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서는 이 풍진 세상을 고해(苦海)라 부른다. 이 풍진 세상, 즉 사바세계는 근심도 많고 어려움도 많기 때문이다. 바람 잘 날 없으니 파도 또한 높고, 난파당한 사람들은 물결 따라 부침(浮沈)한다. 욕심으로 오염된 세상은 예토(穢土)라고 부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깨끗한 나라 정토(淨土)에 나기를 희망한다. 

피안(彼岸)의 땅 극락은 서쪽으로 십만 억 국토를 지나서 있다고 한다. 아미타불이 계신 그 나라는 극락세계, 서방정토, 안락국, 안양(安養)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그곳은 이름처럼 편안한 곳이며, 어떤 괴로움도 없고 오직 즐거움만 있는 곳이다.

경전에서는 극락세계를 보배로 된 난간이 있고, 칠보로 된 연못이 있으며, 수많은 연꽃이 피어 있는 곳이라고 표현한다. 그 뿐이랴.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과 새들의 노래가 있는 곳, 햇빛 아늑하고 바람도 시원한, 그런 멋진 나라가 서쪽 저 넘어 아득한 곳에 있다고 했다.

이런 세계가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당연히 그 멋진 나라에 가기를 원했다. 원왕생(願往生)은 바로 서방정토로 가서 태어남(왕생)을 말한다.

달아 이제 서방(西方)까지 가셔서
무량수불전(無量壽佛前)에 일러다가 사뢰소서.
다짐 깊으신 존전(尊前)을 우러러 두 손을 모아,
원왕생(願往生) 원왕생 그리워하는 사람 있다고 아뢰소서.
아아! 이 몸 남겨두고 사십팔대원(四十八大願) 이루실까.

신라의 고승 광덕(廣德)이 불렀던 향가 원왕생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문무왕(661-680) 때의 광덕은 분황사 서쪽 마을에 은거하여 신 만드는 것으로 업을 삼고 처자를 데리고 살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수행했다. 밤마다 단정히 앉아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칭념(稱念)하거나, 16관(觀)을 하면서. 그리고 언제나 서방정토에 왕생할 것을 발원하며 노래했다. 어느 날 광덕은 서방정토로 왕생했다.

8세기 중엽 경덕왕(742-765) 때의 일이다. 양산의 포천산(布川山)에는 사람이 깎아 만든 것 같은 기이한 바위굴이 있었다. 그 굴에 사는 다섯 명의 비구가 수십 년 동안 아미타불을 염송(念誦)하며 극락세계로의 왕생하기를 원했다. 어느 날 성중(聖衆)이 서쪽으로부터 와서 그들을 맞이했다. 그들은 각기 연화대(蓮花臺)에 앉아 하늘에 올라 서방으로 떠나갔다. 가다가 통도사 문밖에 이르러서 얼마 동안 머물렀다. 하늘의 음악 소리에 통도사 승려들이 나와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다섯 비구는 무상(無常)과 고(苦)와 공(空)의 이치를 설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리고 세상은 얽히고설킨 거대한 그물,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연기. 굳이 나라고 내 세울 것은 없으니 공이다. 무상과 공을 생각하지 않으면 고통이 따를 것이다.”

설법을 끝낸 후 그들은 유해를 벗어버리고 큰 광명을 내쏘면서 서쪽으로 가버렸다. 미련 없이 육신을 벗어던지고 크고 밝은 빛을 발하면서 서방 극락세계로 갔다.

역시 <삼국유사>에 나오는 여종 욱면(郁面)의 염불서승(念佛西昇) 이야기다. 지성으로 염불하던 욱면이 서쪽 하늘로 날아간 이야기다.

미타사(彌陀寺)에 만일회(萬日會)가 개설된 것은 대개 9세기 초, 서방정토로의 왕생을 발원하며 만일을 기약하고 염불을 하는 모임이었다. 귀진(貴珍) 등 도속(道俗) 수십 인이 참여하는 결사(結社)였다. 귀진의 집에는 욱면이라는 계집종이 있었는데, 그는 주인을 따라 절로 가면 마당에 서서 염불했다. 주인은 그 꼴이 싫었다. 그래서 곡식 두 섬을 하루 저녁에 다 찧게 했지만, 종은 초저녁에 다 끝내고는 절로 달려가 염불했다. 그의 염불은 간절했다. 마당 좌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뚫어 노끈으로 꿰어 말뚝 위에 매고 합장하고 염불할 정도로. 공중에 하늘의 외침이 있기를, “욱면 낭자는 법당에 들어가서 염불하라.” 절의 대중이 그를 법당에서 예법에 따라 정진하도록 했다.

얼마 있지 않아 서쪽으로부터 천악(天樂)이 들려왔다. 욱면은 몸을 솟구쳐 법당의 대들보를 뚫고 날아갔다. 서쪽 교외에 이르자 육신을 버리고 진신(眞身)으로 변해 연화대(蓮花臺)에 앉아 큰 광명(光明)을 내쏘면서 천천히 서쪽을 향해 날아갔다. 하늘의 음악은 그치지 않았다.

서방정토로의 왕생은 신라 사람들의 꿈이었다. 아니 오늘날까지도 그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에도 염불만일 결사를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광덕과 욱면비가 그러했듯이 이들은 무거운 육신 벗어던지고 연화대좌에 올라 앉아 하늘의 음악 들으며 서쪽을 향해 날아갈 수 있기를 발원한다.

원왕생의 간절한 발원은 조선 최고의 화가 단원의 그림 <염불서승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그림만으로도 억불숭유의 시기에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민초들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엄불서승도>(삼베바탕에 옅은 채색. 세로 20.8㎝, 가로 28.7㎝)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이다. 화면 왼편 상단에 해행체(楷行體)로 쓴 ‘檀老(단로)’라는 관지(款識)가 있고, 그 밑으로 그의 자인 ‘士能(사능)’을 새긴 주문방인(朱文方印)과 그의 호 ‘檀園(단원)’을 새긴 백문방인(白文方印)을 연이어 찍었다.

구름 위에 피어난 연꽃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선승이 염불왕생을 염원하고 있다. 부글부글 끓는 듯한 구름과 연꽃, 그 속에서 피어나 열매를 맺은 듯한 스님의 뒷모습, 그리고 담청으로 달빛으로부터 차분하게 우린 배경이 미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연화대좌 속에서도 두광(頭光)처럼 빛나는 달빛 속에 스님의 뒷모습에서는 초탈함이 엿보이고, 달빛이 반사되어 비치는 장삼에서는 달밤의 정치마저 느낄 수 있다. 김홍도는 50대 후반 이후 석화(釋畫)를 즐겨 그렸는데, 그 가운데 높은 격조를 갖춘 명품이라 하겠다.

오늘날에도 이 ‘염불서승’의 이적은 이어진다. 지난 1월 26일 입적에 든 송찬우 교수의 입적 직전의 모습은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감동을 자아낸다. 고인의 저술을 출판한 김성우 비움과소통출판사 대표가 송 교수의 부인(사모님)에게 들어 전하는 송찬우 교수의 마지막 모습은 이렇다.

입적 50분 전, 위암이라는 지병으로 고통을 감내하며 누워있던 송 교수가 부인에게 자신을 일으켜달라고 손짓으로 청했다. 부인이 송 교수를 일으켜 앉히니, 송 교수는 평소처럼 가부좌를 틀고는 신음처럼 되뇌었다.

“저를 위하여..., 저를 위하여...(아미타부처님께서 오셨군요).”

송 교수는 이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을 끊어질 듯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시며 아주 편안하게 입적에 들었다.

송찬우 거사의 염불좌탈 입적 순간을 전해들으면서, 김성우 대표는 “말법시대에 염불수행을 홍포하리라”는 서원을 더욱 크게 세우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송 거사는 일찍이 출가해서 탄허 큰스님으로부터 교(敎)를 배우고, 성수 큰스님으로 부터 선(禪)을 공부했다. 입전수수한 이후 중앙승가대학 교수를 역임하기까지 무수한 경전을 번역했고, 선과 유식을 비롯한 가장 난해한 경전과 어록들을 강의하며 그 명성을 떨쳤다.

평생 검소하고 소탈하게 오로지 불법(佛法)의 대의를 선양하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고, 말년에 위암으로 투병하며 염불수행에 매진했다. 송 거사는 이생의 인연을 접는 마지막 순간에 오탁악세에 보기 드물게 아미타부처님의 영접을 받는 염불좌탈의 입적을 보인 것이다.

입적 순간 송 거사의 앞에 나타난 아미타불의 모습은 우리가 고려불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미타내영도’의 모습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승의 인연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 일심으로 염불삼매에 들어 아미타부처님의 영접을 받고 ‘염불서승’의 모습을 보여준 고 송찬우 거사. 그의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마무리는 오직 구복과 탐욕에 휩싸여 정법 공부와 수행을 외면하는 적지 않은 사부대중에게 큰 울림의 사자후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