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은 제정 당시 상황에 맞춘 것…“비구니 팔경법 고집하면 승단 붕괴”

출가란 무엇인가
사사키 시즈카 지음, 원영 옮김
민족사
376쪽, 1만5000원

출가자 감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제한했던 나이를 풀어서라도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러다가 1700여 년을 이어온 한국의 승가 공동체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교계에 팽배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겉모습에 대한 우려일 뿐 위기의 진짜원인은 아니다. 한국불교의 현실진단과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에서의 결론은 대부분 ‘율장정신의 회복’으로 귀결된다.

불교 교단사와 계율에 관한 세계적인 석학, 사사키 시즈카 교수는 현전 승가가 붕괴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초기불교의 가르침, 그중에서도 율장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승이란 무엇인가’, ‘율장이란 왜 필요한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의문을 신중히 고찰하고, 이를 통해 현대 사회에도 통용되면서 붓다의 마음을 바르게 표현하는 참다운 승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승단은 섬과 같이 자신들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일반 사회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갔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걸식(乞食)이었다. 현실에서 승단은 공양 덕분에 수행을 지속해 나가면서 동시에 일반 사회의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승단을 운영하는 규율체계가 율장이다. 여기에는 출가자 개인의 결의를 의미하는 계(戒)와, 승단의 생활규범이라 할 수 있는 율(律)이 있다. 율장은 그것이 제정될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부득이 사회의 여론을 의식하면서 제정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공간적으로 그 당시와 다른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그 규정들을 존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예컨대 초기 승단에서 “신체장애자는 출가할 수 없다.”라고 하는 규정이 있었다. 당시는 인도 사회가 신체장애자에 대한 인권 의식이 확립되기 이전으로 이는 일반 사회의 여론을 늘 의식해야 하는 승가 집단이 취한 조치일 뿐이었다.

이같이 출가하려는 희망자 중에서 특정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을 차법(遮法)이라고 한다. 저자는 차법은 절대불변의 법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차법은 그 당시 인도사회 속에서 불교 승단이 사회와의 알력을 피하기 위해 도입한 법규일 뿐이다. 따라서 당시 인도 사회에서만 유효한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하면 이미 그 기능을 잃게 된다. 불교가 사회의 비난을 받는 중대한 오점이 되기도 한다. 불교가 제자리로 돌아와야 할 원점은 규칙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이 제정된 기본 이념, 곧 사회의 존경에 보답할 만한 집단답게 행동하고, 그 보답으로 존속이 허용된다고 하는 ‘걸식 이념’이야말로 불교 승단의 원점이 되는 것이다.”(149쪽)

저자는 사회와의 알력을 막아주는 효력을 잃어버린 차법에 더 이상 그 존재 이유는 없다면서, 현대에는 현대에 맞는 법규가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구니 팔경법 역시 저자의 비판을 비껴가지 못한다. 그에 따르면 비구와 비구니를 차별하는 법은 비구들만 있는 집단에 뒤늦게 들어온 비구니 집단을 가르치기 위해, 즉 선배가 후배를 지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편의적 조치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한 번 정해진 규율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완고한 태도가 교단을 지배해왔다. 저자는 오늘날처럼 남녀평등을 요청하는 사회에서 승단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승단은 결국 붕괴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율장 연구를 통해 초기 승가가 걸식의 정신을 유지하면서 사회의 변화에 대응해 승가의 운영시스템을 변화시켜 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수승한 수행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행자 각자의 노력과 동시에 이 사회의 변화에 맞게 적절히 대응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혁시켜 가는 불교의 유연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현대에는 현대에 맞는 법규가 요구된다.”면서, “이것이 현대의 승가가 풀어나가야 하는 지상 최대의 과제임을 기억하자.”고 외친다. 

책은 초기 승단의 모습을 비교의 잣대로 삼아 현대 불교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의 본질을 파헤친다. 1999년 일본 독자를 대상으로 첫 출판된 책이지만 21세기 한국불교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