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보 1배’ 하면 생각나는 스님은? 당연히 부산 초읍 불광사 주지 보광 스님이다. 스님은 2007년에 처음으로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10보 1배 순례를 마쳤다. 이후 이 코스에서의 순례는 20여 차례 진행됐다.

2009년엔 코스를 바꿨다. 1월 1일 부산 불광사를 출발해 통도사를 거쳐 설악산 봉정암에 이르는 63일 간의 외로운 순례 길이었다.

5년 뒤인 작년 9월 1일, 이번에는 2명의 도반스님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기점은 부산 불광사. 오대적멸보궁인 양산 통도사, 태백 정암사, 영월 법흥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등을 거쳤다. 이어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총 64일에 걸쳐 807km를 10보 1배로 참배했다.

『보광 스님의 길 위의 64일』(맑은소리맑은나라)은 작년 순례 길에서 기록한 일기와 소회를 엮은 책이다. 동행한 구미 관음사 주지 자중 스님과 부산 우리선원 주지 석광 스님의 글도 실려 있다.

스님은 10보 1배 순례를 시작하면서 ‘경제난 극복 기원과 남북통일 및 상생을 위한 10보 1배 대순례’라는 발원을 했다. 동시에 라오스 방비엥 지역 반티온 오지마을의 중학교 건립도 발원했다. 스님은 작년 6월에 불광사 봉사단체 ‘라오의 산들바람’과 함께 그곳에 이미 초등학교를 건립했다.

64일의 순례대장정은 스님에겐 철저한 참회의 시간이었다. 수행자로서의 사명감과 지켜야 할 것을 깨닫는 공부의 시간이었다. 더불어 순례의 기쁨과 고통을 온몸으로 함께 나눈 소중한 인연들이 있어 행복한 나날이기도 했다.

하루하루 스님의 순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로드킬 당한 동물, 신심이 넘쳐 호의를 베푼 사람, 혹은 야유를 보내온 사람 등 세상의 다양한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스님은 버림받은 동물과 10보 1배를 야유하는 사람들에게 아픔과 씁쓸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그 모습이 자신의 모습임을 발견한다. 생명이 깃든 모든 존재를 보살피지 못하는 우매한 우리 모습을 경책하고 반성한다. 또한 절실한 수행자로 돌아가 초심으로 부처님을 부르던 스님은 어느 날 문뜩 도로 옆 흐르는 물이 관세음보살이요, 지저귀는 새소리가 부처님 법임을 깨닫는다.

스님의 10보 1배는 끝이 없다.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순례가 준비되고 있다. 또 다른 인연을 기다리면서.

“오늘은 회향이지만 내일은 다시 입재다.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두려움과 의심 없는 마음으로 수행과 포교의 현장에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어제 저녁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주고받은 우리들의 마지막 대화였다.” (‘회향의 날, 다시 입재를 위하여’, 2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