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전연구가 오윤희 씨(사진 오른쪽)가 단행본『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를 펴내고 이 책 편찬에 기여한 봉선사 총무 선우 스님과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이후 많은 불교 경전들이 한글로 번역되었다. <언해불전>이란 이때 조성된 한글 경전을 말한다.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말과 문자가 달라 그러지 못하는 이가 많으니, 이를 가엾게 여겨 글자를 만든다.’ 세종이 훈민정음 서문에 밝힌 창제 이유다. 무지렁이도 쉽게 익혀 제 뜻을 펼 수 있는 문자 한글, 바로 이 문자로 세종은 불교 책을 번역해서 펴냈다.
경전 전산화작업을 하던 어느 날 경전연구가 오윤희는 15세기 조선의 『원각경언해』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 안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편집이 있었고, 읽기가 있었다. 컴퓨터 화면으로 불교 책을 읽는 일이 일상이었던 그는 <언해불전>을 하나의 전체로 읽기 위한 환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읽기의 실험이 계속되면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욕망도 커졌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이다.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저자는 이 책이 조선의 <언해불전>에 대한 자신의 독후감이라고 소개했다.
“세종은 사대부들의 숙원이던 억불 정책을 실행하여 조선 땅에서 불교의 입지를 좁힌 유학군주였습니다. 그런 그가 불교 책을 읽고 펴냈습니다. 신하들의 반대가 거듭되자 세종은 아예 언로를 막아버립니다.”
질문은 자연스럽게 ‘세종은 한글로, 하필이면 불교 책을 펴냈을까?’로 이어진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번뜩이는 상상력으로 답을 이어간다.
“한글로 불교 책을 펴내는 까닭이 어리석은 백성으로 하여금 보고 살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면? 알게 된 백성들이, 이전까지는 지배층에게만 허용되던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리되면 지식과 권력과 금력을 백성과 지배층이 나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세종의 훈민정음과 <언해불전>은 지배층의 특권을 허물려는 이념투쟁, 계급투쟁의 도구가 됩니다.”
그는 <언해불전> 편찬 사업에 선사(禪師)들이 참여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선사들의 말은 ‘입말의 활어’입니다. 그들은 엘리트 교육을 받은 소수 지식인들의 말과 글에 맞서기도 했고, 동네 사투리, 속담과 속어를 써서 누구나 어디서나 쉽게 통할 수 있는 말의 전통을 세웠습니다. 문자는 몰라도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었던 우리 입말 전통이었습니다.”
그는 세종이 <언해불전>을 펴낸 이유 가운데는, 어쩌면 ‘함께 읽고 논란하는’ 열린 지식 전통을 되살리려는 뜻도 들어 있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혁명의 일방적인 거센 물결 속에 휩쓸려 사라진 이 문화가 되살아나야만, 거친 앎으로 인한 폐해와 성리학자들의 독주를 막고 조선을 제한적이나마 열린사회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길고 낯선 <언해불전>의 몇 가지 주요한 논증을 골라 <언해불전>의 편집, <언해불전>의 읽기를 따라 두 번 째 책에 담는다. 이어 세종이 만년에 세조와 수양 두 아들과 함께 읽고 번역했고, 성종 때에 이르러서야 완성된 『증도가남명계송』을 셋째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