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 비구로 태어나겠다는 노스님 발언에 충격
‘여성은 백 년을 해도 안 되는 것일까?’ 깊은 의문 일어

1970년대 청도 운문사 주지 일진 스님(사진)이 용인 화운사에서 행자생활을 할 때였다. 어느 날 항상 염주를 돌리며 염불하는 노스님께 “왜 그렇게 염불을 열심히 하세요”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노스님은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 비구가 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염불을 한다”는 것이었다. 스님은 어린 마음에 ‘여자는 안 되나? 비구가 되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 도서관을 뒤지기 시작했다. ‘정말 여성은 불가능한 것인가?’ ‘부처님은 여성을 어떻게 보셨을까?’ ‘여성은 백 년을 해도 안 되는 것일까?’ 자료를 찾아 쓴 논문의 제목은 ‘여성은 불가(佛家)에서 열등한가’였다. <석림>지에 실린 이 논문은 ‘그렇지 않다’는 내용을 담아냈다. 그 때부터 스님은 여성이 설한 <승만경>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됐다. 여성불교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70년대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도록 일깨움을 준 그 비구 스님께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경전”

“승만경은 우리도 부처님과 똑같이 여래의 씨앗을 갖추고 있는 존재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여래장 사상, 일승 사상을 확실하게 드러낸 경전입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승만 부인의 10대 서원을 통해 부처로 살아갈 수 있는 실천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기회만 있으면 불자들과 이 경을 읽고 그 뜻을 참구해 가고 있다. 특히 여성불자들이 이 경을 수지독송하면서 실천한다면 우리사회의 밝은 미래를 위해 대단한 동력이 되리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개명천지가 된 현대에도 인도사회에는 사성계급의 잔재가 남아 있고 여성들 또한 심한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옛날에 여성이 성불하여 부처님 앞에서 부처님 대신 사자후를 설하고 부처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대단히 혁신적인 일입니다. 이 점만으로도 승만경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여성의 수행과 삶, 그리고 여성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승만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스님은 새로운 원을 세웠다.

‘승만경을 읽는 공덕으로 여성이 행복한 사회, 여성이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어지이다.’
‘여성이 행복한 대한민국, 더 나아가 이 지구 전체가 평화로워지이다.’

1985년 명성 스님의 첫 전강 제자로

1970년 겨울 어느 날 은사 재석 스님이 동대문버스터미널에서 운문사 명성 스님을 만났다. 데리고 나온 어린 사미니를 강사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명성 스님은 “강사는 본인이 스스로 되는 거예요!”라고 하며 똘망똘망한 사미니의 손을 잡고 운문사로 왔다. 그 어린 사미니가 바로 일진 스님이다.

스님은 1978년 화엄경반의 학인 신분으로 치문반 학인스님들에게 강의를 시작해 8년간 중강으로 강의했다. 그리고 1985년 지금 운문사 승가대학장인 흥륜 스님과 함께 명성 스님의 첫 전강 제자가 됐다. 당시 비구니 강원에서의 전강은 처음 일는 일로 비구니 강단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었다.

불교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스님은 1994년 일본으로 유학해 교토불교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강원은 물론 동국대와 각종 불교교양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교학가로서, 법사로서 성실하게 전법활동을 해왔다.

<승만경을 읽는 즐거움>(민족사, 사진)은 일진 스님이 지난해 불교TV에서 강의한 내용을 수정, 보완해 펴낸 것이다. 스님은 <승만경> 강의를  ‘승만경 산림’이라 부르자고 했다. 산림은 ‘최파인아산(摧破人我山) 장양공덕림(長養功德林)’에서 뒷 글자만 따온 말이다. '인아산'(자기를 최고라고 여기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꺾어 부수고 공덕의 숲을 기른다는 뜻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하는 이 순간 승만경 산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산림, 특히 여성 불자들인 주부들은 부엌 산림, 집안 산림, 차(茶) 산림 등 모두가 다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지금부터 하는 승만경 산림은 아주 독특한 산림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이익과 공덕이 되는 산림은 없습니다. 이제 이익과 공덕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승만경 산림을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