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드러난 실기 능력 있는 범패승을 모시거나 완벽한 장엄구를 갖추기보다 옛 스님들의 의식 절차를 그대로 재현해 여법한 생전예수재를 이끌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이를 위해서는 오후에 생전예수재를 봉행하고, 장소에 따른 범패승의 역할을 세분화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이 같은 주장은 5월 9일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생전예수재’란 주제로 열린 조계사(주지 원명 스님)․한국정토학회(회장 신규탁) 제18차 학술대회에서 불찬범음연구소장 혜일명조 스님<사진>에 의해 제기됐다.

혜일명조 스님은 이날 ‘생전예수재 발전방향에 대한 제언’이란 주제 발표에서 “아무리 수준 높은 실기 능력을 갖고 완벽한 장엄구를 가졌더라도 의식 절차를 어쭙잖게 때를 맞춰가며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란 생전에 미리 수행과 공덕을 닦아 두는 재(齋)로, 몇 년에 한 번씩 오는 윤달에 지낸다.

스님은 이날 주제 발표에서 “생전예수재는 생자와 망자 모두 크고 작은 전생의 빚을 갚기 위해 설행하는 재의식”이라고 규정하며 ‘본질에 충실하자’며 제언을 쏟아냈다.

그는 “실제 현장에 가보면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보유자인 구해 스님을 비롯, 권위 있는 범패승조차 가장 영향력 있는 의식집인 ‘석문의범’으로 생전예수재를 집전하지 않는다”면서 “그 이유는 ‘불편해서’”라고 지적했다.

또 “현실적으로 모든 절차를 한정된 시간 안에 마치기란 불가능해 절차에 소개된 내용 중 집전자가 필요한 의식만을 선택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면서 “이에 따라 생전예수재의 집전자, 주최 측이 요구하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절차의 생략과 변형이 일반화된 데에선 “현장 상황에 맞게 의식의 절차를 능동적으로 바꿀 수는 있지만 자칫하면 목적과 무관한 의식의 절차에 휩싸여 본질을 벗어날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괘불을 밖에 모시지 않았으면서도 시간이 남았다는 이유로 괘불이운을 행하는 ‘괘불님이 웃을 일’이 자행되고 있다”면서 “생전예수재 동참자도 점심을 먹고 난 후엔 바쁘단 이유로 자리뜨기 급급하고 마지막 회향 땐 참여 범패승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스님은 ‘생전예수재를 점심을 먹고 난 후 오후에 행할 것’을 주문했다. 사찰 측에서 여유롭고 빠짐없는 준비와 여유로운 사시불공 진행, 동참자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본 도량과 성현을 맞이해 관욕하는 영청단과 관욕실, 소대 등 장소에 따라 집전하는 범패승을 달리하라고 주장했다. 즉 본 도량에서 머물며 행하는 어산1팀, 영천단에서 성현의 강림을 맞는 어산 2팀, 성현을 이동시키는 어산 3팀으로 구분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본 도량에서 어산1․3팀이 예수작법준비의식을 시작하면 괘불이운을 행했던 어산2팀은 영천단으로 이동해 상단 성현을 청하고 맞는 의식을 준비한다. 어산2팀은 앞선 팀이 봉송사자편까지 끝내면 바로 소청성위편을 시작해야 한다.

혜일명조 스님은 “목적을 상실하고 영산재와 수륙재 등과 별반 차이 없는 이름뿐인 생전예수재만으로는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장소에 따른 범패승의 역할을 전문적으로 세분화해 소임을 정한다면 최소 시간만으로도 공간을 적극 활용하며 여법하게 의식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는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가 ‘예수재의 의례와 그 의미’, 동국대 총장 보광 스님이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생전예수재’를 주제로 기조발표했으며, △한국불교 생전예수재의 특성(이성운) △생전예수재의 종교문화적 의미와 위상(구미래) △조계사 생전예수재의 역사와 의의(성청환) 등의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