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이해의 영역”이라는 현응 스님(조계종 교육원장, 사진 왼쪽)의 글과 관련, 새해 벽두 수불 스님(범어사 주지, 사진 오른쪽)의 반론으로 촉발된 이른바 ‘깨달음 논쟁’이 홍창성 교수(미네소타주립대), 김홍근 교수(동국대), 박용태 교수(청운대), 파워블로거 ‘진흙속의연꽃’(필명)으로, 불교방송에 재직 중인 이송곤 박사, 김왕근 <붓다로살자> 편집장으로 이어지면서 갈수록 가열·확산되는 가운데 이번 논쟁의 두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현응 스님과 수불 스님의 양자토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어 성사 여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계종 승가교육의 총사령탑 교육원장과 교구본사(총림) 주지이며 간화선 세계화의 선도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종단 내 비중이 큰 두 스님의 양자토론이 성사될 경우, 이번의 ‘깨달음 논쟁’은 90년대 초 불교계를 뜨겁게 달궜던 ‘돈점논쟁 이후 최대의 이슈가 될 전망이다.
깨달음을 주제로 한 두 스님의 양자토론이 처음 언급된 것은 지난 1월 15일 ‘지금 여기에서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정의평화불교연대(이하 정평불)에서 주최한 학술세미나에 청중으로 참석했던 현응 스님에 의해서다.
현응 스님은 이날 ‘한 말씀’을 해달라는 주최 측의 요청에 “조용히 경청하러 온 입장에서 발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사양했으나 거듭되는 요청에 마이크를 잡고, “수불 스님과의 양자토론을 공신력 있는 단체에서 마련할 경우 기꺼이 나설 용의가 있다”고 언급했다.
현응 스님은 “사실 (이 자리에)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최 측에서 참석요청이 있었고,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으며 공부를 하는 의미도 있겠다고 생각해 참석하게 되었다”며 “이런 자리에서 논쟁의 한 당사자가 발언하는 것은 혹여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어 깨달음에 대한 견해는 말하지 않겠다”고 전제했다. 현응 스님은 이어 “그러나 기회가 주어지면 수불 스님과 양자토론을 해도 좋고, 그것이 어렵다면 여러 패널을 초청해 질의와 응답을 하는 형태 등 어떤 형식으로든 깨달음과 관련해 의견을 나눌 생각이 있다”고 말해, 사실상 수불 스님에 대해 양자토론을 공개 제안했다.
현응 스님은 이어 최근에 가열되고 있는 깨달음 논쟁과는 별개로 지난해 9월에 발제한 ‘깨달음과 역사, 그 이후’의 내용의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깨달음과 역사』를 펴낸 지 25년이 되어서 그런 자리가 마련되었다. 80년대 글을 모아서 90년대에 낸 책이다. 그 책에 ‘나 스스로는 불교역사철학 서설이라고 하고 싶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9월 발제의 제목은 ‘깨달음과 역사 그 이후’라고 되어 있는 것처럼 지속해서 내가 가진 관심은 늘 깨달음 그 자체보다는 자비의 영역에 놓여 있다.”
현응 스님은 이어 ‘깨달음의 역사, 그 이후’가 지향하는 낙처(落處)는 불교가 우리 역사와 사회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초점이 있다. 불교는 이미 깨달음 논란을 넘어서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여겨져 아쉽다. 여전히 깨달음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더라도 깨달음에 대한 생각은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에 대한 많은 비판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저는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 비판하며 제기되는 문제들은 사실 자라면서 늘 들어왔던 이야기들이다. 생각을 달리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긴장을 주고 있고 나 자신의 발전에 자양분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불교라는 백화점에 상품이 몇 개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선택할 만한 고급스럽고 다양한 상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 좋은 상품을 마련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응 스님의 ‘양자토론용의’ 발언이 알려지자, <미디어붓다>를 통해 “깨달음은 사유의 영역을 초월한 마음”이라는 반론을 제기했던 수불 스님이 1월 16일 범어사에서 봉행된 성도재일 전야 철야법회에서 ‘현응 스님의 공개 양자토론용의’에 대해 “종단에서 자리를 마련하면 나가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불교신문>에 따르면, 이날 수불 스님은 설법 시간에 “현응 스님이 깨달음에 대해 논쟁을 펼칠 기회를 제공한 데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토론 제안에 대해서는 종단 차원의 공식적인 논쟁이면 언제든지 환영하지만, 비공식적인 자리는 거부한다”고 밝혔다. 수불 스님은 “깨달음에 대해서는 ‘이해’라는 용어는 설령 ‘깨달음 이후’라 해도 선종의 종지나 수행법과 맞지 않으며 이유가 무엇이든 깨달음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불교신문>은 보도했다. 이어 수불 스님은 교진여를 비롯한 최초의 5비구도 대화와 설득을 통해 깨닫게 했다는 현응 스님의 입장도 반박했다. 수불 스님은 “교진여는 부처님을 만나기 전부터 오랫동안 수행을 한 노 수행자다. 물론 이해의 과정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부처님의 설득으로 깨달음을 얻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수불 스님은 또 이번 논쟁이 공부하는 종단의 모습을 보여줘 바람직한 현상이며 수행은 인과를 피할 수는 없다 해도 완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제시하며 수행만이 불교와 종단이 가야 할 길임을 강조했으며, 종단에 대해서도 ‘모처럼 공부하는 분위기가 일어나서 기쁘다. 종도들이 안심하고 신도들이 열심히 부처님 믿고 살 수 있도록, 불교 믿는 신도들 자존심 살려서 신심 꺾이지 않도록 종단 기능을 바로 잡아서 올바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불교신문>은 전했다.
한편 수불 스님이 양자토론 수락 조건으로 밝힌 ‘종단 차원에서’라는 말의 뜻에 대해 ‘격을 갖춘 자리’라는 뜻, 조계종의 정체성을 다루는 토론의 자리라는 뜻, 종단이 어디로 가야 하며 종지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의 자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편 객관적으로 공신력과 격을 갖춘 종단 차원의 토론 자리를 마련할 단체(기관)로는 조계종 교육원 산하 불학연구소와 전국선원수좌회 등이 거론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