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 그 여덟 번째 이야기

우리는 김(金)씨이다. 그러니까 본래 오빠는 김철수, 나는 김영희라야 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오빠는 성씨를 금(錦, 禽, 金)으로 바꾸었다.

한자로 첫 번째 금錦은 오빠가 자신의 일들을 비단처럼 잘 꾸며대는 데에 탁월한 재주를 갖추고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한 대학시절 어느 유명한 스님이 “학생은 금錦씨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고, 두 번째 금禽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챙기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놀리는 뜻에서 “에이 짐승 같은 놈, 차라리 금(禽)씨로 해라!”고 하면서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만 부르는 성씨이며, 세 번째 금金은 앞서 몇 차례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오빠가 “내 돈은 당연히 내 돈, 공금도 가능한 내 것으로 한다”는 공사불이(公私不二)의 원칙을 워낙 철저하게 지키는 것을 보고 오빠를 비판하는 이들 중에서 일부가 “황금이 그렇게도 좋으냐? 너는 그럼 김(金)씨가 아니라 금(金)씨로 해라!”고 한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철수 오빠는 이런 점에서도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게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은 철수 오빠의 지론이다. “남들과 나는 다르다. 나는 최소한 국무총리는 했어야 할 운명을 타고 났는데, 이 나라 정치가 잘못 되고 백성들이 어리석어서 이런 인물을 몰라보아 이 정도에 머물고 있단 말이다. …….”는 말을 나이 70 중반에 들어선 지금도 입에서 자주 내보내는 것도 다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멋모르는 사람들 중에서 “그래, 저 사람이 국무총리 되어서 나라를 망치는 것보다는 우리 재단을 망치는 게 낫겠다. 우리가 참자. …….” 뭐 이런 말도 한다는데, 이놈들은 뭘 모르고 떠들어대는 것이다.

혹 우리 철수 오빠가 국무총리가 됐으면, 나라를 망치는 일까지 하지는 않는 아주 작은 양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는 걸 왜 모르느냐 말이다. 오빠가 총리가 됐다고 해도, 지금 재단에서 전횡하듯이 국정을 농단할 수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오빠 속마음으로야 국가 예산도 마음대로 퍽퍽 쓰고, 프랑스에 오래 된 수도원을 하나 사서 ‘전직 국무총리를 위한 성채’로 만들어 올케 언니와 다정하게 노년을 보내고 싶겠지만, 독자들도 알다시피 이놈의 세상이 잘못되어 그런 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니 철수 오빠로서는 총리가 못 되고 재단법인의 이사장으로서 마음껏 놀 수 있게 된 것을 큰 복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어쨌든 철수 오빠에게 거듭 거듭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성씨를 금(錦, 禽, 金)으로 바꾸고서도, 당신이 욕을 먹거나 비판을 받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김씨 성을 가진 나를 계속해서 챙겨주고 그러기 때문이다. 난 앞으로 누가 되었든, 우리 철수 오빠를 욕하는 ‘연놈’들은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안 되면 불을 질러서라도, 오빠에게 뭐라고 하는 연놈들의 입을 막아버릴 것이다. 최고 대학을 나온 우리 오빠께서 이런 천한 일을 할 수는 없으니, 그분은 ‘생태와 인문학의 위기’가 어쩌고 하는 고상한 말과 글로 세상 사람들을 속이게 하고 더러운 일은 내가 하겠다는 뜻이다. 이미 그런 사례도 몇 차례 있어서 나나 오빠나 그런 데에 익숙하기도 하고 …….

 

 * <미디어붓다>는 <이병두 엽편(葉片)소설 '철수와 영희'>를 6월 9일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종교평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는 필자(사진)는 오랜 기간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와 함께 생활하면서 현장의 상황에 남다르게 주목하고 발언해왔습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들을 이번엔 엽편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엽편소설이란 인생에 대한 유머, 기지, 풍자가 들어 있는 가벼운 내용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지칭합니다. 필자가 펼치는 새로운 글쓰기 마당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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