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쓴 티벳 현자의 말씀』을 펴낸 역경사 신상환(오른쪽) 박사와 해제자 이현수 작가가 책 발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티벳에서 ‘싸꺄 렉셰’라 불리는 『선설보장론』은 인간 덕성의 함양을 강조하는 일종의 잠언집이다. 티벳 운문학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저자는 티벳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13세기 고승인 싸꺄 빤디따. 망명 티벳의 각 학교나 승원에서는 오늘도 이 ‘싸꺄 렉셰’를 통해 티벳의 전통적인 운문학을 가르치고 또한 배우고 있다. 국내에는 티벳학 전공자인 신상환 박사가 2010년에 번역해 처음 소개했다.

9개 품, 475개 게송에는 불교 교리는 물론 지혜로운 삶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현자, 선량한 성품, 어리석은 자, 뒤섞인 행실, 나쁜 행실, 자성의 형식, 부적절한 행위, 행, 법 등을 다양한 시선으로 들여다본(觀) 것들이다.

『풀어쓴 티벳 현자의 말씀』(도서출판 b)은 『선설보장론』의 해제집이다. 해제집이 나오기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다. 역자 신상환 박사와 해제자 이현수 작가는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간의 과정을 소상하게 풀어놨다.

‘싸꺄 렉셰’를 우리말로 옮길 때 신상환(현 고려대장경 연구소 전임연구원)은 ‘타고르 대학’으로 유명한 인도 비스바 바라띠 대학의 인도-티벳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며 티벳어 문법과 역사 불교 철학 등을 가르치고 있었다. 해제자 이현수는 등단한 수필가로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마친 뒤 불교를 만난 늦깎이 불자였다. 불서읽기 결사체 ‘붓다와 떠나는 책 여행’의 도반으로 활동해왔다. 인터넷 신문 <불교포커스>에 글을 연재 했고, 당송대의 한시를 풀어 읽는 블로거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지내던 두 사람을 이어준 것은 불교와 한시였다.

신상환은 이현수의 블로그에서 한시를 읽는 재미로 그곳을 자주 찾았다. 이현수는 2010년 연말께 신상환이 번역한 『선설보장론』을 읽었다. 한시를 읽고 옮기듯 마음에 드는 게송을 블로그에 올리기를 계속했다.

가상공간을 서로 넘나들며 신뢰를 키워가던 두 사람의 인연은 『선설보장론』을 우리말로 옮기고 우리말로 풀어쓰는 데까지 이어졌다. 두 사람은 2011년 초부터 만 2년 동안 온라인을 기반으로 휴일도 없이 날마다 게송과 해제문을 함께 쓰고 읽는 작업을 진행했다. 457개에 달하는 게송의 올바른 의미에 대해서 논의를 주고받았다.

이어 1년 반 넘게 내용과 글을 다듬었다. 그러는 사이 신상환은 20여 년 만에 해외유랑을 끝내고 역경사로서의 일생을 다짐하며 고국으로 돌아왔다. ‘진행성 근이완증’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살아가던 이현수는 예기치 않게 암 수술을 받는 고초를 격기도 했다.

마침내 다섯 해 만인 지난 6월, 불교 공부와 수행, 그리고 인문적 교양의 한계를 넘어 일반 독자들도 알기 쉽게 불교적 가르침과 불교적 삶을 접할 수 있는 글을 세상에 내놓게 됐다.

역자 신상환은 “역경사에게 좋은 글을 읽고 옮기는 것보다 기쁜 일은 없다. 거기에다 옮긴 글을 읽고 공감해주는 독자를 만나는 것은 금상첨화다.”라며 해제자 이현수와 사경을 함께 하면서 역경사로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 책이 티벳 불교를 밀교의 신통방통한 수행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품성이 곧 불교의 요체임을 강조하고 있다.”며 “티벳인들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된 현자의 말씀이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해제자 이현수는 꾸밈이 없는 자연스러운 글로 책의 가치를 한껏 높였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다거나 어떤 이의 삶을 이끌 수 있는 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중에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삶이고 놀이였다.”고 했다.

인도 다람쌀라에서 수행 중인 청전 스님은 추천사에서 “신상환 교수는 역경사의 모범”, “들돌(이현수) 선생을 볼 때면 조선의 선비와 같은 올곧은 기품이 느껴진다”는 등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