설은 것 같은 사람인가. 그는 성질도 급하고, 행동이 추하며, 눈길이 단정하지 않고, 좌우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항상 계율을 지키며, 위의를 잃지 않으며, 조그만 허물을 보아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겉도 설고 속도 선 것 같은 사람인가. 그는 계율도 지키지 않고 예절도 모른다.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인 척 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겉도 익고 속도 익은 사람인가. 그는 계율을 잘 지키고 행동을 조심한다. 위의와 예절을 모두 성취하였으며, 조그만 허물을 보아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그대들은 이 네 가지 과일 중에 잘 익은 과일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처님은 다시 구름의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종류의 구름이 있다. 어떤 구름은 우레는 치는데 비는 내리지 않고, 어떤 구름은 비는 내리는데 우레는 치지 않는다. 또 어떤 구름은 우레도 치고 비도 내리며, 어떤 구름은 우레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다.
사람도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우레는 치는데 비는 내리지 않는 사람인가. 그는 경전을 읽거나 소리 내어 잘 외운다. 그러나 남을 위해 널리 설법하지 않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비는 내리는데 우레는 치지 않는 사람인가. 그는 온갖 착한 법을 닦아 털끝만큼의 실수도 없다. 그러나 그는 경전을 소리 내서 외우지도 않고 남을 위해 설법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비도 내리지 않고 우레도 치지 않는 사람인가. 그는 행동에 법도가 없고 경전을 소리 내어 외우지도 않고 남을 위해 설법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우레도 치고 비도 내리는 사람인가. 그는 행동이 단정하며 배우기를 좋아하며 배운 것은 남을 위해 설법해서 받들어 가지게 하는 사람이다.
그대들은 이 네 가지 구름 중에 우레도 치고 배도 내리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증일아함 17권 제25 <사제품> 제7, 10경
부처님을 흔히 비유의 왕이라고 찬탄한다. 이 경에서도 부처님은 ‘익은 과일과 설은 과일’, ‘우레와 비’를 비유로 들어 제자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신다. ‘익은 과일과 설은 과일’의 비유는 품위 있는 행동에 관한 가르침이고, ‘우레와 비’의 비유는 설법하지 않는 제자를 나무라는 가르침이다.
특히 이 중에 ‘우레와 비’의 비유는 비구들을 대상으로 한 법문이므로 스님에게만 해당하는 가르침이라고 제한해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스님들이 밭을 갈지 않는 것처럼 지식인들도 경제적 측면에서 생산노동에 종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Ⅱ.
노암 촘스키(1928~ )라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철학자, 인지과학자가 있다. 그는 1955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변형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강의를 시작했고 32살의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었다. '변형생성문법'이라는 새로운 언어학 이론으로 학계에 혁명을 일으켰으며 그의 수많은 논문들은 주요 연구 대상이 되었다. 그는 오늘날 단순히 한명의 언어학자일 뿐만 아니라 숱한 정치적 사건에 대해 발언하며 세계 여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 되고 있다.
촘스키의 삶은 언어학자와 실천적 정치평론가라는 두 개의 기둥을 주축으로 한다. 그는 미국의 베트남전쟁을 강력하게 비판한 것을 시작으로 국제문제에서의 강대국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횡포를 지속적으로 드러내며 고발함으로써 '세계의 양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비판은 미국의 대외정책이 주류 언론과 지식인의 유착에 의해 전개되고 있음에 특히 주목하고 있으며 그 본질을 폭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의 비판은 이제 신자유주의에 토대를 둔 오늘의 세계질서에 대한 비판으로 연장되고 있다.
특히 그는 1966년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지식인의 책무>를 통해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 하며, 정부의 명분과 동기 이면에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기고문은 그를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각인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자칭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로서, 다국적 거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촘스키의 진실을 향한 지적 성찰은 90을 앞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촘스키는, 지배 권력의 선전에 세뇌되어 왜곡된 진실을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적인 자기 방어법을 제공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제시한다. 타락과 탐욕으로 범벅된 세계 지배 권력의 심장을 정면으로 겨누는 촘스키의 투쟁은 종종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진실을 도둑맞고 사는 약자’들의 열렬하고도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해가고 있다.
Ⅲ.
최근 불교계에 한 지식인 불자를 향한 '융단폭격'이 시작되고 있다. 융단폭격을 가하는 이들의 주장이나 논리에도 나름의 일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지금과 같은 ‘과도한’ 공격은 행동하는 지식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불교의 현실에서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비판과 차분한 대응을 해야지, 아예 매장하겠다는 식의, 아무리 생각해도 성숙해보이지 않는 공세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자비문중을 표방하고 있는 절집에서 말이다.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에 어떤 이론도 있을 수 없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집단이나 사회, 국가에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모든 일이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사를 돌이켜보면 지식인 계층에서 불교가 외면 받았을 때 불교는 쇠락의 길을 걸었음을 알 수 있다. 지식인 불자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불교역사는 잘 보여준다. 한 사람의 지식인을 지나치게 공격해서 매장에 성공했을 때 불교계에 과연 무엇이 돌아올까. ‘달을 봐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라’는 불가의 가르침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 지식인 불자가 한국불교를 이끌고 있는 분들을 향해 쏟아낸 질타의 ‘본질’을 봐야지 그의 ‘표현’에 목숨을 거는 듯 보여서야 되겠는가.
그동안 한국불교계는 사람을 키우는 일에 이웃종교에 크게 못 미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러 통계에서 불자들의 학력이 이웃종교에 비해 낮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런 소홀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부디 비판이나 대응도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바탕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