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옛날 망망한 바다와 넓은 땅만이 있던 이 세상에 나라들이 처음으로 생겨났을 때의 일이다.
먼 남방의 어느 한 바다가 나라에 ‘타무’라고 불리는 왕이 살고 있었다. 그는 산천구경을 남달리 즐겼다.
어느 날 왕은 신하들을 불러놓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한 신하가 멀고 먼 나라 해동조선에 가면 금강산이라고 하는 천하제일 명승이 있다고 하자 타무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천하제일강산이 분명하다면 이 세상 한 끝에 있다 하더라도 기어이 찾아가 구경하는 것으로 내 평생소원을 이뤄볼까 하노라.”
이리하여 타무왕은 화려한 수레를 타고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실로 해동국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였다. 또한 그 노상에는 나라로 불리는 고장도 많았다. 그 가운데는 기암들이 총총 물속에 서 있어 바다경치를 자랑하는 나라도 있었고 웅장한 뫼부리(산봉우리)와 맑고 푸른 호수를 자랑하는 땅도 있었다.
타무왕 일행은 이런 나라, 저런 고장과 함께 수려한 강과 호수가 없고 그 대신 신비한 오아시스들이 있는 열대의 사막지대도 지나고 험한 산도 넘고 풍랑 사나운 바다도 건너야 했다.
이렇게 새로운 땅들과 바다를 지나고 돌아보며 여행길을 채촉하다 보니 춘삼월 이른 봄에 떠난 타무왕은 단풍이 한창 짙어가는 가을에야 조선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선왕의 안내를 받으며 금강산어귀에 이른 것은 연보라빛 안개가 채하봉에 내리고 영롱한 빛발들이 수시로 변하는 한낮이었다.
단풍든 봉우리들이 거대한 불덩이들 마냥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이글거리는 숲속에서 서늘한 바람이 신묘한 향기를 취하도록 실어오는 것을 느끼자 타무왕은 과연 명산은 명산이로구나 하고 생각하였는데 구룡동어귀에 이르러 굉장히 큰 봉황새가 우아한 날개를 펴고 하늘로 올라가기에 그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흰 꼬리의 한 끝은 개울가에 드리우고 몸은 하늘중천에 솟구쳤는데 이제라도 당장 뛰어가면 붙잡을 듯싶어 그는 신하를 불러 붙잡으라고 시켰다. 분부를 받은 신하가 달려가서 그 꼬리를 붙잡으려고 할 때였다. 일만 개의 불구슬이 무너져 내리며 얼굴이며 어깨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바람에 그 신하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제야 그는 몇 백자가 넘는 폭포에 와있음을 알았다. 신기한 비봉폭포를 타무왕이 넋 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폭포는 눈이 부시게 하얀 구름을 말아 올리는데 삽시간에 산도 폭포도 없어지고 산정에서 약초 캐는 노인들이 나타나 신선나라에서 온 손님마냥 구름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조선왕은 금강산에서는 한번 보고난 경치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타무왕은 왔던 길을 돌아보았는데 실로 그 말은 틀리지 않아 거기에는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경치가 펼쳐졌다. 현란한 진주보석으로 촘촘히 단장한 기암연봉들이 아직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장단에 맞추어 움씰움씰 춤을 추고 그 위에 청학, 백학이 실안개를 감고 노니는 것이었다.
이렇게 구룡연과 상팔담으로 해서 여러 곳을 다 돌고난 그는 마감으로 비로봉에 올랐다. 동서천리가 한눈에 안겨오고 그 주위에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풍치가 다 펼쳐진 것 같았다. 아득한 발밑으로 구름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는 순간 타무왕은 자기가 이때까지 구경한 것이 금강산의 한구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는 것마다 별천지의 절경이여서 눈에 이끌려 발은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서 여기까지 온 타무왕은 제일가는 명승이 이렇게 한데 집중된 것을 눈앞에 보니 이 세상의 자연경치는 너무나도 불공평하게 되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또한 어떻게 되어 비길 데없이 아름다운 금강산이 넓으나 넓은 이 세상의 한끝인 동방조선에 있게 되었는지 그 영문을 도저히 알 수 없어 조선왕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조선왕은 너그럽게 웃으며 산과 강을 나라마다 나누어주는 바다용왕에게 물어보라고 대답했다.
산천을 나누어줄 때 바다용왕의 불찰로 신선나라의 것과 헛갈린 것이 아닐까하고 고개를 기웃하던 타무왕은 여기도 다 같은 인간세상이라는 것을 알면서 이렇게 공평하지 못하게 했다면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리하여 타무왕은 바다용왕의 이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기위하여 수레와 배를 번갈아 타고 태평양의 깊은 바다를 향해 질풍같이 달렸다. 마침내 용궁 앞에 도착한 그는 산호 진주를 다듬어 우람하게 세운 열두 대문을 지나 용왕 앞에 이르렀다.
그가 찾아온 연고를 다 듣고 난 용왕은 흰 수염을 무릎까지 드리우고 천천히 용상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엄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고로 사람은 산천의 정기를 타고난다고 하지만 산천 또한 사람의 마음이 비껴 자기의 모양을 갖추느니라. 그래서 사람과 산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인데 해동국으로 말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티끌 하나 없기에 열길 깊은 곳의 모래알 하나까지 헤아릴 수 있는 맑은 물을 준 것이오, 하늘로 날아오르는 천태만상의 뫼 부리들은 그 땅 사람들의 무궁무진한 슬기가 어려 그런 것이니라. 뜨는 해의 빛이 있어 노을이 곱듯이 깍듯한 예의범절만이 맑은 아침과 일맥상통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지어다. 그러나 상심할 것 없다. 용궁의 창고에는 본래 여덟 개의 금강이 있었는데, 제일금강은 해동국에 주었거니와 나머지 일곱은 아직 그대로 있으니 어느 나라 사람이든 간에 마음들이 보석처럼 다듬어진 다음 찾아오면 기꺼이 내주겠노라.”
이렇게 말하여 용왕은 그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때로부터 세월이 흘러 뜨는 해와 지는 달이 수억만 번 거듭했고 땅위의 꽃과 잎도 수수천 번 피고 졌지만 금강산은 세월의 흐름, 계절의 변화에 관계없이 지금도 산 좋고 물 맑으며 인심이 착하고 예절바른 동방조선의 자랑스런 상징인양 우뚝 솟아 이 세상에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