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 그 열한 번째 이야기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철수 오빠와 어느 인사가 서로 힘을 합쳐서 권력을 장악한 과정을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철수 오빠가 오늘 그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리에 오르는 길에서 그 인사가 매우 큰 역할을 한 것은 오빠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점 때문에 오빠는 그 인물을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고 ‘명예롭게 떠나보낼 방도’를 구상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속마음으로는 배신의 마음을 품고 있지만 겉으로는 세상 누구보다도 아부를 잘 하는 그가 떠나간 자리를 채워줄 대타’를 찾을 자신이 없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철수 오빠와 그 인물이 처음 ‘재단을 장악해서 마음껏 놀아보자는 큰 뜻[雄志]’을 함께 나누어 갖게 된 사건이 있다.

오빠가 모 기관의 대표이사 사장을 한 번 더 하려다 실패한 뒤, 그 기관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재단에 계신 법대 선배님의 배려로 그곳의 감사를 거쳐 상임이사까지 차지하게 됐을 때의 일이다. 오빠와 그 인물이 그 재단 소유의 종교 공간 사무실에서 주고받은 대화이다. (이 이야기는 오빠가 내게 해준 것이다.)

철수 오빠: “대한민국은 서울대 출신이 통치해야 한다. 서울대라고 다 되는 게 아니라, 서울대 법대출신이 통치해야 한다. 고故로 우리 재단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 관리해야 한다.”

모씨: “맞습니다. 서울대 출신들을 보면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인격과 품행이, 불교계 떨거지들이 이해 못하는 그런 부분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직접 관리하기보다 우리 재단을 중심으로 조금씩 계몽시켜서 불교계를 개혁하고 서울대 법대 수준에까지 올려야 합니다.”

철수 오빠: “자네는 서울대보다 훨씬 떨어지는 삼류 대학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학 냄새가 나질 않아. 그 대학을 나왔지만 마인드는 서울대에 못지않군.”

모씨: “감사합니다.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켜주십시오.”

이 대화를 주고받은 날 저녁, 오빠는 기분이 좋아서 얼굴이 불콰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들어오셔서 올케언니에게 진한 애정 표현도 하셨다고 한다. 그러고는 내게 전화를 걸어서 “우리 집으로 와. 해줄 이야기가 있어 …….”라며 당장 달려오라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 ‘지금 힘든 상황일 터인데, 무슨 좋을 일이 생겼지? …’하면서도 ‘좋은 일이 생기면 내게도 떡고물이 떨어질까? ……’ 하는 기대를 갖고, 1분이라도 빨리 가려고 모범택시를 잡아타고 오빠에게 달려갔다.

이미 거나하게 취한 오빠가 “동생, 오늘 기분이 좋아 한 잔 했네. 모처럼 우리 남매가 한 잔 더 할까?”하면서 오래 묵혀두었던 바렌타인 30년산 한 병을 꺼내와 다시 대작을 하였다.

오빠가 “실은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 그러면서 그날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그곳을 장악해서 전권을 갖게 되어야 우리 집안이 다시 일어날 수 있거든. 그래서 그 작업을 도와줄 ‘아랫놈’을 물색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찾아낸 거지. 타고난 아부꾼에다가 머리도 빨리 돌아가서 권력의 향배를 냄새 맡는 데에서도 뛰어난 놈이더라고.

단 한 가지 걱정은, 이놈이 나중에 내 비밀을 갖고 나를 협박하거나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달라붙어 나를 끌어내리려 쿠데타를 획책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지. 믿을 놈이 못 되거든. 그런데 걱정은 안 해. 적당한 선까지 써먹다가 버리면 되거든. 내가 이런 일에는 도가 트인 편이잖아. …… 자, 기분 좋게 한 잔 하자!”

이 말을 들으며, 나도 수십 년 동안 막혔던 체증이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오빠 정치 바람 뒷바라지하느라 내 실속 못 차린 채 고생하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간 뒤, ‘그래, 오빠 덕에 돈 좀 벌어볼 수 있겠구나!’하고 기대를 하니 뱃속에 꽉 막혔던 것들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사라져버렸다.

지금 철수 오빠가 그 친구를 못 믿으면서도 계속 한 배를 타고서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그 ‘오월동주吳越同舟 ‧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장면이 나로서는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이 오빠가 이미 오래 전에 이런 일을 예상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요즈음은 나도 불안해진다. ‘저 배에 함께 타고서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오빠와 그 인물이 언제인가는 ‘그 다른 꿈’을 실현시키려 갈라서게 될 터인데 …… 제발 내가 그곳에서 더 큰 공사를 해서 돈을 더 벌 때까지는 둘이 ‘한 배에 타고 한 침대에 머물러야[同舟同床] 하는데 ……’ 그리고 미리 걱정한다고 일이 해결될 것도 아니고 해서 이제 그 일은 고민하게 않기로 했다. 어떤 경우이든, 설사 철수 오빠와 그 인사가 주먹다짐을 하고 헤어지는 일이 있을지라도, 두 사람이 다 구린 구석이 있고 서로 그 내용들을 꿰고 있기 때문에 결국 둘이 죽게 되는 폭로전暴露戰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말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긴, 요즈음 자살 테러 특공대처럼, ‘너도 죽고 나도 죽자!’는 분위기가 집권 여당에서부터 재벌 집안 형제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지고 있어서 마냥 마음 편하게 기다릴 수는 없을 것도 같으니 이를 어쩌나? 휴~~~

* <미디어붓다>는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6월 9일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종교평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는 필자(사진)는 오랜 기간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와 함께 생활하면서 현장의 상황에 남다르게 주목하고 발언해왔습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들을 이번엔 엽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엽편소설이란 인생에 대한 유머, 기지, 풍자가 들어 있는 가벼운 내용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지칭합니다. 필자가 펼치는 새로운 글쓰기 마당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아울러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좀 더 재미있고 풍성하게 쓸 수 있도록 재료를 제공해주실 분은 필자의 E-메일 <beneditto@hanmail.net>로 연락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