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이 첫 책 『오대산 정념스님이 들려주는 행복한 불교 이야기』를 펴내고 기자감담회를 열었다. [사진제공=담앤북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산이다. 산 전체가 불교성지가 되는 곳은 남한에서는 오대산이 유일하다. 동대 만월산을 뒤로하고, 그 만월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월정사가 고요하게 들어 앉아 있다.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천년 고찰이다.
이곳의 주지 정념 스님이 첫 책을 냈다. 『오대산 정념스님이 들려주는 행복한 불교 이야기』(담앤북스)다.
“태고의 물길 흘러 한강수를 이루는 곳
고금을 모두 안고 금강연을 보듬으니.
천 길은 맑고 밝아 법계를 안아내고
천 사량 만 시름도 언제냐는 듯.
무저선을 띄우고 무공저를 빗겨 부니,
보름달만 한가로이 월정사를 비추네.
우리의 인생도 물과 같아서 한번 가면 돌아올 줄 모르니, 언제나 되돌릴 수 없음을 상기하면서 후회 없는 삶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21쪽)
언젠가 법회에서 월정사를 감싸고 있는 금강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참석자들에게 전한 감회다. 책에는 주지 부임 후 초하루법회, 철야법회 등에서 행한 58편의 안심(安心) 법문을 담았다. 여러 경전과 조사어록은 물론 동서양의 고전이 종횡무진 등장한다. 지혜, 보시, 수행, 행복 등 소재도 다양하다. 법문과 함께 오대산과 월정사의 풍광을 담은 사진 300여 장이 실려 있다.
정념 스님은 15일 사간동 화쟁아카데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도시 문명 생활에서 지친 사람들이 재충전할 수 있도록 불교적 가르침을 전하고 싶었다. 세상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겸손해 했다. 이어 “늘 밖으로만 향하는 시선 때문에 삶에 과도한 갈등이나 고통이 뒤따르기 마련”이라며 “자신의 마음을 잘 반추해 마음의 문을 열어야 세상을 수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삼[麻] 짐을 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우연히 금덩어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지금까지 지고 온 공이 아까워 금을 취하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문제는 삼을 지고 가면 금을 갖지 못하고, 금을 가져가자니 무게 때문에 삼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사람은 긴 망설임 끝에, 삼을 그대로 지고 가기로 했답니다.” (223쪽)
스님은 “언뜻 보기에는 매우 어리석은 사람 같지만,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제아무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어도, 우리가 살아온 그동안의 타성적인 삶을 쉽게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불교의 가르침은 단순히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가슴이 청량하게 열려야만 하는 것이지요. 가슴이 열리는 것을 명월흉금(明月胸襟)이라고 합니다. ‘가슴을 열어서 밝은 달을 띄운다.’는 의미입니다. 또 이렇게 해서 자기가 밝아지면, 자연히 세상의 어두움은 찾으려 해도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224쪽)
정념 스님이 월정사 주지로 취임한지 올해로 12년 째. 새해 1월이면 3만기(12년)가 끝난다.
“주지 취임 당시 이대로 가면 10년 뒤의 한국불교에 위기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중사찰의 강점을 살리는 방안을 고민하게 됐지요.”
스님은 중국 오대산 수상사와 자매결연을 맺고 월정사에 각종 문화공연을 유치했다. 지역의 이웃종교인과도 교류하면서 종교화합과 지역사회 화합도 중시했다.
그러자 어느 날부터인가 ‘히트상품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취임 첫해인 2004부터 시작한 단기출가학교는 올해 4월로 44기, 3천 명이 넘어섰다. 누구나 한 달간 스님들과 똑같이 생활하며 지내는 일이라 처음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잘해봐야 서너 차례의 단발성 사업에 그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단기출가학교는 조계종의 대표적인 수행체험 프로그램으로 남아 있다. 여기를 거쳐 출가에 다다른 이도 무려 150명. 그중 10명은 정념 스님의 상좌가 됐다.
2008년엔 월정사 안에 만월선원을 완공했다. 만월선원에 제일 먼저 방부를 들인 사람도 정념 스님이었다. 본사 주지이지만 여름 한철, 겨울 한철 모두 6개월 동안은 선방에서만 지낸다. 본사 주지도 선방에 방부를 들인다는 획기적인 발상도 스님의 기획이다. 1992년 상원사 주지로 취임했을 때 1947년 화재로 소실된 청량선원을 복원했다. 그 때에도 제일 먼저 방부를 들였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올라가는 옛길인 ‘선재길’도 복원했다. 오대산 숲길 걷기 등의 행사를 만들기도 했다. 모두 사찰 문을 세상 밖으로 활짝 여는 일이었다.
스님은 2006년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에 의해 반출된 『조선왕조실록』 및 『의궤』를 반환받는 환수위를 구성해 활동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실록』과 『의궤』를 되찾아온 공로로 2012년에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이제 더 큰 일이 남아 있다. 명상마을을 만드는 일이다. 월정사 입구 7만여 평에 이르는 터의 땅을 고르고 있다. 정념 스님은 “세계의 불교가 수행 중심의 문화로 전환돼 가고 있다.”면서 “명상마을을 수행과 치유의 공간으로 조성해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명상마을은 올해 9월 기공해 2017년 강원도 평창동계올림픽 이전 완공 예정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사찰 문화를 소개하는 세계명상포럼을 여는 것도 구상 중이다. 200명 이상 동시 거주 규모의 명상마을이 완공되면 조계종 산하 시설로는 최대 규모가 된다. 세계 10대 명상센터로서도 손색이 없다. 또 하나의 ‘히트상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대산에는 빼어난 세 가지 자연의 선물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찬바람에 공기가 좋아 밤 별빛이 아름다운 것이고, 둘은 곧게 뻗은 잣나무가 울울창창한 것이며, 셋은 옥빛의 맑은 물이 한강의 시원을 이루는 것입니다.”(18쪽)
스님에게 한국불교의 현상을 묻자 “새로운 결집이 필요한 때”라는 답이 돌아왔다. “교리, 교학의 체계를 세워 다방면의 실천적인 인재를 배출해야 합니다. 나아가 인류문화를 주도해야 합니다.”
오대산의 맑은 물이 한강의 시원을 이루듯이 정념 스님의 깊은 생각이 한국불교의 변화와 개혁의 새로운 시발점이 될 것인지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