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
남지심 지음, 민족사
320쪽, 1만5000원
한암 선사(漢岩, 1876~1951)는 가장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나 온몸으로 우리 불교를 지킨 고승이다. 조계종 초대 종정이자 역사상 유례없이 네 차례나 종정에 올랐을 만큼 한국불교의 정신적 기둥이자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다.
1925년 ‘내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강원도 오대산으로 들어가 입적할 때까지 그곳에서 정진하며 후학들을 지도했다. 월정사 주지 퇴우 정념 스님은 “한암 대종사께서는 일제강점기 어렵고 혼탁한 시대에 치열한 수행을 통해 선과 교를 겸비하고 한국 불교의 초석을 놓았다.”고 회고한다.
올해는 한암 선사가 좌탈입망(坐脫立亡)한 지 65주기가 되는 해. 추모다례재와 학술대회에 이어 한암 선사의 생애에 소설적 요소를 가미한 평전소설 『한암』이 출간됐다. 필자는 밀리언셀러 『우담바라』의 남지심 작가. 수년 동안의 숙고 끝에 한암 선사의 고고한 삶을 특유의 우아한 필체로 소설화한 신작이다.
『한암』은 한암 선사가 50세 되던 해에 봉은사의 조실 자리를 내놓고 서울을 떠나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소설은 이 시기 한암 선사를 사로잡은 ‘조선불교 중흥’이라는 문제의식을 따라간다. 스님은 “부처를 향한 길과 조선불교를 지키기 위한 길”, 다시 말해 “오고감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자유의 길”과 “말과 행동이 따라야 하는 길”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고민했다. 한암 선사는 수행자의 길과, 조선불교를 지키는 길 어느 하나도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산중에 있으면서도 세상을 등지지 않고 살아갔던 한암 스님. 선사에게는 산문 밖의 삶과 산문 안의 삶이 다른 게 아니었다.
한암 선사가 오대산에서 산중스님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승가 오칙(僧伽五則)이었다. 승려라면 반드시 참선 공부와 경전 공부를 해야 하고, 염불과 의식 집전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가람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암 스님의 가르침 덕분에 일제시대, 한국에 불교의 수행 전통이 되살아나고 한국 불교가 중흥할 수 있었다.
소설 속에는 한암 스님의 수제자 탄허 스님이 출가하기 전 한암 스님과 서로 주고받은 서간 등 한암 스님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들도 실려 있다. 이를 통해 한암 스님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작가는 '저자 후기'에서 “한 분의 생애를 그리는 일이, 더욱이 성스럽게 살다 가신 선사(禪師)의 생애를 그린다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나는 한암 스님 생애를 쓰면서 뼈저리게 느꼈다.”고 겸손해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선사의 모습을 형상화시키는 일은 너무도 지난했다며, “무릎을 꿇고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하고 싶은 심정”이라고도 했다.
작가는 오대산 문중스님들한테서 받은 책들을 통해서 한암 스님의 생애를 더듬어 나갔다. 김순석 박사의 저서 『백 년 동안 한국불교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를 참고하고 인용하면서 스님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 특히 불교계의 동향을 추적해 보았다. 동국대 김광식 교수를 비롯해 한암 스님과 관련된 저서를 남긴 여러 학자들의 글도 참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