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시간과 영원을 다룬 논문이 발표됐다. 이은영 씨가 경희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불교의 시간과 영원-설일체유부와 유식학파를 중심으로-’라는 박사논문을 지난 2월 취득한 것이다.

이은영 박사의 이 논문은 붓다가 인생의 무상함이 가져오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출가했고, 그렇게 해서 도달한 열반은 영원(常)하다는 관점에서 불교의 시간관을 논하고 있다. 즉 불교에서 벗어나려는 시간과 도달하려는 영원이 무엇인지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를 구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 논문은 불교의 ‘무상’과 ‘시간’을, ‘열반’과 ‘상’을 등치할 수 있는지의 여러 가지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시간관을 다뤘다는 점에서, 또한 경희대에서는 처음으로 불교학을 심도 깊게 연구해 배출한 제1호 박사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논문이다.

경희대 허우성 교수의 제자이기도 한 이은영 박사는 “불교의 시간이나 영원에 관련한 논문이 한국과 일본 불교학계에서 더러 있기는 하지만 대개가 불교적 시간론의 기초적 이해를 다루는 데 머물러 있거나 광범위한 논의방식으로 짧은 분량에 뭉뚱그려 언급한 수준에 머물고 있어, 구원론적 목적과 관련하여 심도 깊게 연구를 진행한 논문은 아직 없다”는 것으로 이번 논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이 논문은 초기불교를 통해 나타나는 시간과 영원에 대한 불교의 공통적인 입장을 첫째 불교는 무상을 시간과 구분하여 전자를 사실로 인정하고 후자를 무상에 의지해서 나타나는 가상적인 것으로 보며, 둘째 시간은 실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영원에 이르는 종교적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 셋째 이러한 전환의 계기는 무지와 지혜, 즉 마음의 상태변화를 통해서 실현된다는 전제로 연구의 출발을 삼고 있다. 특히 이 논문은 다양한 각 부파의 입장을 모두 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보고, 부파불교의 대표 학파인 설일체유부와 대승의 유식학파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고, 본론의 논의를 통해 유부와 유식학파가 각각 시간과 영원의 이원론(二元論)과 불일불이론(不一不二論)이라는 대조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은영 박사는 이 논문에서 “불교가 그 어떤 종교나 철학보다도 변화를 말하는 사상인 것은 시간과 무상을 구분하고, 현상의 기초적 경험으로서 무상과 그 원인인 연기(緣起)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불교는 무지, 혹은 지혜라는 마음의 상태가 계기가 되어 무상이 시간으로 나타나거나 영원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렇게 무상 자체로부터 시간, 영원을 분리함으로써 불교에서는 시간을 벗어나 영원에 이른다는 종교적 구원이 가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즉 불교는 전환의 계기를 우리의 마음에 둠으로써 이 구원이 외적인 신(神)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주체적 결단과 내적 각성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특히 무상이 갖는 역동성에 주목하고 있다. 무상의 역동성은 이미 초기불교에서 무상이 고통을 초래하는 한편, 고통을 소멸시키는 이중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무상하므로 고인 한편, 무상을 무상으로 봄으로써 고가 소멸한다는 독특한 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무상의 역동성은 유부보다는 유식학파에서 더 뚜렷해진다고 강조한다. 유식학파는 무상, 즉 현재에 현상이 순간적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경험의 재료이며, 그것에 대한 마음의 상태에 따라 시간과 영원이 나타난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유식학파에서 무상과 마음의 역동성이 더 뚜렷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법과 마음에 대한 이해가 유부와 달랐기 때문이며, 법은 외적 실체가 아니라 마음 안에 내적으로 잠재되어 있던 종자가 표출된 것으로 다른 법들과 분리된 실체가 아니며, 그것을 성립시킨 근원으로서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박사는 이어 “유부의 이상적 지혜는 분별이고, 유식학파의 이상적 지혜는 무분별”이라며 “유부는 정교한 이성적 사고, 언어, 논리의 철학으로 세간 범부와 소박한 실재론을 벗어나 비상(飛上)하지만, 한편으로 그 치밀한 사고, 언어와 논리의 분별은 종교적 초월로의 비상을 막는 족쇄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에 반해 유식학파에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도구인 사고, 언어, 논리는 실재보다 차원이 낮아서 실재를 있는 그대로 담을 수 없으며, 그 사고, 언어, 논리에 의해 그려진 희론, 망상의 세계가 실재라고 착각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속박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원인이며, 그리하여 분별적 사유가 끝까지 가서 멈춘 자리에 분별할 수 없는 것, 말할 수 없는 것, 생각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종교적 직관의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다른 종교 같으면 그것을 신이라고 하겠지만, 유식학에서 그것은 유식성, 혹은 진여라고 불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특히 유식학파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유위의 차원에서 차안과 피안을 설정한 유부와는 달리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 저기가 아닌 ‘여기’를 유일한 실재로 보고 있으며, 범부의 삶과 행동은 지양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 지양은 그릇된 인식에서 벗어나서 삶 가운데 이미 갖추어져 있는 무한성과 영원성을 파악하는 내적 초월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경향은 이미 중관학파가 유부적 경향의 불교해석을 비판할 때 나타났고, 유식학파에서 체계화되었으며, 이후 화엄이나 선불교 등 대승불교로 이어졌다”고 밝힌 이은영 박사는 “중관, 유식학파 이후의 대승불교에서 영원에 다다를 수 있는 유일한 때와 곳으로서의 ‘지금 여기’를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범부에게는 분명히 ‘나’와 ‘나의 삶’, ‘나의 죽음’이 있고, 나의 과거, 현재, 미래, 전생, 현생, 내생이 있지만, 불교의 성자나 보살, 붓다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범부의 환상에 불과하다”며 “열반은 그런 시간의 환상을 벗어나는 것으로서의 영원”이라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