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은 개구즉착(開口卽錯)입니다. 선은 본질이므로 근본의 모습은 언어나 사량(思量)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것이에요. 그래서 부처님 당시부터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고 해서 언어 외에 따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선이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문에서의 모순이라고나 할까, 선서(禪書)가 엄청나게 많은 것도 사실이에요. 언설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다보니까 불교가 아닌 것이 많이 포함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므로 처음 선 공부를 하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로 하여금 처음부터 사량으로 공부할 수 없도록 입을 막아버립니다. 허, 참. 언설로 설명할 수 없는 선에 대해 설명을 하려니까 구구하게 말이 많아지게 되어 멋쩍어요. 아무튼 이 길, 즉 선 수행의 길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가야할 길입니다. 이 길 밖에 참 생명을 드러낼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어요.

6월 1일 하안거 결제일,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이신 설정 대종사는, 미국과 일본, 대만 등에서 온 외국인 학자들의 예방을 받고 선에 대해 묻는 그들의 질문에 자상하게 설명했다.

방장 스님이 주석하시는 정혜사 방장실에는 세계적인 논리학자 그레이엄 프리스트 교수, 교토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야수오 데구치 교수, 대만에서 온 구스타프 왕 등 외국인 학자들과 이들의 제자인 박사과정의 학생들, 그리고 국내 1세대 사진가로 이름이 높은 육명심 서울예대 명예교수, 박경준 동국대 교수, 숭산스님의 제자인 헝가리 원광사 청안 스님 등 15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선은 불교를 믿건 믿지 않건 누구나 해야 하는 수행입니다. 선은 신앙, 사상, 국경, 인종 등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최고의 수행이요, 모든 생명을 참 행복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참 생명, 참 성품은 원래부터 더렵혀지거나 훼손된 것이 아닙니다. 뭇 생명들이 살아가면서 스스로 오염되어 그 광명이 가려져 버린 것이지요.”

설정 스님은 그 참 모습이 훼손되거나 가려진 참 생명, 참 성품을 찾기 위해서 참선 수행을 하면 승의와 세속의 구분, 선악과 미추 등 사량분별에 의해 오염된 모든 것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참 생명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사량분별심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남아 있으면 선을 알 수 없으며, 그것은 선을 이해하는 경계가 아니라고 부연했다.

설정 스님은 외국에서 찾아온 학자들이 논리학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한 듯 “선은 세상의 논리인 이분법적 논리로는 접근이 안 되는 것”이라며 “자, 차를 드십시오!”라는 말로 선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했다.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질문과 답변이 시작됐다. 일본불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한국불교, 그 중에서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간화선맥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선에 대해 외국의 학자들은 궁금한 것이 많은 듯했다.

그레이엄 프리스트 교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유마경>의 가르침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유마경>에는 두 번의 침묵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사리불의 침묵이고, 다른 하나는 저 유명한 유마거사의 침묵입니다. 그 중에서 유마거사의 침묵은 문수보살에 의해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설정 스님이 답변했다.

“사리불의 침묵은 유마 거사의 뜻을 잘 살피지 않은 가운데 나온 침묵이고, 유마 거사의 침묵은 입을 열 수 없는 침묵, 입을 열면 다 틀리는 것이라는 엄청난 울림을 가진 침묵이기 때문에 문수보살의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불교에 ‘무설설(無說說)’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없는 말이라는 것인데, 무설설이 진설(眞說)입니다.”

설정 스님은 이어 중생들이 현상에 집착해서 현상만 좇고 살아가기 때문에 본질적인 것을 모르고 살고 있다며, 선이란 바로 그 본질에 입각한, 본질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레이엄 프리스트의 질문과 설정 큰스님의 즉답이 이어졌다.

“선에서는 이원론적 사고를 부정합니다. 선악의 구분도 선에서는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세계가 그렇지가 않다는 것에 있습니다. 구체적인 일들, 예를 들면 테러라든가, 최근 중동의 IS와 같은 것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선적인 것인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을 해야 합니다. 선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빚어지는 불행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테러는 이분법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증애(憎愛)의 극치입니다. 바로 그 선상에 IS도 존재합니다. 선은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선이 이분법을 다 부정한다면), 테러(憎)가 나쁜 것처럼 애(愛)도 나쁜 것입니까?”

“선은 증과 애를 다 초월합니다. 선을 통해서 지혜(智慧)가 드러나면 거기에서 무한한 자비(慈悲)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원론을 부정한다고 했을 때, 증오만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증과 애를 다 놔야 한다는 뜻입니까?”

“당연히 둘 다 놔야 합니다. 근본자리에는 증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비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포기가 아닙니다. 증애를 둘 다 극복했을 때, 즉 분별심을 벗어나는 지혜를 증득했을 때 지혜에서 무한한 자비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자비는 분별적 자비가 아닙니다. 분별을 초월한 대자비입니다.” 

세속제적 논리와 승의제적 초논리가 부딪히는 현장이었다. 그레이엄 프리스트 교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갸웃거리는 표정이 역력했다. 순간 동아시아 불교전통에서 자란 일본 교토대학의 야수오 데구치 교수가 다소 어색해진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듯 나섰다.

“화엄에서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개별적인 하나하나의 경쟁관계에 있는 것들이 하나로 모아질 수 있습니까?”

“공성(空性)의 자리에서 보면 일즉다 다즉일입니다. 중생심에서 보니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분별의 자리에서 보면 개별적인 나이지만, 공성의 자리에서 보면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크고 작은 것이 둘이 아니고 다 한 선입니다. 이 도리를 확연히 알려면 선을 통해야 합니다. 관념과 논리로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물은 마셔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압니다. 마셔본 사람과 아직 마셔보지 못한 사람의 차이입니다. 사회적 갈등이나 세계적 갈등들이 결국은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오류를, 오류 그 상태로 펴려고 하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설정 스님은 세계평화나 갈등해소 등은 이기와 탐욕을 가지고 있는 한 불가능하고,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 어떠한 해결책도 찾아지지 않으며, 오직 부처님의 말씀, 즉 화엄의 관점에서 바라 보아야 하고, 실질적으로 해결하려면 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반드시 실천해야 할 수행이라고 거듭 역설했다.

설정 스님은 미국에 잠시 머물렀을 때, 화엄을 물리로 풀어보려는 물리학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며 그분들이 도솔천이나 극락세계가 실질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소개했다. 설정 큰스님은 그러나 이론과 사량으로 접근이 안 되는 것을 논리적으로 아무리 접근하려고 해도 결코 본질에 도달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화엄의 세계, 일즉다 다즉일, 원융법계는 이론으로 접근이 안 됩니다. 비슷하지만 아닙니다. 이 점을 확실히 자기 것으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실참실수’를 해야 합니다. 이거 제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허허.”

설정 스님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무리 이론으로 농사짓는 법을 배웠어도, 제대로 수확을 하려면 직접 씨도 뿌려봐야 하고, 풀도 뽑아봐야 하고, 물도 주어봐야 하고, 추수도 직접 해봐야 제대로 아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부연했다. 불교는 이론을 넘어서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특히 오늘(6월 1일)은 한국불교에서는 하안거 입제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날이라면서 한국불교에서 안거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설명했다.

잠시 여운이 흐르자 박경준 교수(동국대 불교학과)가 물었다.

“선의 정신이 물론 양극단의 대립을 부정하지만 그 바탕에는 무한자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는 현재 일자리가 없습니다. 매우 부족합니다. 저는 정치를 하는 분들이나 국가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서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일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선적인 무한자비라고 생각합니다. 큰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중생계에는 차별이 많습니다. 빈부격차나 학력의 격차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차별이 존재합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인과에 의한 순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과율은 분명히 자기 행위에 의해 일어난다고 봅니다. 그러나 차별적인 세상은 정치적 입장에서 대할 때, 주도적인 자리에 있는 정치인이나 행정가, 기업인, 교수 등과 같은 분들이 나서서 불교적 정신으로 해결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근거는 모든 생명이 나와 별개가 아니라는 연기적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보통사람들은 각기의 사람들이 별개의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심지어 상대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까 언급한 <유마경>의 불이(不二)사상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모든 것은 다 연관이 되어 있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유마 거사의 가르침에 입각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차별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가장 구체적인 해소책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탐욕과 이기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 사회가, 국가, 세계가 향상될 것입니다.”
 
박경준 교수는 설정 스님의 말씀에 공감을 표시한 후 “제가 생각하는 불교적 해결책은 완전고용으로 가는 것인데, 큰스님의 말씀도 그렇게 이해해도 되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설정 큰스님은 “그렇습니다. 나의 고통이 너의 고통과 다르지 않다는 연민과 사랑이 다 자비의 정신이라고 할 때, 전체 생명의 행복과 통합니다”라며 “인과에 의해 잘 살고 못 사는 차이가 있더라도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이 불이사상으로 정책과 시책을 편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더 행복해지고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설정 스님은 박경준 교수의 ‘스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세계일화로 정리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했다.

설정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던 데구치 교수가 다시 물었다.

“참선 수행을 통해 ‘참나’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이분법적 문제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럴 때 사랑과 증오라는 감정을 넘어서는 ‘참나’를 경험하게 되는 것인지요?”

설정 스님이 답했다.

“불교에 중도(中道)가 있습니다. 증애, 원근, 다소, 미추 등 모든 분별에서 벗어나는 것을 중도라고 합니다. 불교의 화엄세계가 깨친 경지에서 보니까 있는 그대로가 ‘화장세계’라는 것처럼 진리 그 자체를 차별과 분별하는 마음으로 보니까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도몽상인 것이지요. 전도몽상에서 벗어나면 분별심을 벗어난 참나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언어소통의 문제, 하안거 결제법회 등 주요 행사 일정 등으로 소통에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외국에서 찾아와 한국의 정통선문을 관장하는 선사를 친견하고 싶다는 방문객들의 표정에는 만족감이 흘렀다. 

덕숭산을 찾은 외국인 학자들의 대화는 점심 공양 이후 정혜사 능인선원 선원장 금산 스님과의 차담으로 계속 이어졌다. 학자들의 질문은 집요했고, 자신들이 연구하고 있는 논리학적 탐구와 논리를 초월한 선사들의 세계가 갖고 있는 차이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깊은 성과가 있다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혜사에서 수덕사까지 직접 걸으며 빼어난 경관을 만끽한 이들의 표정에 환희심이 번졌다.

이들 일행은 오후 2시부터 수덕사 대웅전에서 봉행된 하안거 입제식의 장중한 광경을 지켜보는 것으로 덕숭산 수덕사 일정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