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 1377)>에 쓰인 금속활자보다 최소 138년 앞섰다는 주장이 있어 학계에 논란을 빚었던 이른바 <증도가자(證道歌字)>의 진위를 밝히는 연구결과가 공개됐다.

경북대 산학협력단(연구책임자 남권희 교수)는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제출한 ‘증도가자 기초학술조사연구’ 보고서에서 “<증도가자> 109개 활자에서 추출한 먹의 방사성연대 측정 결과 15개 활자가 1033년에서 1155년 사이 만들어진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의뢰로 경북대 산학협력단이 연구 분석한 이 보고서가 문화재위원회의 문화재지정을 위한 추가 조사 과정에서 사실로 판명될 경우, 세계사를 바꿔야 하는 획기적인 발견이 될 것이 분명하다.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월 8일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실에서 발주한 ‘증도가자 기초학술조사’(작년 6월2일 발주) 연구용역 결과 경북대 산학협력단은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증도가자가 현존하는 세계최고 금속활자라는 결론을 내린 보고서를 제출해왔다”고 밝혔다.

경북대 산학협력단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한 주된 내용 중 하나는 증도가자에 묻은 먹에 대한 탄소연대 측정치이다. 연구용역보고서에서는 국립지질자원연구원 등이 증도가자라고 주장된 활자 109개 중 기존에 확인한 10점 외에 이번에 11점에서 채취한 먹을 탄소연대 측정한 결과 서기 1033년에서 1155년 사이에 만든 먹임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먹이 이 무렵 것이므로 그것이 묻은 증도가자 역시 제작 연대를 그 무렵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산학협력단은 각 분야 전문가 32명이 참여해 지난해 집중 점검을 벌인 끝에 증도가자가 진품임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탄소연대 측정 외에도 산학협력단은 활자 서체 분석과 형태분류를 시도하고, 금속성분을 분석했다. 그 결과 증도가자라고 주장한 109개 활자 중 그것이 확실한 것으로 62점을 추리는 한편, 나머지 47점은 고려시대 주조활자임을 확인했다고 연구용역 보고서는 지적했다. 109점에 대해서는 개별 3D 촬영도 진행했다.

하지만 이런 연구용역보고서 결과에도 여전히 증도가자 진위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용역 보고서를 제출한 경북대 산학협력단 연구책임자인 남권희 교수가 증도가자 발견자이면서 그것이 진품임을 맨 먼저 주장한 연구자라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연구용역 보고서가 <증도가자> (진위) 논란을 곧바로 종식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하지만 소위 <증도가자>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진행한 점이 의미가 있으며, 이를 토대로 하는 문화재 지정 절차 등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경북대 산학협력단은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로부터 용역을 받아 <증도가자>에 대한 연구 분석을 진행해 왔다.

<증도가자>는 고려가 1101년부터 국자감에서 간행한 서적에 사용된 금속활자로 알려져 있다. 고려는 1232년 강화 천도 후 더욱 많은 서적을 간행했다. 국가경영 매뉴얼인 <상정예문>(1234), 당 현각 스님의 가르침을 담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1239),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1251) 등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의 활자로 유명한 <흥덕사자>는 1270년 개경으로 환도한 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사용됐다.

강순형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문화재위원회에서 다시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모른 상태에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만일 문화재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진품이 확인되어 국가문화재로 지정된다면 그야말로 세계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해설] 학계 논란 거리, 연구결과에 주목

경북대 산학협력단의 이번 연구의 핵심적인 결과는 먹의 시료에서 채취한 먹을 이용해 얻은 결과이기 때문에 활자들의 제작연대를 직접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먹의 재료가 된 유기물, 즉 나무의 생존이 멈춘 시기를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연대를 추정한 간접적인 결과에 해당된다.

먹 제작에 사용된 부분이 나무의 어느 부위인가에 따라 다소 연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 즉 나무 내부 연륜(나이테)의 탄소연대는 나무의 고사 시기와 관계없이 그 연륜이 생성된 시기를 나타낸다는 점도 논란의 한 요소가 된다.

먹의 시료에서 채취한 유기물에 대한 탄소연대 측정의 결과에 대해 학계에서는 고려시대 먹을 다른 데서 구해서 금속활자에 바른다면 그 먹의 제작 연대가 고려시대로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이 이전에도 나온 바 있다. 이는 이번 연대 측정이 직접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데서 오는 한계다.  물론 남권희 경북대 교수가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시대 먹은 한 점뿐인 것으로 안다면서 고려시대 먹을 다른데서 구할 가능성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문제제기도 가능하다.

그러나 먹물의 방사성연대 측정결과의 가치를 지나치게 평가절하하는 것은 문제라는 견해도 점차 제기된다. 또한 처음 증도가자가 발견되었을 때도, 활자의 출처, 주조방법, 글자체 등 기술사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이번 연구조사 결과 상당부분 불식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점도 평가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2010년 최초 발표 당시부터 학계의 논란이 있어왔던 <증도가자>. 이 <증도가자>가 발견되기 전 고려 금속활자는 개성의 개인 무덤에서 출토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복’자와 개성 만월대 신봉문에서 발굴해 개성역사박물관이 보관 중인 ‘전’자 2개 뿐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2010년 9월 2일 서지학자인 남권희 경북대 교수가 “서울 다보성미술관이 소장한 고활자 12점이 번각본인 <증도가> 속의 글자와 비슷하다”며 그 존재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후 다보성미술관(관장 김종춘)의 소장활자 100여 점을 추가로 공개하고 문화재청에 문화재 지정을 신청했으나, 출처 및 소장경로, 진위 여부 등을 두고 논란이 일며 지정이 연기됐다. 이에 따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경북대 산학협력단에 연구용역을 의뢰하게 된 것이다.

경북대 산학협력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금속활자로 찍어낸 책을 목판본으로 발간한 서책인 보물 758호 <증도가>와 서체가 비슷하며, 활자의 금속성분을 X-선 형광 분석한 결과, 활자 3개를 제외하고는 성분 비율도 유사하다. 또한 부식된 정도도 일정한 것으로 나타나 같은 연대의 것으로 판별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용역을 진행한 경북대 산학협력단 연구책임자가 <증도가자>를 최초 공개하고 진품임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남권희 교수란 점에서 보고서 신뢰를 의심하는 일각의 목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증도가자>로 바로 찍어낸 활자본은 남아있지 않다는 점도 남아 있다. 금속활자를 찍어낸 책자의 뒷면으로 목각 후 다시 종이에 인쇄한 ‘번각본’(飜刻本)으로 <남명천화상송증도가>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이 발견됐을 뿐이다. 국가경영지침인 <상정예문>은 <동국이상국집>에 기록만이 남아있는 상태다. 1239년 강화에서 발간한 <증도가>는 ‘보물 제758호’로 현재 삼성출판박물관이 보관 중이다.

최고 금속활자로 <증도가자>를 인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제시되었는데도 지나치게 가혹한 잣대를 드러대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문회재위원회의 최종 입장에 대해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증도가자> 관련 주요 일지

2007년 2월 청주고인쇄박물관, 금속활자 존재 확인
2007년 11월~2008년 2월 청주고인쇄박물관, 금속활자 분석조사
2010년 9월 다보성미술관(김종춘) ‘증도가자’ 언론공개
2010년 12월 KBS역사스페셜 방영
2011년 6월 ‘고려시대 금속활자 증도가자 학술발표회’ 개최
2011년 9월 문화재청 국정감사 중 증도가자 문제제기
2011년 10월 증도가자 101점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신청 접수
 국립문화재연구소 주관 전문가 회의서 진품가능성 높으며 해외유출 막기위한 보존관리 요청
2012년 10월 증도가자 전문가 자문회의서 출처 및 내력 소명 미흡한 점 들어 진위판별 요청
2013년 1월 증도가자 실견조사, 학계 논의 진행 결정
2013년 2월 소유자 측 민원제기
2013년 9월 국립문화재연구소 종합학술조사 협의
2013년 9월 소유자 측 지정 재요청
2013년 10월 증도가자 전문가 자문회의서 종합조사 필요성 제기
2014년 4월 경북대 산학협력단 기초연구조사 발주
2014년 11월 경북대 산학협력단 <증도가자> 109개 중 62개 진품 검증 보고서 제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