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엄마를 떠나 승려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한 것에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이 아픕니다. 엄마의 사랑이라는 진귀한 보배에서 충분히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말았으니까요. 저는 여러분이 엄마는 가장 맛 좋은 바나나 같고, 맛난 쌀과 같고, 벌꿀이나 설탕 같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랄 뿐입니다. 엄마는 사랑입니다.
틱낫한 스님 『엄마』에 나오는 이야기다.
엄마!
우리가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던지는 인간의 언어이자, 평생토록 마음 속에 빛과 그림자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두 글자이다.
사람들은 흔히 불교를 부모도 버리고 가족도 버린 매정한 종교라고 생각한다. 특히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불교를 폄훼할 때 가장 많이 들먹이는 것이 부모를 버린 비윤리적 종교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스님들은 출가한 뒤 찾아온 어머니를 매정하게 내친 눈물섞인 일화를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부모는 물론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끊고서야 수행 정진할 수 있다고 사람들은 막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틱낫한 스님은 엄마에 대한 관찰이 바로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가장 좋은 수행법이라고 소개한다.
최근 발간된 틱낫한 스님의 『엄마』. 이 책의 원제는 '엄마에게 한송이 장미를(A Rose For Your Mother)'이다.
틱낫한 스님은 엄마를 옥수숫대로, 자식을 옥수수로 설명한다. 그 둘 사이의 관계를 통해 연기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둘은 같은 사물이 아니지만, 서로 완전히 다르다며 떨어트려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옥수숫대와 씨의 관계처럼, 당신과 엄마 또한 완전히 같은 사람이 아니지만 서로 전혀 다른 인간도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서로 의존하고 조건이 되면서 관계를 맺는 연기의 진리입니다.”
너무 도덕교과서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반문한다면,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도덕적인 교훈을 주려고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엄마를 사랑하는 일은 이득의 문제입니다. 엄마는 맑은 물이 솟는 샘 같고, 가장 맛있는 사탕수수나 벌꿀 같으며, 가장 달콤한 쌀과 같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정말 사탕수수 같기만 한 존재일까. 세상에 얼마나 많은 자식들이 부모의 기대, 욕심, 지나친 관심으로 고통받는지 스님도 아실텐데.
스님은 그 또한 간과하지 않는다. 나아가, 부모와 불화를 겪고 있다면 그와 화해하라고 당부한다.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시건 돌아가셨건, 마음이 평온하다면, 귀를 기울여 듣고 사랑스런 말을 한다면 부모님과 불화를 해소할 수 있고 동시에 자신의 불화도 치유된다”고 틱낫한 스님은 말한다.
“어떤 사람의 말을 자비로운 마음으로 들으면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에 어떤 사람도 귀를 기울이고 듣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당신이 그의 말을 듣고 그가 원하는 것을 구제해 준 첫 사람일 것입니다. 그 순간 당신은 고통을 끝내고 보살이 됩니다.”
스님은 그와 동시에 ‘걷기 명상’을 하라고 권한다. 모든 사물과 친구가 되고, 모든 적들에게 화해의 발길로 인도하는 걷기 명상 말이다.
“자신이나 다른 이들을 충실히 사랑하지 못하기에 그들은 당신과 당신 가족, 당신 주변의 사람들을 공격하고 파괴하였고 결국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들을 위해 걷기 명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 걷기 명상을 하는 순간, 당신은 사랑과 이해, 자비로 충만한 보살이 됩니다. 붓다가 됩니다.”
엄마는 꽃이다. 엄마는 옥수수다. 그리고 나를 키워준 대지이다. 그 대지 속에는 분명 고통의 씨앗도 담겨져 있었을 것이고, 무한한 기대와 사랑, 애증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 대지가 품은 커다란 에너지를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 연기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엄마를 통해 내가 부처가 되는 방법이라는 것이, 틱낫한 스님이 들려준 엄마 이야기다.
이도흠 옮김/ 아름다운 인연/ 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