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만해를 3.1운동을 주도한 항일독립투사로, 민족대표 33인으로, 위대한 민족시인으로 기억한다. 이에 비해 스님으로서의 만해에 대한 불교계의 평가는 인색하기만 했다. 2002년 시조시인 오현 스님이 설립한 만해사상실천선양회에서 만해대상을 시상하면서부터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해방 후 한국불교계에서 『불교유신론』에 기록된 대처승 제도 옹호론은 만해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반일과 반공이 국시인 이승만 정권에서 만해의 불교개혁론은 친일의 혐의를 받아야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비구-대처 갈등이 격해지고 마침내 비구 측이 승리하면서 결국 한국 불교사에서 만해의 족적은 일정부분 묻어두어야 했다. 사람들에게 ‘선사’나 ‘스님’보다는 ‘선생’으로 불리는 일이 더 많았다.

동명대 불교문화콘텐츠학과 박재현 교수(사진)가 단행본 『만해, 그날들』(푸른역사)을 통해 이렇게 잊혀진 ‘선사’ 만해를 다시 불러냈다. 처음엔 평전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모든 사실은 진술되는 순간 선택되고, 선택하는 행위에는 이미 평이 내재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선택하면서 평하고, 선택된 것을 다시 평하는 것이 내게는 동어반복이거나 중언부언처럼 보였다.”(351쪽, 후기)
 
그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과정의 정치사회적 격동기의 지층들을 압축적으로 그려냈다. 러일전쟁과 청일전쟁 당시 조선의 내부사정, 한일병합 전후의 속사정,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 사찰령, 만해 피격사건, 동학운동, 취처논쟁, 3.1운동 전후의 사정 등을 만해의 눈을 통해 박진감 있게 묘사했다. 조선왕조실록, 국가기록원, 독립기념관 등에 소장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공판기록 등 관련 자료들도 압축적으로 녹여냈다.

평을 포기한 그는 만해가 살던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 만해의 눈과 귀로 서술해나갔다. 단순히 자료를 제시하고 평을 하는 기존의 딱딱한 평전류와는 달리 한사람의 생애가 담긴 전기소설을 읽는 것 같은 재미를 제공한다.

이같은 글쓰기 형식을 취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겸손하게 말한다. “나는 평을 감당해낼 만치 담대하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누군가의 삶 속으로 깊숙이 자맥질해 들어가, 그의 눈과 귀로 세상을 훑어보거나 나눠보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난 다음에 나는 비로소 편안해졌다.”(352쪽, 후기)

박 교수는 간화선을 주제로 박사학위논문을 쓴 연구자다. 강의, 매체 기고 등을 통해 난해한 선의 문맥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고 공감하는 작업을 오랫동안 지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