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는 간택이다. 미붓아카데미가 마련한 불교철학의 진수를 만끽하는 이 향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간택의 힘을 키우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미붓아카데미가 강남에서 진행하고 있는 ‘21세기, 불교를 철학하다’ 기획이 장장 6개월 간의 대장정의 마무리를 향하고 있다. 총 22강 가운데 20번째 강좌인 박인성 동국대 교수의 ‘유식학과 후설 현상학의 수용성 개념’ 강의가 내일(12월 4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서초구 방배동 함지박4거리 인근 오신채 없는 채식요리 전문점 마지의 2층 ‘아카마지’ 홀에서 열린다.
오랜 기간 동안 이번 강좌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해온 박인성 교수가 진행하는 이번 강좌는 요즘 뜨는 후설의 현상학으로 불교를 이해하는 길을 소개하는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어렵지만 우리는 섬세한 반야의 길로 가야하지요. 사실 섬세하기에 어려울 뿐, 섬세할 수 있다면 어려운 게 아니지만요.”라며 강좌에 임하는 심경을 밝힌 박인성 교수의 이번 강의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박인성 교수가 강의할 내용은 후설의 현상학으로 본 ‘유식학과 수동성과 수용성 개념’이다. 제목만으로는 솔직히 잘 감이 잡히지 않는 쉽지 않은 내용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박 교수는 쉬운 예를 들어 셈세한 간택의 길을 제시하기 위해 혼신을 다할 계획이다.
미붓아카데미 '21세기, 불교를 철학하다' 20번째 강좌는 동국대 박인성 교수가 후설 현상학과 유식학을 주제로 강의한다.
“자, 화단을 무심코 보고 있을 때 순간 이 붉은 꽃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하자. 붉은 꽃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은 이 붉은 꽃이 내 마음을 자기 쪽으로 향하라고 당겼고 그때 내 마음을 그 쪽으로 향했다는 뜻이다. 이 꽃의 붉음은 상(想)이고, 이 붉음의 좋은 느낌은 수(受)이다. 이 붉음의 좋은 느낌이 내 마음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지 않고 오로지 이 꽃을 계속해서 바라보도록 의지하게 한다. 이것이 사(思)이다. 이 붉음을 보는 마음, 이 붉음을 봄과 함께 생기는 좋은 마음, 이 좋은 느낌의 붉음을 더 누리고자 하는 마음 등을 한 대상인 이 꽃에 묶어놓은 것이 바로 촉(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도 촉, 작의 수, 상, 사가 모두 작용한 셈이다.”
박인성 교수의 강의는 삼천대천세계와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는 그런 방대한 것들이 아니다. 일상에서 늘 대하는 대상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고 반응하며, 그 작용과 반응이 어떻게 역으로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탐색하는 세밀한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을 통해 박 교수는 불교의 저 위대한 진리인 연기와 무상의 진리를 설파한다.
“이 화단의 이 꽃을 보고 꽃잎의 색깔이 붉다, 꽃잎의 모양이 둥글다, 예쁘다, 좋다, 더 가까이 가서 보고 싶다, 꺾어서 곁에 두고 싶다 등등의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여러 마음들을 한 대상으로 통합하는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통합 기능을 하는 것이 현상학에서는 촉발이라면, 유식학에서는 촉이라고 할 수 있다. 촉발하는 힘이 작용하는 수동성의 영역에는 이 촉이 불러오는 수, 상, 사 등이 같이 작용한다. 안식의 대상인 색경 곧 시각장은 이렇게 신체의 감관기관에 의지해서 안식과 함께 부단히 지향되는 촉, 작의, 수, 상, 사가 있고 또한 이렇게 해서 구성된 시각장은 또한 나의 주의를 일깨워 그리로 대향하게 하는 것이다. 근과 경과 식 삼사가 화합하는 과정은 현상학 용어로 말하면 수많은 촉발적 경향들이 경합하는 과정이고, 이러한 경향들은 나의 주의를 일깨워 대향하게 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안식과 의식은 솔이심과 함께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삼사가 화합해서 부단히 변이해 가는 촉발의 과정이기도 하다.”
박 교수가 내리는 결론은 반야는 간택(簡擇)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 사유는 이 꽃을 보고 이 꽃은 붉다 하고 술어적 판단을 할 때 이 판단에서 머뭇거리거나 멈추는 경향이 있다. 반야의 이념에 맞게 사상(事象)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이 머뭇거림과 멈춤을 넘어 술어적 판단 이전과 이후로 깊게 파고들어가 간택하는 힘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말한다. “만약 수동성과 수용성, 그리고 능동성의 개념이 고따마 싯따 붓다가 말하는 무상, 고, 무아를 이해하는 데 또 다른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를 끌어들여 이 유식학의 용어들에 적용해볼 필요가 있다”고. 그래서 “‘이 꽃은 붉다’라는 판단 이전의 솔이심과 심구심과 결정심 그리고 5변행심소들로 파고들어가며 후설 현상학의 수동성과 수용성 개념을 적용해 보았다”고. 또 “그 결과 전5식과 함께하는 5변행심소는 이미 나의 주의와 관심이 대향하기 전에 수동성의 영역에서 작동하고 있고, 이 수동성의 영역에서 경합을 벌이며 부각해 오고 있는 감각들이 나를 촉발해올 때 솔이타심이 이것들에 대향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 직후 심구심이 인지적 관심으로 생겨나고 이후 이 관심을 충족시키는 결정심, 염정심 등류심이 후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초겨울의 추위가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하지만, 훌훌 털고 일어나 강남발 불교철학 열풍의 진원지, 방배동 아카마지홀로 발길을 향해보자. 진리와의 만남, 위대한 불교와 서양철학과의 조우가 가져다주는 기쁨을 맛볼 수 있으니.
참가문의: 010-8770-5258(김현진), 010-6742-2151(정태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