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백 덕민스님, 보문사 용왕대재 법문서 용의 참의미 역설

“대나무를 나눠드리니 각자 피리를 만들어 관음이 돼라” 당부

해안고절처(海岸孤絶處) 보타락가산(寶陀洛迦山) 강화 석모도 소재 보문사(주지 정문 스님)의 용왕대재(龍王大齋) 입재식에 현재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강백 일해당(一海堂) 덕민(德憫) 큰스님이 특별 초빙되어 설법을 하신다는 소식에 4월 4일 새벽부터 서둘러 보문사로 향했다.

애써 마음을 내어 불원천리 찾아가 법문을 경청할 수 있는 선지식이 계시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난 덕분인지, 감로법문을 전달해야 한다는 불교전문기자의 의무감에서 비롯되는 피로는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음성지 강화 보문사의 중심인 극락전에는 벌써부터 300여 불자가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없이 좌정해 정근을 하며 덕민 스님의 설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극락전 구석에 자리를 잡아 가까스로 환희로운 법석에 동참할 수 있었다.

“불교에서 용(龍)이라는 것은 딱히 어떤 모습이나 생명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사의한 생명, 생명의 진실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덕민 스님은 불자들이 ‘촌스럽게’ 용을 강이나 바다에 사는 생명체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설법의 서두에 강조해 거론했다. 불교가 그렇게 차원이 낮은 종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경전에 부처님께서 탄생하실 때 난타와 발란타라는 용이 물을 뿜어 목욕을 시켜드렸고, 법화경에도 1만2천여 비구와 비구니 등 권속들도 6천여 명이나 모였고, 8만 보살마하살 등이 모였을 때, 난타와 발란타 등 8대 용왕도 영상회상에 나타나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덕민 스님은 용과 불교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용이라는 것은 인도나 중국, 한국에서도 불교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특히 부처님 입멸 후 600년 뒤에 등장한 용수(나가르주나)는 인도 화엄의 초조가 되어 생명의 실상이요, 우주의 참 모습을 화엄보살이 되어 드러냈다는 것이다. 대승의 화엄보살이 인도에서 중국에 이어져 신라의 의상, 원효, 자장에 이르러 신라불교는 화엄사상으로 꽃피워졌다는 설명이다.

“용을 바다나 강에 사는 생명체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용의 참 의미는 어떤 생명체 차원이 아니라 우주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봉행하는 용왕대재는 이렇게 대승을 실천한 화엄보살들에게 차를 올리고 재를 올리는 의미로 봉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미신적인 부분을 탈피해서 정법을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대강백 덕민 스님의 심오한 불교의 진리를 쉬운 용어를 풀어내는 대기설법의 바다로 용왕대재 동참대중은 푹~ 빠져 들어갔다. 

스님의 설법은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긴 신라의 문무왕과 감은사, 그리고 아들인 신문왕이 등장하는 <삼국유사>의 ‘만파식적(萬波息笛)’ 이야기로 이어졌다. 

흔히 알려진 만파식적 이야기의 뼈대는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동해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었고, 신문왕 2년에 해관(海官)이 동해안에 작은 산이 감은사로 향하여 온다고 하여 일관으로 하여금 점을 쳐 보니,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金庾信)이 수성(守城)의 보배를 주려고 하니 나가서 받으라 하여, 이견대(利見臺)에 가서 보니, 부산(浮山)은 거북 머리 같았고 그 위에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져, 풍우가 일어난 지 9일이 지나 왕이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라 하여, 그것을 가지고 나와 피리를 만들어 보관하였는데, 나라에 근심이 생길 때 이 피리를 불면 평온해져서, 만파식적이라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덕민 스님은 이날 만파식적 전설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신문왕이 감은사를 지을 때, 해관이 감포 앞바다를 내다보니까 거북을 닮은 섬이 떠내려 와서 감은사를 향해 왔다갔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섬에 대나무가 있는데, 낮에는 2개, 밤에는 1개가 되고, 섬도 낮에는 2개 밤에는 1개가 되기를 왔다갔다 했습니다. 해관이 이런 기이한 사실을 왕에게 보고하니, 신문왕은 일관(日官)을 시켜 그 연유를 알아보게 했어요. 기이한 현상을 살펴본 일관이 왕에게 이르기를 선왕께서 왕에게 선물을 내리려 하니 가서 받으시라고 권했습니다. 이에 신문왕은 감은사에서 1박을 한 후 섬으로 나아가려 하니, 일주일 동안 칠흑 같은 어둠이 계속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어둠이 거친 후 왕이 배를 타고 나아가 용에게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용이 말하기를 ‘한 손바닥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처럼 대나무도 둘로 쪼개서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왜적이 사라지고 태평성대를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만파식적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피리를 불면 만 가지 파도가 일거에 고요해진다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화엄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파식적에 반야심경의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의 천리가 들어 있는 것이에요. 전부 털어내 비우라는 것이 만파식적이요, 전부 털어내고 내는 소리는 그대로가 화엄의 법계성인 것이며, 나아가 대승보살의 원리를 성취하라는 사자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이 열려야 하는데, 용의 뜻이 바로 이것이에요. 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반야심경의 뜻을 제대로 알고 외우면 바로 여러분이 용입니다. 화엄경 약찬계를 외우면 여러분이 용이 되는 겁니다. 이런 의미를 알고 용왕대재를 지내야 여러분이 용이 되고, 대승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만파식적의 이야기를 통해 용왕대재의 참의미와 용왕대재를 봉행하는 온당한 자세를 설명한 덕민 스님은 특유의 구수한 목청으로 게송을 읊었다.

백의관음무설설白衣觀音無說說  백의관음은 말없음으로 말씀하시고
남순동자불문문南巡童子不聞聞  남순동자는 듣지 않음으로 들으시네
병상녹양삼제하甁上綠楊三際夏  감로수병 푸른 버들은 삼세에 여름을 드리우는데
암전취죽시방춘巖前翠竹十方春  바위 앞 남색 대나무 온 세상에 봄을 드러내는구나

법사의 게송 끝에 청중들은 나무아미타불~을 합창하며 지극한 합장을 올렸다. 덕민 스님은 다시 설법을 이어나갔다.

“이곳 보문사는 낙산사 홍련암과 남해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음성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곳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려고만 하지 말고 스스로 관음이 되어야 합니다. 불교는 철학이나 지식으로 하는 종교가 아니에요. 그런 것으로는 화엄의 경지에 들어오기가 어렵습니다. 내 몸뚱이는 4대가 이리저리 짜깁기가 되어 있는 것인데, 초기경전에서는 이것을 완전히 해체해버립니다. 내 몸뚱이가 내 것이라고 집착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의 게송은 두 조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조건은 ‘무 안이비설신의’이고, 둘째 조건은 ‘무 색성향미촉법’입니다. 무설설, 불문문은 육근을 해체해 버리라는 의미이고, 병상녹양 암전취죽은 육경을 해체해 버리라는 것이지요. 그럴 때 비로소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육근육경을 전부 털어버려서 대 자유인이 되고, 용이 되어서 훨훨 날을 때 비로소 관음진신을 친견하는 것입니다.”

덕민 스님은 대중들을 향해 오늘 용왕대재를 지낼 때 바로 이런 마음으로 대재를 지내야 한다고 강조한 후 야부도천의 선시 한 편을 읊었다.

원간산유색(遠看山有色) 멀리서 보니 산에 색깔이 있고
근청수무성(近聽水無聲) 가까이서 들으니 물소리가 없구나
춘거화채재(春去花彩在) 봄은 갔는데 꽃은 남아 있고
인래조불경(人來鳥不驚) 사람이 와도 새가 놀라지 않네

첫째와 둘째 구(句)는 견문각지, 즉 색과 성의 경계를 제대로 해체해 깨닫고, 셋째와 넷째 구는 공에 대한 바른 견해를 자연을 섭리를 빌어 강조한 것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공(空)은 비어서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몸과 마음은 공한 것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공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는 새가 울고, 꽃이 피는 것처럼 드러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마치 봄은 갔는데 꽃은 남아 있는 것처럼.

덕민 스님은 만파식적의 이야기를 다시 회고시키는 것으로 이날의 보문사 용왕대재 법문을 마쳤다.

“오늘 내가 보타락가산 보문사 용왕대재에 동참한 여러분들에게 대나무 한 개씩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내가 나눠준 이 대나무로 각자의 만파식적을 만들어 스스로 용이 되시고, 관음보살이 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강화 보문사는 매년 음력 3월 용의 날인 진일을 시작으로 49일 간 용왕대재를 봉행한다. 국태민안, 안심입명을 기원하며 용왕성중과 관세음보살의 가피지묘력을 기원하는 보문사의 전통적인 불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