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간의 겨울 안거가 끝났다. 화두타파에 골몰하던 납자들은 묵은 아쉬움을 털고 새로운 의심 한 줌 담긴 바랑을 지고 산문을 나선다. 불기2558(2014)년 동안거 해제를 맞아 만행을 떠나는 수행납자들의 뒤로 “견성하는 날이 해제”라는 일갈이 성성하다.

동안거 해제일을 하루 앞둔 2월 13일 조계종의 새로운 총림으로 지정된 쌍계총림을 찾았다. 방문객을 맞는 이는 소싯적 벼락같은 성정으로 ‘땡비 스님’이라 불리운 쌍계총림의 방장 고산 스님이다. 금방이라도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은 첫인상과는 달리 스님은 최근 폐병을 앓았다며 약한 소리(?)를 했다.

“대밭에서 일을 하다가 쓰려졌어요. 폐에 물이 찼다고. 나이가 많고 당뇨가 평소에 있었다가 신경질을 내면 그런 고장이 생기는가봐. 나이 60이 넘어가면 신경질 그런 것도 누그러져. 젊을 적에는 차가운 성질을 가져야 혼자 지탱해나가지 이 사람도 좋다 저 사람도 좋다 희희낙락하면 마구니가 눌어붙으니 조심해야 해”라고 말하는 스님에게서 무뚝뚝함 속에 곧은 심지와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네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쌍계총림 초대방장 고산 스님.

쌍계총림 금당선원은 육조 혜능 조사의 정상(머리)를 봉안했다는 금당을 중심으로 오른 쪽에 동방장이, 왼 쪽에 서방장이 배치됐다. 올해는 17명의 수좌가 방부를 들였다. 동방장에서는 하루 8시간 참선 정진을, 서방장에서는 24시간 쉼 없이 정진하는 것이 쌍계총림의 가풍이다. 특히 서방장은 누구든 그 방에서 잠을 자면 화엄신장이 발로 밟아 죽는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치열한 정진의 장이다.

“고산가풍이라고 해서 내가 만든 것은 불식촌음(不息寸陰)입니다. 잠깐 시간도 쉬지 않는 겁니다. 정진하는 사람은 24시간 정진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24시간 염불을 하고, 한 소식 떨어질 때까지 하라 이거야. 뭔가 빠져들어 그 일을 끝내놓고 잠을 자라 이거지. 특히 계행이 청정하고 선정이 맞아져야하고 지혜가 있는 계정혜 삼학으로써 모든 일을 촌음도 쉬지 말고 계속 하는 것, 그게 쌍계사만의 고산가풍입니다.”

위빠사나 등 남방불교 수행 열풍으로 ‘간화선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방장 스님의 간화선에 대한 확신은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 근기에 맞춰서는 간화선이 제일이여. 간화선 아니면 멍하니 멈춰놓고 무기공에 떨어져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세월만 보내요. 간화선은 무슨 화두를 하나, 뭐든지 의심되는 것 하나 꼬투리 잡아서 터득하는 것이 간화선이에요. 여기서도 간화선하는 데 불만 있는 스님은 한사람도 없어요. 가장 성불하는 첫길이다,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근기가 수승한 사람들은 간화선을 합니다.”

스님은 화두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설명했다. “화두는 딴 게 아니라 뭐든지 자기가 의심되는 것은 다 화두에요. 날이 밝으면 분별을 하겠는데 깜깜한 밤중에 도대체 이게 뭘까 하는 것, 화두를 타파하는 경계가 그래. 깜깜하다가 누가 불을 탁 켰다 하면 금방 알아맞히거든. 선지식 법문 한마디가 불을 켜는 것과 같아요.”

잠깐 시간도 쉬지 않고 정진하는 '불식촌음'이 쌍계사의 고산가풍이다.

그런 의미에서 납자들의 만행은 선지식과 법거량이 돼야 한다는 것이 고산 스님의 지론이다. 만행을 떠나는 납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당부할 것도 없고 본인들이 다 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행여나 몸과 마음이 느슨해져 수행자의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노파심 어린 당부를 한다.

“해제해서 선지식을 찾아다닐 때도 계정혜 삼학을 잊어선 안 돼요. 또 자유행동하고 설렁탕집에나 가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계속 그렇게 놀아난다면 수행자의 본분이 아니야. 좋은 걸 보려고도 말고 좋은 소리 들으려고도 하지 말고, 견성하는 날이 해제라는 생각으로 선지식을 찾아야 합니다.”

출가자가 감소할 뿐 아니라 고령화되는 실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고산 스님은 “밥이나 떡이나 자기 맘대로 배불리 먹고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시대를 만났는데 뭐 하러 절에 가겠어. 전부 들어올 이유가 없다 이거야. 출가 연령을 50세로 늘렸는데 요즘엔 환갑 때까지 늘리자고 한다”라며 어릴 적부터 장학금을 수여해 신학대학을 마치면 성직자가 되는 천주교 이야기를 결들였다. “불교는 아직 그렇지 않고 방치하고 연구하는 중인데, 언제까지 연구할지 몰라”라는 스님의 일침.

전계대화상이기도 한 고산 스님은 최근 불거진 승풍실추와 범계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스님은 “본래 집안에도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하는 내규가 있고, 내가 기자회견을 해서 무엇이 어떻다 어떻다 하면 다른 종도들이 나를 볼 적에 안살림을 바깥에 떠벌려 욕 얻어먹게 한다 한다고”라면서도 “옛날에 비하면 요즘은 많이 좋아진 셈이다. 해방전후만 해도 승풍이 문란한 점이 있었고 몇 년 전에도 도박사건이 일어나고 룸싸롱 사건이 일어났지만 일부 승려 몇 사람이 그런 것이지 전체적인 사람이 그런 건 아니”라고 말했다.

현대적인 청규마련에 대해서는 “시대 흐름에 따라서 수행자도 자꾸 변한다”며 개차법(開遮法)의 적용을 강조했다. “지금은 열반했지만 일타 스님하고 석암 스님, 자운 스님이랑 보살계를 설할 때 의논한 바가 있어요. 보살계를 설할 때 고기 못 먹고 못 배기는 사람, 술 잘 먹는 사람을 계를 받기는 받게 해야겠는데 어떻게 할까 의논을 하다가, 술을 마시긴 마시는데 한 잔까지는 좋다, 하면 보살계를 잘 받더라고. 근본 부처님 계율은 훼손하지도 못하고 고치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건 그대로 두고서 개차법을 쓰는 법밖에 없다 이거야.”



고산 스님과 쌍계사 주지 성조 스님이 경내 금당선원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불교 방장 대열에 이름을 올린 고산 스님에게 쌍계총림 운영 방향을 물었다. 스님은 “총림이 된지 오래 안 됐기 때문에 하나하나 갖추고 있는 중이고 염불원도 크게 짓고 있습니다. 쌍계사는 원래 범패의 본고장이고 차를 끓여 마시는 것, 참선도 옛날부터 잘해왔어요”라며 선원, 강원, 율원, 염불원 등 어느 것 하나도 소흘히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안거를 회향하는 해제, 그렇다면 수행의 회향은 어떠해야 할까. 고산 스님은 “하화중생은 딴 게 아니고 자기가 먼저 깨달아서 딴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가르치는 것은 봉사가 다른 봉사를 이끌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 내가 먼저 깨닫고 그담 다른 이를 깨닫게 하고 그 다음 각행원만으로 나가는 거거든. 자연히 보살도를 행하는 것이고 수행자의 근본 취지고 그래요.”

노장의 목소리 아직 여여하고 삼신산 녹차 새싹들 가만가만 움틀 준비 하니, 눈 푸른 납자들이 떠난 쌍계총림에 봄이 찾아들고 있는 것이다.

쌍계총림 금당선원에 안거를 난 17명의 눈 푸른 납자들은 만행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