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 그 열다섯 번째 이야기

요즈음 국내 최대, 아니 세계 최대 조선업체인 대우조선해양의 분식 회계와 전 ‧ 현직 임직원들의 비리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고, 이 회사에 국민의 혈세血稅 수십 조 원을 갖다 퍼부은 산업은행 간부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도 언론과 국민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하긴 대우조선의 차장이라는 놈이 백억 원이 넘는 돈을 꿀꺽 하고,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며 ‘사랑’을 나누던 애인과 함께 사는 부산의 어느 아파트에서는 하나에 수천만 원이 넘는 고급시계가 여러 개 나왔다고 신문과 TV에 크게 등장할 정도였으니 그 회사가 아직까지 버티고 있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나는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우리 철수 오빠가 매우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수조 원씩 회계조작을 해서 성과급을 수억~수십억 원씩 챙겨먹은 대우조선 임원들과 그 차장 놈에 비하면 오빠가 나에게 베푼 특혜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이고, 프랑스에 ‘이름만 수련원’을 사서 오빠가 올케 언니와 추억 여행을 하는 것도 세계 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의미 있는 일이며. 큰 조카가 관계하는 재단에 지원한 수억 원도 어쨌든 공익을 위한 것이었는데 철수 오빠가 ‘죽일 놈’이라도 되는 것처럼 요란을 떨고 있으니 우리 오빠가 억울해 하고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어. 국민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 하면서 울분을 토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만약 하늘이 우리 철수 오빠를 버리지 않고서 갈 길을 제대로 가게 해주어서 지금 국무총리가 되었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랬으면 오빠는 이 상황을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대우조선과 산업은행뿐 아니라 그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 각 은행 등 곳곳의 문제 있는 인사들을 샅샅이 찾아내 문초해서 그들을 파면하고 감옥에 집어넣을 것이다. 그 다음에 그 가족들이 몰래 찾아와 선처를 부탁하면, 사안을 가려서 ‘나중에 문제가 생길 염려가 없어 보이는 안전한 곳’만 엄선해서 ‘세탁이 잘 된 돈’을 받고 풀어준 뒤 그들이 차지했던 자리에는 오빠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 예를 들면 동생인 나를 그 자리에 들어가게 할 것이고 그러면 나는 그 은혜에 감동하여 더 많은 돈을 만들어 오빠에게 60%를 갖다 바칠 것이다. 그런데 하늘이 우리 철수 오빠와 나를 도와주지 않으니 어쩌나.

이제 와서 후회해 보았자 소용없지만, 이왕 비판받고 욕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는 줄 알았으면 그 수련원 공사를 할 때에 조금 더 확실하게 챙겼어야 한다. 실은 그때 내가 그 공사판에 함께 참여시켰던 친구들과 저녁에 소주잔을 기울일 때마다 그들에게서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오빠가 이런 좋은 자리 있을 때에 크게 해먹어야지. 왜 머뭇거리느냐? ……”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철수 오빠나 나나 새가슴이라서 속으로는 더 크게 해먹고 싶어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리 큰돈을 챙기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그런 일을 맡을 수 있다면 준공검사 이튿날 그 건물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건 나중에 공금으로 보수공사를 하면 되는 것이니, 24mm 철근을 열 가닥 넣기로 된 자리에는 12mm짜리 세 가닥만 넣는 방식으로 해서 공사비의 70%를 챙길 것이다. 오빠의 법대 인맥 관리 능력이 뛰어나서 이런 일로 우리 남매가 감옥에 갈 일이 없기도 할 것이지만, 방산 ‧ 군납防産軍納 비리로 구속되었다 무죄로 풀려나는 전직 참모총장과 장군들을 보면 요즈음 우리나라 판사님들이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것도 분명하니 설사 나와 오빠가 날림 공사로 사법처리 된들 크게 걱정할 것이 없지 않겠는가. 정말 후회된다. ‘이왕 문제가 될 것이라면 더 크게 해먹었어야 하는데 …….’

그런데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서 오빠가 국무총리는커녕 장관이나 국회의원도 한 번 못하고 말았으니 이것만도 억울한데 어쩌다 동생인 나와 오빠의 아들인 조카에게 작은 혜택 좀 주었다고 비판을 해대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하긴 세상이 잘못 가고 있어도 보통 잘못 가고 있는 게 아니다. 그놈의 ‘민주화’라는 악령惡靈이 세상을 더럽히기 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일들이 날마다 터지고 있단 말이다. 푸른 기와집의 수석비서관 나으리께서 직접 전화를 해서 어르신의 ‘심기心氣’를 전했으면 두말 말고 따르고 그 일로 해서 설사 지옥에 끌려가는 일이 있더라도 그 문제에 대해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는 것이 백성 된 도리이거늘 방송사 간부라는 놈이 수석님과 통화내역을 녹음했다가 세상에 공개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그래서 어르신께서도 ‘단결’을 더욱 강조하시고, 분열된 나라가 망한 사례를 거론하며 ‘뭉치면 산다!’고 강조하시게 되었으니, 이런 상황까지 이른 자체가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지금 오빠를 힘들게 하는 일도 이런 데에 있다. 방송사 보도국장 지낸 놈이 감히 수석님과의 통화내역을 공개하는 이런 ‘질병’과 그 질병의 바이러스가 오빠가 우두머리로 있는 그 재단에도 퍼진 정황이 오빠의 귀에도 들어왔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이제까지 오빠와 오월동주吳越同舟 ‧ 동상이몽同床異夢 하고 있는 인사도 지금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계산을 하고 있을게 확실하다는 게 오빠를 두렵게 하는 모양이고 그래서 밤에 흉몽凶夢을 꾸고 식은땀을 흘리고 그러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해도 최고의 대학교 법대를 나와 그럴 듯한 말과 글로 세상 사람들을 속여 온 오빠가 이런 일에 나서게 하는 것은 동생 된 도리가 아니고, 그래서 내가 나서기로 했다. 이 인사를 한 번 만나 의중을 떠보고, 이 인사가 앞으로 몇 년 동안만이라도 더 오빠와 ‘한 배를 타고 한 자리를 쓰며 같은 꿈을 꾸게[同舟同床同夢] 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타진해 보아야겠다. 푸른 집 수석비서관과 있었던 일을 공개하는 방송사의 그 못된 국장 놈처럼, 혹 이 인사가 다른 생각을 품고 있고 아무래도 오빠를 배신해 다른 사람을 이사장으로 옹립하려고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그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 내가 옛날에 활용하던 ‘놈들’을 시켜 어두운 골목길에서 혼을 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인사가 아니다. 오빠의 오늘 이 자리를 가능하게 해준 오빠의 법대 선배님이 이런 모든 상황을 알게 되는 날이면 어떤 변명을 해도 아무 소용없을 것이고, ‘여러 해 동안 공 들여쌓은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질 터인데, 이것을 막을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 어른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면 그런 줄 알았다던 저 혼용무도昏庸無道한 호해胡亥 황제가 아닌 바에야, 그분에게 가는 모든 ‘말과 글의 길[言路]’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자. 오빠가 그 어른에게 일단 적극적으로 “세상에서 떠드는 것들은 다 그 망할 놈의 ‘민주화’ 병이 만들어낸 악성 루머입니다. 그 ‘민주화’ 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요즈음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고 있는 것도 잘 아시고요. 저를 믿어주세요.”라며 변호에 나서라고 권해야 하겠다. 선제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니까 …….

* <미디어붓다>는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6월 9일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종교평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는 필자(사진)는 오랜 기간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와 함께 생활하면서 현장의 상황에 남다르게 주목하고 발언해왔습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들을 이번엔 엽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엽편소설이란 인생에 대한 유머, 기지, 풍자가 들어 있는 가벼운 내용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지칭합니다. 필자가 펼치는 새로운 글쓰기 마당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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