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계환 씨, ‘보조사상연 학술대회에서 ’중편조동오위‘ 주제 발제
김호귀 교수 “묵조선 사라진 한국불교계에 묵조선 주제 세미나” 의미

한국불교에서 묵조선은 염불선만큼이나, 아니 훨씬 더 변방에 놓여 있다. 간화선이 강력한 주류를 견지하는 상황에서 묵조선의 어디 발 디딜 여지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들어 묵조선을 수행하는 스님이 몇 분 나타나고 있고, 이 분들이 머잖아 수행센터를 설립한다는 풍문이 바람처럼 전해지는 정도가 한국불교계에서의 묵조선 위상이다.

묵조선이 간화선에 비해 그리 ‘꿀릴’ 것도 없으련만 한국불교계에서 묵조선의 비중은 없는 것은 왜일까? 일본은 도겐이 중국에서 묵조선을 전해와 조동종이라는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한국에서 묵조선은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시점에서 묵조선을 수행법으로 채택하고 있는 조동선과 관련된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보조사상연구원은 제116차 정기 월례학술대회를 지난 5월 28일 서울 법련사에서 열린 것이다. 묵조선 연구자가 턱없이 부족한 탓인지, 이번 학술대회의 발제자는 박사과정에 있는 대학원생이었다. 물론 대학원생이라고 해서 논문의 질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날 동국대 박사과정 학생인 명계환 씨가 ‘인각 일연의 <중편조동오위(重編曺洞五位)> 인식>- 삼국유사 의해(義解) 편과 비교를 중심으로-를, 동국대 전준모 씨가 <청한 설잠의 조동선 인식>을 각각 발표했다.

한국불교사에서 묵조선에 관심을 가졌던 스님으로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이 계셨으며, 일연 스님의 저술 <중편조동오위>가 묵조선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고, 이를 근거로 이번 학술대회에서 ‘일연 스님의 조동선에 대한 재인식’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발표된 것이다.

발제를 한 명계남 씨는 “조동종의 기본적인 교의인 조동오위의 흐름과 체계에 대해 정리한 <중편조동오위>에 일연 스님이 보주(補註)를 덧붙여 편찬한 책이며, 신라시대 대표적인 고승 13인과 거사 1인의 전기가 집약되어 있는 <삼국유사> 권4 제5 의해 편의 찬술방식과 의도가 <중편조동오위>와 비교해보았을 때 매우 유사하므로 이를 통해 일연의 <중편조동오위> 인식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았다”고 밝혔다.

<중편조동오위> 서문에는 조동선에 대한 일연의 견해가 잘 담겨 있는데, 그 뼈대는 이렇다.

“그러다가 대사(동산)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대양 스님에 이르기까지 5세 동안은 기연과 법이 아직 융합되지 않아서 이도가 적막하고 쓸쓸하다가 자제가 탑의 문을 연데 힘입어 색다른 싹이 간혹 돋아나서 회남과 서주 지방의 탁한 흐름을 쳐내고 실 끝에 매달린 듯 위태롭던 조동의 매듭을 지음으로써, 그 꽃다움이 양양과 영주 지방에 흘러 이제껏 거꾸로 흘렀던 물결을 되돌려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큰 흐름이 점차 동령으로 옮겨지면서 그 소용돌이가 사명산을 싸고돌아 하늘과 땅을 뒤 덮어 그 끝이 어딘지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신라 때는 금장, 영암, 청허, 운주 악, 수미 엄, 무위 미, 연구 혜, 허봉담, 대령, 청원, 와룡, 해룡, 서암, 박암 같은 서사들이 이었는데, 전적에는 20여 존숙이 나타나 있다. 이분들은 진국 중에 진국의 맛을 본 사람들이었다.(중략)
그 뒤 후대에 와서는 동산이 지은 오위가 교주고슬이나 각주구검의 고사처럼 어리석음을 범하여 일미의 뜻이 아주 더럽고 경박해졌다. 사람들은 이것을 경초선이라 하여 의상에 꺼둘린 것이라 여겨 문지방 바깥에 버려두기도 하고, 혹은 바다의 끝을 바라보고 망연하게 물러서듯 하하는 자들이 나오게 되었다. 아, 그러나 광릉산의 공조가 거의 끊어지고 말았구나.”

명계환 씨는 “이 내용은 일연 스님이 조동선에 대해 해박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조동오위>는 일연 스님이 활동하던 당시에 신라에 유통되고 있었다는 것이며, 또 <조동오위>의 가치를 표방하며 조동종의 교세가 중국에 비해 약하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며 “그가 조동선을 선양하기 위해 <중편조동오위>를 편찬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를지라도 조동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졌던 인물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연 스님이 조동선에 입각한 선승이 아니며 여러 기록에서 볼 때 간화선의 입장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명계환 씨는 “당시 간화선을 표방한 임제선과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묵조선의 조동종 기본서인 <조동오위>를 편찬하여 표방했다는 데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명계환 씨(사진)는 또 “<중편조동오위>에는 많은 조동선의 선승들이 등장하지만 결국 재가자인 거사(閑閑)가 묵조선을 통달하고 있다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다”며 “일연 스님이 승려임에도 불구하고 재가자의 위상을 드높이려는 의도는 출가위주의 불교를 탈피하여 재가자의 무한한 수행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출가와 재가가 대립된 세계일 수 없다는 불이의 명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명 씨는 “일연의 <중편조동오위>에 대한 인식은 ‘파사현정’과 ‘중도불이’의 실천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실천은 부처님 깨달음의 내용이자 불교의 압축적 정의인 연기법에 입각하고 있다”며 “일연은 간화선과 조동선, 교학과 신앙, 또 승과 속이 일실(一實)의 이치가 평등하여 피차 분별이 없는 세계로 나아가고자 했다”고 결론지었다.

이날 학술대회에 논평자로 참가한 김호귀 교수는 “묵조선이 사라진 한국불교계에 묵조선과 관련한 학술대회가 열렸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일”이라며 “모든 것이 다양해지고 있는 시대에 수행법도 각각의 근기에 맞게 다양해져야 하는 것이 현실적 흐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