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두 엽편葉片 소설 ‘철수와 영희’, 그 스물한 번째 이야기

철수 오빠가 불안해하게 되니까 나도 ‘가끔 흉몽을 꾸고, 검찰에 불려 갈까봐 겁이 난다’는 말을 했는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나의 걱정을 더 크게 해주는 판결 소식이 전해졌으니 이를 어찌 한단 말이냐.

7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 남부지법에서 이루어진 ‘3년 전 방화대교 남단 접속도로 붕괴사고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재판 결심 공판’에서 공사 관련자 전원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판사는 그 사고를 ‘나무 탑의 블록을 하나씩 빼는 젠가(Jenga) 게임'에 비유하며, 전원에 유죄 판결을 내린 이유를 “젠가에서는 마지막으로 나무 블록을 빼다가 탑을 무너뜨리는 사람에게 책임을 지게 하지만, 실제로는 나무 블록을 빼는 참가자의 행위 하나하나가 탑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다만 “시공사가 가장 과실이 크고, 책임감리가 그 다음이다. 설계사의 책임도 절대 가볍지 않고 하도급업자가 상대적으로 가장 가볍다”고 밝혔다고 한다.

남부지법의 이번 판결이 내게는 희망 반, 절망 반이다.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경계에 자리 잡은 그 수련원, 내가 엉터리 공사를 했다고 비판을 받고 있는 그 수련원 공사는 실상 아무런 면허도 갖고 있지 않은 내가 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철수 오빠가 우리 고향의 모 건설업체 이름을 빌려 재단에서는 그곳과 계약을 체결하고 그 회사는 아주 작은 금액을 면허 사용 대가로 받은 뒤 실제 공사는 내가 다 한 것이라서 이 문제가 크게 불거질 때, 나 “김영희가 시공사이냐 하도급업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법리 다툼의 쟁점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나로서야 “나는 단순 하도급업자일 뿐이나 책임을 가장 적게 물어야 한다”고 우겨야 하겠지만, 나와 오빠에게 이름을 빌려준 고향 건설업체인들 호락호락 넘어가겠는가. 아마 우리 남매의 온갖 비리를 다 까발려 우리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도 있다면서 자기 보호에 나설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신문 기사를 보는 내 마음이 ‘희망’ 쪽으로 갔다가 다시 ‘절망’ 쪽으로 가는 과정을 1분에도 몇 차례씩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사를 보고 난 뒤, 궁금해서 젠가가 어떤 게임인지 백과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이런 것이더라. 독자 여러분도 참고로 알아 두셔야 혹 나처럼 부실공사나 비리에 연루될 때에 책임을 피하는 방법을 미리 찾아두기에 유용할 것이다. 역시 유비무환有備無患 아니겠는가 말이다.

젠가jenga: 3개씩 18층으로 이루어진 나무 블록 탑의 맨 위층 블록을 제외한 나머지 층의 블록을 하나씩 빼서 다시 맨 위층에 쌓아 올리는 보드게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그런데 나는 서울 남부지법의 이번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왕 젠가 게임까지 거론을 할 정도라면, 판사도 말을 했듯이 그 게임의 법칙에 따라 “마지막으로 나무 블록을 빼다가 탑을 무너뜨리는 사람에게 책임을 지게” 해야 할 것이고, 그럴 경우 내가 엉터리 시공을 한 그 수련원이 붕괴되어 인명사고가 난다고 해도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고 그 수련원을 잘못 관리한 오빠 재단의 관리인과 사고가 날 때에 그곳에 머무른 사람이 모든 책임을 져야 마땅한 것이다. 이런 식의 판결이 이루어지는 것도 그놈의 ‘민주화’ 바이러스가 사법부에까지 깊숙이 침투해 들어갔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내가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공사를 한 곳도 준공검사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로부터 1년 가까이 된 바로 몇 달 전까지도 대충 처리해서 당장 무너질 것만 같은 상태였는데, 판사가 언급했던 ‘젠가 게임’에서처럼 지하실에 대충 세워놓은 가설架設 자재와 이 돌을 슬쩍 빼버리기만 해도 건물 전체가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바깥세상에서 부실공사 관련한 소문이 퍼지게 되니까 철수 오빠가 재빠르게 아이들을 시켜서 겉에서 보기에는 멀쩡하게 보이도록 보수 공사를 해놓고 오빠 말 잘 듣는 아이들 시켜서 “아무 문제없는데 괜히 시끄럽게 한다”는 식으로 대응하도록 하였다.)

본래 이렇게 엉터리 공사를 한 것을 나도 알고 오빠도 알고, 그 공사 감독하러 와 있던 사람도 아는 것이다. 오빠와 나는 한 1~2년 지나서 또 다시 증개축이나 보수 공사비 명목으로 몇억 원 챙겨볼 속셈이었고, 감독하러 와 있던 사람은 ‘혹 내게 보수 공사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서 입 꾹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소문이 커지고 언론에까지 보도가 되면서 나는 보수 공사 해서 돈을 챙길 엄두도 못 내고 말았지만, 그 인사는 연이은 보수 공사로 입이 찢어질 정도로 행복해 한다고 듣고 있다. 옛날 같으면 철수 오빠에게 이런 짓을 하는 게 어림도 없는 짓이지만, 이제 철수 오빠도 직원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인심 쓰는 시늉도 해야 하고 게다가 그 인사의 입을 막지 않으면 혹 경찰이나 검찰 조사를 받을 때에 우리가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어서 더욱 그 인사를 배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닦아놓은 길을 다른 놈이 가면서 실속을 챙기고 있는 이 수모를 어찌 감당할까. 속이 쓰리기만 한데, ‘철수 오빠 속은 나보다 훨씬 더 뒤틀리지 않을까?’ 하고 자위하고 마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쨌든 3년 전에 일어난 서울 방화대교 접속부분 붕괴 사고 관련자 전원에 유죄 판결을 내린 이번 법원의 판결을 보면, 아무리 이 나라 최고 대학교 법대를 나온 오빠의 뒤를 봐주는 배경이 든든하다고 할지라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을 것만 같으니 앞으로 당분간 편하게 잠을 잘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렇잖아도 그 서울법대를 졸업한 판사 출신 변호사와 진모 검사장, 우모 수석비서관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이라서 이럴 때에는 철수 오빠의 출신 학교를 재빠르게 바꾸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오빠의 자존심이 허락하려나 모르겠다.

하긴 철수 오빠는 주로 ‘재단법인 대한불교〇〇〇 이사장’라고 새긴 명함을 사용하다가, 어떤 때에는 ‘〇〇아카데미 원장’이라는 명함을 쓰기도 하면서 박쥐처럼 자신을 속이고 바꾸는 데에 달통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눈 깜짝 할 사이에 쉽게 지방의 군 소재지에 있는 대학교 졸업했다고 학력을 위 ‧ 변조僞變造해낼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들 말고도 철수 오빠가 요즈음 불안해하는 이유는, 내가 이곳을 통해서 프랑스의 ‘이름만 수련원’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쫙 퍼뜨려서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 점도 있는데다가 오빠 말이라면 ‘고양이 앞의 쥐’처럼 쩔쩔 매던 올케 언니까지 고개를 쳐들고 말대꾸를 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때로는 오히려 오빠를 야단치려고까지 한다니 70대 중반에 들어선 철수 오빠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그 까닭을 잘 모르겠다. 하긴 오빠가 올케에게 잘 한 것이라고는 ‘이름만 수련원’ 시찰 명목으로 프랑스 여행 시켜주는 것 빼고는 단 한 가지도 없었으니 이제 그 업보를 받을 때가 되기도 했다. 오빠로서야 “무슨 말이냐? 내가 가끔 오페라 구경도 같이 가고, 울릉도에도 함께 가서 대접도 받게 하고 그러지 않느냐? ……”고 볼멘소리를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남들 앞에서 ‘아내를 지극히 위하고 사랑하는 척’ 쇼(show)로 한 위선적인 행위였음을 누구보다도 올케 언니가 잘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으며 오빠의 자식들도 잘 알고 있음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오죽 했으면 올케 언니의 친구들 중에서 어쩌다 나를 우연히 만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〇〇고모님, 오빠한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요즈음 세상에 아내를 그토록 무시하는 남편이 어디 있습니까? 이제 그만 하라고 해주세요. 우리 친구가 불쌍해서 못 보겠습니다. 몇 개 국어에 능통하고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역사와 사상을 꿰뚫고 계신 데에다 국제적인 매너에도 밝으신 젠틀맨인 줄 알았는데 영 아니더군요. 대단한 위선가 짓을 이제 그만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면서 퍼부어대기까지 하겠는가. 친구의 시누이에게 그 친구의 남편 흉을 볼 정도라면 우리 철수 오빠라는 인물이 어느 정도일지 독자여러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철수 오빠를 보면 나치 시절 ‘안락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의사들 중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았던 사람’이라고 하는 의학 박사 호르스트 슈만Horst Schumann이 떠오른다고 하는 사람까지 있다.

“슈만은 1940년 6월 존넨슈타인Sonnenstein에 있는 가스 실험실의 책임자로 임명된 뒤, 실험 대상자를 물색하고자 종종 아우슈비츠에 들렀다. 그는 다른 친위대원들과 달리 가스실 앞에 선 유대인 수감자들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존칭까지 사용하며 말을 건넸다. 이런 그의 태도 때문에 유대인들은 쉽게 속아 넘어갔다. 그들이 휴양소로 알고 갔던 곳은 악명 높은 존넨슈타인 가스실이었다.

1942년 가을, 빈틈없는 가스실 전문가로 인정받게 된 슈만은 총통실의 명을 받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의학실험실에 부임했다. 그의 임무는 집단을 대상으로 방사선을 이용했을 때 불임 가능성 여부를 실험해보는 것이었다. 유대인 수감자들 사이에서 다른 친위대 장교들과는 달리 정중하고 조용한 사람으로 소문난 슈만은 실험 대상자를 자기 손으로 직접 골랐다. 그는 젊고 건강한 유대인 남녀만을 골라 여러 차례에 걸쳐 방사선을 쪼였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나치 대학살: 서양 현대사의 블랙박스》/ 최호근 지음/ 푸른역사. 167 & 169쪽)

보라! 다른 친위대원들과 달리 가스실 앞에 선 유대인 수감자들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존칭까지 썼고, 그래서 유대인 수감자들 사이에서 ‘정중하고 조용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고 하는 호르스트 슈만과 철수 오빠 이미지가 비슷하지 않은가. 올케 언니도 처음에는 슈만이 꾸며낸 이 이미지와 비슷한 철수 오빠에게 끌렸을 터인데 수십 년 살아오는 동안 ‘이게 아니구나 ……!’하며 후회를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닐 것이고, 참고 참다 가슴에 울화병鬱火病이 깊어질까 봐 두려워 가까운 친구들에게 속을 드러내 보였을 것이라고 이해한다. 같은 여자로서 나는 올케 언니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그 친구들이 내게 이처럼 섭섭한 말을 해도 “아, 예! 오빠가 좀 그렇지요.” 하면서 넘겨버리고 만다.

이런 오빠를 둔 나도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 ‘돈 벌게’ 해주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버티고 살아 온 것이다. 휴!!!

 

* <미디어붓다>는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6월 9일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종교평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는 필자(사진)는 오랜 기간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와 함께 생활하면서 현장의 상황에 남다르게 주목하고 발언해왔습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들을 이번엔 엽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엽편소설이란 인생에 대한 유머, 기지, 풍자가 들어 있는 가벼운 내용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지칭합니다. 필자가 펼치는 새로운 글쓰기 마당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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