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봉은사(주지 원학 스님)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게 징발당한 후 창경궁 뜰에 방치되어온 고려시대 오층석탑을 봉은사로 이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성보 보존을 위해 발 벗고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봉은사는 10월 24일 오전 11시 30분 경내 법왕루에서 윤달 초하루 법회에 이어 ‘성보지킴이 발원 및 창경궁 소재 고려석탑 이운 기원법회’를 봉행했다. 법회에는 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과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혜일 스님을 비롯해 사부대중 200여 명이 참석했다.

창경궁 소재의 무연고 고려시대 오층석탑(사진)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9월 조선총독부가 ‘조선물산공진회’라는 행사에 전국 사찰의 석조물을 징발할 때 함께 옮겨졌다. 어느 사찰에서 징발됐는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고, 문화재청은 2013년 적정장소로의 이전 의견을 밝혔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이에 봉은사는 올 10월 봉은사가 적정장소를 제공해 성보의 책임관리 유지를 약속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은 이날 법회에서 “유교를 숭상하는 궁궐에 탑이 있는 것은 맞지 않다”며 “문화재청에 문의하자 일제강점기에 옮겨지긴 했는데 어느 절에서 왔는지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원학 스님은 “문화재청은 이 석탑이 봉은사에서 왔다는 근거를 가져오지 않으면 국립박물관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석탑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신앙이 살아 숨쉬는 가람”이라고 강조했다.

원학 스님은 “탑의 출처가 나오면 원 주인에게 돌려주면 되는 일이고, 그 동안에는 봉은사에서 성보를 수호하고 계승 발전하겠다는 지극한 마음을 담아 고려 오층석탑을 봉안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고 했다.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혜일 스님도 봉은사의 석탑 이운을 격려했다. 혜일 스님은 “최근 조계종이 도난당한 성보 48점을 되찾아 전시회를 열고 있다”며 “문화재 환수를 받았지만 참여하지 않은 스님들도 많다. 성보 환수에 관심이 없는 스님들은 돌려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침했다.

혜일 스님은 “처음에는 무연고 석탑을 왜 봉은사에서 가져간다고 하는지 의아했지만, 성보 환수는 성보를 지킬 수 있어야 하고 불자와 인연을 심어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주지 스님의 원력이 있어야 하는 일로 봉은사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며 “종단 문화부에서도 타종단의 동의를 구하는 등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봉은사 사부대중은 부처님 전에 고려석탑 이운을 발원했다. 이원표 봉은신도회 사무총장은 사부대중을 대표해 “이름 없이 남아있는 고려시대 오층석탑을 원래 있어야 하는 사찰로 이운되도록 지극한 마음으로 일심 발원한다”며 “봉은사 사부대중은 오늘 법회를 기화로 성보를 지키고 되찾고 역사를 바로잡는 대작불사를 시작하고자 발심한다”고 선언했다.

봉은사는 내년 부처님오신날 석탑을 이운하는 것을 목표로 불자들의 중지를 모으는 서명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혜일 스님이 격려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