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을 이룬 주봉의 하나인 세지봉 말기에 있는 망양대는 글자 그대로 만경창파를 이룬 푸른 동해바다의 경관을 바라보기 좋은 곳이다. 이 전망대에서 서남쪽 세지계를 따라 가면 육화암에 이르게 된다.

옛날에 육화암 부근에는 호가라고 하는 한 청년이 매향이라는 아리따운 아내와 함께 늙은 부모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호가는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했고 아내와는 애정이 아주 두터웠다. 게다가 힘이 세서 아무 일이나 척척 잘 해냈으며 노래도 몹시 좋아하고 잘 불렀다.

그를 ‘호가’라고 한 것도 바로 노래를 놓아하고 잘 부른다는 데서 온 이름이라고 한다.

호가는 매향과 함께 이 노래를 부르며 춘삼월에 그윽한 꽃향기를 마시면서 산나물을 뜯으러 세지봉 말기를 오르내렸다. 호가가 어찌도 노래를 잘 불렀던지 그곳에 사는 새, 짐승들도 그의 노래 소리만 들으면 넘실넘실 춤을 추었다.

그들 부부가 이처럼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사랑하는 아내 매향이 앓아눕게 되었다. 호가는 아내가 여러날째 잘 먹지 않고 누워있기에 무슨 음식이 먹고 싶으냐고 물으니 바닷물고기 삼치를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호가는 한달음으로 세지봉 말기에 뛰어올라가서 먼 동해바다를 바라보았으나 이렇다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삼치를 잡으려면 바다에 나가야 한다.)

이렇게 결심한 그는 집에 내려가서 부모님의 승낙을 받고 곧 세지봉을 넘어 장진나루로 찾아갔다. 포구에 이르러 어부들을 만나서 아내에 대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삼치를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는가를 물어보니 인정 깊은 눈길로 호가를 바라보던 한 어부가 “삼치란 고기는 방어와 함께 우리 동해바다에서 잡히는 고기들 중 제일 맛있는 고기여서 입맛 돋우는 데는 더 없이 좋은 것이요. 그렇지만 지금은 5월 달이어서 삼치는 잡히지 않고 다음 달에 가서야 잡히기 시작하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일을 어쩌면 좋으랴. 망설이던 호가는 한 달이 걸릴지언정 아내를 위해서라면 삼치를 꼭 잡아가지고 가야 한다고 다짐하였다.

그리하여 호가는 어부들의 도움을 받아 배를 만들고 노 젓는 방법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한 달이 얼른 지나 삼치가 잡히기 시작하는 6월이 되었다.

그가 바다에 배를 띄워 포구를 떠날 때는 바다 물결이 어찌도 잔잔한지 마치도 바다에 보드라운 비단필을 펴놓은 것 같았다. ‘이젠 삼치를 잡을 수 있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상쾌하였다. 때마침 배전에서 푸득푸득 고기 뛰는 소리가 났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배 밑에는 갖가지 고기들이 득실거렸다. 그렇지만 그가 잡으려는 삼치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호가는 배를 저어 먼 바다로 나갔는데 벌써 삼섬을 지나 알섬근방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태풍이 불면서 먹장 같은 구름이 바다위에 뒤덮이더니 그렇게도 잔잔하던 파도가 세찬 격랑을 일으켰다. 호가가 탄 배는 그야말로 만경창파위에 뜬 한 잎의 가랑잎과 같이 되었다. 얼마 후 배는 파손되고 거기에 탔던 호가 역시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남편이 겪는 이런 사연도 모르고 자리에 누워있던 매향은 시부모님의 극진한 간호를 받아 몸이 점차 회복되어갔다. 삼치를 구해오라고 바다로 아들을 떠나보낸 그의 시부모님들을 며느리의 병구완을 위해 금강산의 참나물, 둥굴레, 참취, 참나리, 참두릅, 백도라지, 고사리, 더덕, 고비, 곰취를 비롯하여 약초라는 것은 죄다 뜯어왔다. 이처럼 시부모님의 극진한 간호로 매향은 얼마 안 되어 병이 완쾌되었다.

이때에야 비로소 시부모님을 통하여 남편이 자기를 위해 삼치 잡으러 바다로 갔다는 것을 알게 된 매향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같이 세지봉 말기에 올라가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해가 지고 달이 뜬 뒤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나중에는 집에도 돌아오지 않고 그 험한 산정에서 동해바다만 바라보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씻고 씻을 뿐이었다.

매향의 애처로운 모습을 여러 날 눈여겨보고 있던 산중도사가 찾아와 그 사연을 묻는 것이었다. 매향은 도사에게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는 자기의 심정을 털어 놓았다.

매향의 말을 다 듣고난 도사는 “그렇다고 너무 상심마오. 머지않아 당신은 이곳에서 남편과 만나게 될 것이요.” 라고 말하고는 동해바다가로 사라졌다.

매향은 도사의 말이 의심도 나지만 한편 미덥기도 하여 그가 사라진 바닷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알섬주위에서 섬광이 번쩍 일어나더니 삽시에 안개 속에 잠겨 섬이 보이지 않았다. ‘저 알섬에 남편이 혹시 가있지 않는지.’ 이렇게 생각한 매향은 당장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바로 이럴 즈음에 바닷물 속에 잠긴 호가는 물고기들의 안내를 받아 바다왕국의 궁전인 용궁에 가 있었다. 으리으리한 궁궐 안에 호가가 들어서자 용왕은 그의 전후사연을 다 듣고 나서 “세상 사람들이 다 그대같이 자기 아내를 사랑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자기 아내에 대한 그대의 지극한 사랑은 반드시 세상 사람들의 모범으로 될 것이요. 지금 그대의 아내는 산봉우리에 올라 하루같이 그대가 돌아올 것을 기다리고 있소. 그대는 이제 곧 인간 세상에 다시 나가서 아내를 만나고 그와 함께 부모를 모시고 오래오래 행복을 누리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호가에게 큼직한 삼치 몇 마리를 잡아줄 것과 그를 육지까지 잘 모셔다줄 것을 거북이에게 명령하였다.

이리하여 호가는 거북이의 잔등에 올라타고 몇 천 길 물속을 헤가르며 나오게 되었는데 어느덧 잔잔한 물위에 두둥실 뜨게 되었다. 호가는 정신을 차려 사방을 살펴보니 배가 파손되기에 앞서 보았던 알섬이 분명하였다. 여기서 뭍까지 나가자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 호가는 부모님들이 계시고 미더운 아내가 기다리는 금강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해는 벌써 지고 섬에는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때 뜻하지 않던 금강산호랑이가 나타나서 자기 꼬리로 잔등을 툭툭 치며 올라타라는 것이었다. 그만 눈물이 날 지경으로 고마웠다.

호가는 자기를 알섬까지 태워다준 거북이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호랑이의 잔등에 올라앉았다. 호랑이는 바람을 일으키며 푸른 바다를 뛰어 넘고 숲속을 지나 이 바위, 저 바위를 나는 듯이 달려 순식간에 세지봉 말기에 이르렀다.

한편 매일같이 세지봉 말기에 올라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던 매향은 이날 밤도 남편을 기다리다 못해 몸이 지쳐서 그만 잠이 들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 하늘에 대고 소리높이 울부짖는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에 온 강산이 진동하더니 동해바다에서 둥근달이 불쑥 떠올라 대낮같이 밝았다. 그제서야 호가와 매향은 서로 얼굴을 알아보고 부둥켜안고 눈물을 흐리면서 못내 그립던 사연을 아야기 하였다.

이윽고 호가는 가지고 온 삼치로 회를 쳐 아내에게 주었다. 그것을 먹고 난 아내는 즉시에 원기가 회복되고 얼굴에 짙었던 병색도 완전히 가셔졌다. 아내를 본 호가는 자기의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깨닫고 마음이 매우 기뻤다.

이때부터 호가와 매향부부가 서로 상봉한 곳을 ‘망양대’ 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이 전설은 예로부터 부모를 존경하고 부부간에 화목하게 살아가는 우리 인민의 미풍양속을 금강산의 아름다운 자연경치와 결부시켜 꾸며낸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