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 그 열세 번째 이야기

21년 전인 1995년 6월 말 어느 날 값비싼 명품을 파는 것으로 유명해서 그곳에서 쇼핑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랑거리’이며 ‘신분의 표시’이기도 했던 서울 서초구의 삼품백화점이 와르르 무너졌다. 사망자가 500여 명에 이르렀으니 부상자가 얼마나 많았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붕괴 사고가 전파를 타고 세계로 전파되면서 한국의 이미지는 밑바닥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깊이 추락하였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으로 열흘, 보름 만에 생존자를 구해내는 장면은 ‘한국 정부는 무능하지만 한국인들은 대단하다!’는 찬사를 듣게도 했으니 이런 역설이 어디 있을까.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이 백화점 소유주였던 이모 회장은 ‘백화점 붕괴 조짐’ 보고를 받고서도 고객은 물론이고 직원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측근 몇 명과 함께 그 지옥에서 미리 도망쳤다고 한다. 심지어 백화점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던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아 매몰되게 했으니, ‘고객 경영’ 등등의 공적인 가치는 둘째 치고 ‘가족사랑’조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인간임을 온 세상에 증명해주었다. (매몰되었던 며느리는 나중에 구조되었다. 그러고서도 그 시아버지 밑에서 며느리 노릇을 했는지 궁금하다.)

자, 삼풍백화점의 이모 회장과 우리 철수 오빠를 비교해보라. 철수 오빠는 이미 그 그릇부터가 그 이모 씨와는 다르다. 며느리에게 아이스크림 가게라니 …….

공익 재단의 책임을 맡은 뒤 동생인 내게도 대충 대충 공사해서 큰돈을 벌게 해주고, 아들들도 챙겨주며 올케 언니와의 달콤한 추억 여행을 위해 프랑스에 20억 원을 들여 수련원을 사놓고 그럴 수 있는 큰 그릇인 철수 오빠가 삼풍백화점 회장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아마 이렇게 했을 것이다.

내게 옥상에 불법 건축물 3개 층을 더 짓게 하고 그곳에다 고급 룸살롱을 차려서 돈 벌게 하고, 모파상이 소설 《벨 아미(Bel Ami)》에서 생생하게 그려냈듯이, 19세기 말 프랑스 귀족과 신흥 권력층들이 인생을 즐기는 멋진 사롱 비슷한 것도 차리게 했을 것이다. 살롱을 차리게 하는 이유는 물론 돈을 벌어서 오빠와 이익금을 나누자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 살롱을 찾아오는 이 나라 지도층과 그 부인들의 모든 것, 심지어 그들의 성적性的 취향과 애정 관계의 비밀까지 모조리 파악해서 그것을 약점으로 잡아 오빠의 정계 진출 꿈을 이룩해보자는 원대한 계획이 있을 것이다. 왜 우리 남매는 삼풍백화점 회장처럼 돈 복을 타고 나지 못해서 이 꿈을 실현하기가 그리 힘든가. 우리에게 이런 복이 없는 것만 보아도 요즈음 하늘의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하늘을 뒤엎어 버릴 수도 없고 …….

난 요즈음 철수 오빠가 재단을 운영하면서 여동생과 아들들에게 혜택을 주었다고 비판하는 연놈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없었던 고혈압 증세도 나타나고, 이러다 내가 제 명대로 다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지기도 한다. 생각해 보라. 대 재벌인 어느 항공사 회장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대학교 부속병원 커피숍을 자기 딸이 운영하게 해주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분의 딸 사랑에 비하면 철수 오빠의 동생 사랑과 아들 사랑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鳥足之血]’에 지나지 않는가 말이다. 철수 오빠가 간이 그리 크지 않아서, 자그마한 수련원 건물 공사나 건네주고 조카가 속한 재단에 몇 억 원 정도 후원하는 데에 그치고 있는데도 왜 그리 말이 많으냐 말이다.

하긴 요즈음 곰곰 생각해보니, 오빠의 문제를 거론하는 연놈들만 없었으면 재단 소유 건물에 나나 조카며느리에게도 멋진 커피숍을 차리게 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겉으로는 ‘생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음식문화’ 어쩌고 하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고급 채식 전문 식당을 차리게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아들들에게는? 대형교회 담임목사 자리와 함께 BMW 열쇠까지 함께 건네주던 어느 목사님처럼 재단 이사장 자리를 세습해주려는 계획을 은밀하게 추진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놈의 민주화 때문에, ‘비리’가 어떻고 ‘배임 혐의’ 어떻고 하는 놈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죄인은 역시 그놈의 ‘민주화’가 아닌가.

그놈의 민주화 때문에 5년 전에 감추어졌던, ‘22명 남학생의 여중생 성폭행’ 사건이 다시 등장하게 되는 더러운 시절이 되었다. 그 성폭행범의 어머니가 “5년이나 지난 일을 왜 들추느냐?”며 항의하는 심정을 나는 이해한다. 아마 철수 오빠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철수 오빠는 사회적 지위가 있으니, 공개적으로는 그런 표시를 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신문을 들여다보며 “말세야. 이 나쁜 놈들 …….”이라고 혀를 차는 시늉을 하다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그놈의 민주화, 이것을 박살내야지!”하면서 전의戰意를 다질 것이다.

오죽하면 철수 오빠와 내가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 같은 단체를 만들어서 그 문제 많은 민주화를 처단하는 운동을 펼쳐볼까!' 이런 생각을 하기에 까지 이르렀을까. 나는 어쨌든 우리 철수 오빠를 힘들게 하고, 결과적으로 내가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가는 놈들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처단하여 ‘민주화 추종세력’의 말로가 어떤지 만 천하에 드러내 보여줄 것이다.

마침 오빠 재단의 그 놈도 ‘민주화’에 대해서는 발작 반응을 보일 정도로 ‘반反 민주화’ 성향이 강하니까, 오빠가 재단을 장악할 때 그놈을 썼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놈을 이용해서 ‘민주화’의 탈을 쓴 ‘반금(反錦禽金)철수 분자’들을 척결할 계획을 짜보자고 오빠에게 제안해야겠다.

 

* <미디어붓다>는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6월 9일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종교평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는 필자(사진)는 오랜 기간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와 함께 생활하면서 현장의 상황에 남다르게 주목하고 발언해왔습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들을 이번엔 엽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엽편소설이란 인생에 대한 유머, 기지, 풍자가 들어 있는 가벼운 내용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지칭합니다. 필자가 펼치는 새로운 글쓰기 마당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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