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도 쉬어가고 바람도 자고 간다는 추풍령 아래 직지사. 이곳에서는 자연을 부르는 맑은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옛 선비를 만나는 듯 인문의 향기가 은은히 피어오르며, 낮은 곳을 향한 따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리고 계곡물처럼 계절 따라 흐르는 산사의 소소한 일상과 그 일상을 바라보는 한 수행자가 있다.
그저 바라만 보기에는 너무나 아쉬워 일상에 한시를 얹혔다. 한시를 만난 산사의 일상은 어느덧 중생들의 분란한 마음을 잦아들게 만들었다.
“하늘도 단풍입니다. 하늘 단풍이 하도 고와 그 아래 흰 옷을 입고 서면 쪽빛 물이 들 것만 같은 나날들입니다.”
절에서 올려다본 하늘을 보며 적은, 어찌 보면 일기 같기도 한 이 글에서는 수행자의 맑디 맑은 감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직지사성보박물관장 흥선 스님은 그렇게 산사의 일상을 꼬박 7년 반 동안 홈페이지에 올려왔다.
홈페이지에 올랐던 글들은 어느새 요란스럽지 않지만 마니아들을 이끌었고, 온라인에 머물던 스님의 글들은 이제 오프라인의 세상으로까지 올라왔다.
『맑은 바람 드는 집』, 스님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정리해 만들어진 책이다. 책 제목은 학승들이 지혜의 칼을 벼리던 청풍료(淸風寮)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청풍료는 지금의 직지사성보박물관이다.
산사의 일상에 한시를 더했지만 실은 스님의 목소리를 전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흥선 스님은 “사실 한시라는 것도 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가져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한시를 매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절집의 모습을 전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릅니다”라고 설명한다.
그 때문인지 책은 봄·여름·가을·겨울로 장을 나누고 계절에 맞는 한시와 그 때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칠월 엿새/ 찌는 듯/ 괴로운 더위 탓에// 음식마주하고도/ 수저조차/ 못 들겠네// 밤마다/ 넘치는 물것만도/ 시름이 한 짐인데// 가을 든 뒤/ 파리 더욱/ 기승을 부림에랴// 두른 띠/ 미칠 듯해/ 부르짖고 싶건만// 문서더미/ 무에 급해/ 잇달아 밀려드나// 남쪽을 바라보니/ 푸른 솔 한 가지/ 골짜기에 걸렸어라// 어찌하면/ 겹겹 쌓인/ 얼음을/ 맨발로 밟아볼꼬?”
두보의 ‘조추고열퇴안상잉(早秋苦熱堆案相仍)’을 스님이 번역한 내용이다. 무더운 여름의 모습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책에는 이에 더해 한 가지 매력이 더 들어있다. 스님이 직접 한지에 쓴 한시와 번역문이 그대로 실려 있는 것이다. 손글씨가 주는 정겨움까지 느낄 수 있다.
언제라도 어느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편안하게 미소 짓게 해주는『맑은 바람 드는 집』. 무더운 여름 지금 바로 한 페이지를 넘겨도 좋을 것이다.
흥선 스님/아름다운인연/284쪽/13,500원
*흥선 스님은?
올해로 11년째 직지사 성보박물관의 책임자로 일하며 절집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일을 하고 있는 수행자다. 2009년까지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도 경상북도 문화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박물관인 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