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승 가운데 천태지자라는 분이 있다. 이 스님은 천태산에 오래 머물며 수행을 한 고승으로 흔히 천태대사로 불린다. 어느 날 천태대사가 지관 삼매에 들어 있었는데, 산돼지 한 마리가 앞으로 지나갔고, 잠시 뒤에 활을 든 사냥꾼이 나타나서 대사에게 물었다.

“산돼지가 이리로 지나갔는데 못보셨습니까?”

천태대사가 사냥꾼을 살펴본 후 몇 마디 나누다가 말했다. 

“엽사(獵師)여, 그 활을 던져버리시오.”

그리고는 대사는 게송을 읊었다.

烏飛梨落破蛇頭
蛇變爲猪轉石雉
雉作獵人欲射猪
道師爲說解寃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져 뱀의 머리가 부서지니
뱀은 죽어서 돼지가 되어 뒤진 돌에 꿩이 다쳤네
꿩은 죽어서 포수가 되어 다시 돼지를 쏘려하니
한 대사가 인연을 말해 맺힌 원결을 풀어주었구나

흔히 까마귀 날자 배떨어졌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알고 있는 ‘오비이락’이란 말의 출처이기도 한 천태대사의 이 게송은 선정에 들어서 혜안으로 이들(멧돼지와 사냥꾼)의 과거 인연을 살펴보고 나온 것이다.

이 게송에 따르면, 전생에 까마귀가 배나무 가지에 앉아 놀다가 무심코 날아가는 바람에 가지가 흔들려 배가 떨어져 마침 배나무 아래에 있던 뱀의 머리를 부서뜨려 죽는 일이 벌어졌다.

이 뱀은 까마귀에 원한을 품고 원수를 갚기 위해 멧돼지가 되었고, 까마귀는 죽어서 꿩이 되었다. 꿩이 봄에 풀잎을 뜯어먹고 있었는데 멧돼지가 땅을 파내어 바위를 굴려 꿩을 치어 죽였다. 그러자 꿩은 죽어서 활을 쏘는 사냥꾼이 되어 멧돼지를 죽이려 하였던 것이다.

천태대사는 이 같은 인연을 사냥꾼에 들려준 후 만일 그대가 활로 멧돼지를 쏘아죽이면 그 멧돼지가 또 다시 원한을 품고 다시 태어나 무서운 보복을 하게 될 것이니, 지금 사람의 몸을 받고 태어났을 때 쾌히 활을 던져버리고 악의 인연의 굴레를 벗어버리라고 권했다. 사냥꾼은 찬태대사로부터 삼세인과의 가르침을 듣고 크게 회심하여 그 자리에서 활을 꺾고 스님이 되어 도를 닦았다. 

천태대사와 얽힌 이 이야기는 원한이 원한을 낳고, 원한은 원한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통한다.

이 ‘오비이락’ 법문이 지난 3월 10일 봉행된 한 조촐한 위령재에서 설해졌다. 군포교에 앞장서고 있는 박호석 법사가 실미도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고양시에 소재한 한 부대 법당에서 행한 법문이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이날의 법문은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을 명법문이었다.

“오비이락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비이락은 7언으로 되어 있는 구절 중에 앞의 네 글자만 말한 것입니다. 그 말만 가지고는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원래는 ‘오비이락 파사두(烏飛梨落 破巳頭)’입니다. 까마귀가 배나무에 앉았다 일어서자 배가 떨어지고 떨어진 배에 나무 아래 둥지를 틀고 있던 뱀의 머리가 부셔졌다는 뜻입니다. 까마귀는 뱀을 죽일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뱀은 죽이게 된 것이지요.”

박호석 법사는 ‘오비이락’ 법문을 특유의 잔잔한 목청으로 들려주었다. 어떤 과장도, 기교도 없는 진솔한 설법이었지만, 유족들을 감동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유족들은 법문을 들으며 가슴에 맺힌 회한의 일단을 풀어내는 듯 보였다. 억울한 희생자를 위해 정성을 다해 위령재를 집전해주고 풀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원한의 고리를 풀어주는 박 법사에 대한 감사의 합장을 올리기도 했다. 

“원한은 원한에 의해 풀어지지 않으며, 오직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는 박 법사의 법문에 비통했던 유족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지고 있었다.

영화 ‘실미도’로 인해 세상에 그 진상이 알려진 실미도 사건. 육군 제3군수지원사령부 산하 11보급대대에서 봉행된 이날의 위령재는 이 사건 희생자 4인에 대한 위령재였다.

위령재가 봉행된 3월 10일은 실미도 사건 당시 현장에서 자폭한 20명 외에 당시 버스에서 내려 붙잡힌 후 사형언도를 받은 4명의 사형이 집행된 날(기일)이기도 했다. 

이날 위령재에는 희생자 가족들 7~8명이 참석했다. 4가족 가운데 3가족의 유족이 참석했다. 이미 두 차례 위령재를 지낸 터라 일부 가족은 박호석 법사에게 반가운 눈인사를 건넸다.

위령재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 가족은 슬픔을 찾지 못해 흐느꼈고 영단을 향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가족을 잃은, 더구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슬픔은 조금도 줄지 않은 듯했다.

위령재 말미에 있은 박호석 법사의 ‘오비이락(烏飛梨落)’ 법문이 없었다면 이날의 위령재는 유족들에게 아픈 기억만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의식에 머물렀을 것이다. 법문의 위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왜 모든 불공의식은 반드시 법문으로 마무리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불사였다.

위령재를 지낸 호국안국사가 소재한 11보급대대에는 서울 서북지역에서 복무 중 사망한 장병의 유해를 임시 안치하는 ‘국군 제7지구 봉안소’가 소재해 있다. 그러니까 이 부대는 군 복무 중에 사망한 장병의 유해를 화장하여 이곳에 임시로 안치한 뒤,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군 복무 중에 사망한 장병의 유해는 국립묘지에 안장하도록 제도가 마련됐지만, 이 부대 봉안소에는 이 제도가 마련되기 전에 자살이나 의문사 등으로 유명을 달리해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하고, 가족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인수를 거부해 갈 곳이 없는 유해들이 기약 없이 남아 있다. 그런 유해가 현재 1백여 기 안팎에 이른다.

그런데 봉안소 언덕아래 작은 켄테이너에 창고에는 10여 년이 넘게 안장하지 못하는 20구의 또 다른 유해가 보관돼 있다. 바로 영화 ‘실미도’로 널리 알려졌던 북파부대원들의 유해다.

1968년에 ‘김신조 사건’, 또는 ‘1.21 사태’로 알려진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던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보복하기 위해 당시 중앙정보부의 주도로 수감 중인 죄수들과 일부 시민들을 꾀어 소위 실미도 부대를 창설했다. 군인 신분이 아니었던 이들이 인천 앞 바다의 작은 무인도인 실미도에서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고 북한 침투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남북이 화해하는 상황으로 정세가 바뀌자 그들은 더 이상 불필요한 존재로 방치되었다. 그러자 혹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24명의 대원들이 당국에 대한 극도의 배신감에 훈련지에서 기간병을 살해하고 인천으로 상륙했다. 그리고 청와대로 진입하려고 시내버스를 탈취하여 서울 영등포 부근에서 군경과 대치하다 더 이상 거사가 불가능하자 대원 20명은 현장에서 자폭하고, 남은 4명은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이것이 1971년 8월23일에 있었던 실미도 사건의 전말이다.

당시 폭도로 발표됐던 대원들의 시신은 경기도 일대의 공동묘지에 나누어 묻혔고, 이어서 우리의 기억에서도 잊혀졌다. 그런데 소설 <실미도>가 영화로 제작되어 크게 흥행한 것을 계기로, 2005년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폭도인줄로만 알았던 이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당한 경위를 다시 조사하면서 공동묘지에 가매장되었던 유해도 발굴하여 국군봉안소가 있는 이 부대에 보관하게 된 것이다.

지난 2007년, 제1군단사령부 군종참모(혜산 박동진 법사)의 요청으로 박호석 법사(민간성직자)가 이 부대에서 처음 법회를 시작했을 때에는 봉안소 옆에 석가모니불을 모신 관음사라는 15평 남짓한 허름한 법당이 있었다. 봉안소에 안치된 사망 장병의 가족들이 마음을 달래던 기도처였는데, 법당이 너무 비좁고 낡아 이곳에서 일요일에 종교활동을 하는 불자장병들을 모두 수용할 수가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박호석 법사는 당시 부대장과 상의하여 70여 평 규모의 법당인 극락전을 새로 짓고, 주불도 아미타불로 다시 모셔 안국사(安國寺)라는 이름으로 개원했다.

그리고 불단 옆에 영단을 설치하여 아직 편히 잠들지 못한 실미도사건 희생자들과 봉안소에 안치된 복무 중 사망 장병들의 위패를 모셔놓고 틈틈이 명일시식도 하고, 6월 호국보훈의 달에는 위령제(천도재)를 봉행하고 있다. 그리고 2013년부터는 사건당시 현장에서 체포되어 사형되었던 4명의 희생자를 위한 별도의 시식(施食)을 국방부의 요청으로 따로 봉행하고 있다. 이들 4명은 당시 사형이 집행되고 나서 시신이 어디에 묻혀있는 지도 알지 못하는 희생자들이다.

국가의 부름으로 장성한 자식을 나라에 맡겼는데, 경위가 어찌되었든 싸늘한 주검으로 되돌아온 자식을 맞아야 하는 부모와 가족들의 비통함은 당해보지 않고서는 참으로 혜량하기 어려운 일이다. 임무를 완수하면 팔자고쳐준다는 국가기관의 말을 믿고 사선을 넘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가 분노로 자폭한 실미도사건 희생자들의 원한이 얼마나 클지도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게다가 유해조차 찾을 수 없는 4명의 가족들의 참담한 마음을 또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다행히 앞으로는 복무 중에 사망한 장병은 사인(死因)이 무엇이던 가능한 모두 국립묘지에 안장하기로 국가가 법을 고쳐 앞으로는 영면하지 못하고 봉안소를 떠도는 원혼들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분이 군인이 아니라서 아직까지 영면하지 못하고 컨테이너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20구의 실미도 희생자 유해들은, 또 유해조차 찾을 수 없는 4명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군 포교를 위해 인연이 된 부대가 실미도 희생자들의 유해가 봉안된 부대라는 기묘한 인연으로 박호석 법사는 젊은 장병들을 위한 일요일 법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슬픔과 분노, 그리고 원한이 가득 찬 영가들의 마음을 풀어 주고,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며, 또 그 유족들의 얘기를 듣고 위로하는 역할까지도 맡고 있다. 호국안국사의 군법당 법회를 책임진 민간인 성직자에게 참으로 별난 소임이 주어진 것이다.

박호석 법사는 힘겹기는 하지만 이 일을 군포교 일선 현장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값진 수행의 또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 법사는 유해가 안치돼 있는 실미도 사건 희생자들의 위령재를 8년째 봉행하고 있고, 그리고 유해조차 찾지 못한 4명의 희생자 위령재는 지난 3월 10일 3번째로 집전했다.

“이들 원혼들이 편히 쉬어야 저의 별난 소임도 내려놓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도 돌보지 않는 영가들을 위로하고, 그 유족들의 가슴에 맺힌 원한까지 풀어주고 있는 박호석 법사. 암 투병 중인 부인을 간호하는 최악의 가정환경 속에서도 틈을 내어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을 찾아 이들을 위로하고 두려움을 덜어주는 박 법사가 불현 듯 지장보살의 화현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