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지식과 도반 그리고 스승

이와 같은 의구심을 풀고자 불교계에서는 공인된 수행의 선지식인 법사 한분을 찾아가 상담을 드렸다. 그분은 나의 수행과정을 다 들으시더니 일성이 “거사님 수행 잘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혜가 생겨났습니까?”였다. 그야 말로 다짜고짜 식이었다. 나의 대답 또한 간결했다.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그분의 대답 또한 간결했다. “그것을 보고 있는 의식을 깨뜨리십시요!”

이 세 마디가 내가 선지식과 마주앉아 주고받은 수행에 대한 면담의 처음이고 마지막이다. 학생처지의 불자이니 선정체험후의 지혜수행의 과정을 소상히 설명해 주셨더라면 내가 더 더디 갔을까? 대승(大乘)의 선사(禪師)님들 가르침이 ‘언하(言下)에 돈망생사(頓忘生死)’하고 무작방편(無作方便)이라지만 이건 나 같은 초급자에게는 너무 심한 화두였다.

꼭 6개월을 의식을 깨기 위한 수행을 피가 철철 흐르도록 했다. 스스로 얻은 바도 컸다. 그분의 답이 설령 무(無)라 해도 맞고 공(空)이라 해도 맞다. 질문이 명확하면 오는 답도 명확해야하거늘 정신세계의 질의응답은 이렇게 두루뭉술한 가보다. 하기는 듣는 자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선지식은 자기의 수행체험을 하여 답해야지 교리에 근거하여 이해하는 폭의 두루뭉술한 답은 묻는 자를 당황하게 할 뿐이다.

그 후로 나의 수행은 경전과 논서에 의해서만 눈이 밝아진 스승의 지도에 의해서 수행의 밭을 일구러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을 해보지 않고 교리상의 이해로만 수행을 밝히는 이들은 수행에 대한 테크닉(방편 혹은 방법)과 지도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분들은 진정한 수행자의 길을 모르는 이들이다. 관념론자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도과(道果)에 이르는데 도반과 스승의 몫을 다음과 같이 설하시지 않았는가.

아난존자가 한때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좋은 도반과 스승이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반(半)은 완성한 것 아닙니까?” 하고 묻자 부처님께서는 “아난아 그러말 말아라. 그것은 완성이니라. 거기에 여래와 같은 스승을 만나면 윤회의 바다도 벗어나게 되느니라.”고 하셨다.

이렇게도 좋은 도반과 좋은 스승은 중요한 것이다. 좋은 도반과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각자의 바라밀 공덕이 바탕(Back up)이 되어야 한다. 수행자체가 전생의 선근공덕(善根功德)이 없으면 안 된다고 대승에서는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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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목마름으로 매달린 수행의 테크닉

여기에서 테크닉이라 함은 방편(方便)을 말하는 것이다. 앞에서 얻어진 사마타 수행법인 염불, 다라니, 기도, 사경 등을 경험하고 선정에서 나름대로 지혜수행을 찾아가는 등 정말로 목마르게 헤맸던 처절한 구도의 과정 속에서 나는 중중무진한 중생들에게 그들의 근기에 맞는 수행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의상대사 법성게 중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의 뜻을 알게 되었다는 얘기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꽃은 수행이고, 꽃을 피워야 열반이라는 과일을 딸 수 있으며, 꽃 없이 열매를 맺는 건 유일하게 무화과(無花果)일 뿐이다. 나는 그것을 독각(獨覺)정도에 비유한다.

그 후 좋은 인연사로 교계 한 신문사에 문화사업부가 창설되어 나는 그 일을 도와주며 동시에 소위 한국불교의 수행에 대한 맥을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좋은 인연들로 좋은 선지식들을 만나가며 참구하고 실참(實參)을 했지만 저마다 각각(各各)이요, 법의 맥이 달라서 통일된 매뉴얼이 없어 목마른 갈증을 풀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으로 일고 있는 테라와다(Theravada) 불교의 교리(5부 니까야, 아비담마, 청정도론 등 주석서)와 수행법인 신수심법(身受心法)의 사념처(四念處) 수행의 적극적인 수행체제인 위빠사나(Vipassana)를 접하게 되어 심도 있게 빠져 들었다.

학교에서 배웠든 원시불교, 근본불교에서 배웠든 것과는 많은 괴리가 있음을 발견해가며 소위 소승(小乘)이라고 폄하받는 상좌부 불교권인 스리랑카나 미얀마(myanma)에 유학하신 스님들이나 법사들을 찾아다니며 참구했다. 그런데 그분들은 놀랍게도 열 분에게 물어도 똑같은 교리와 수행법을 지도해주셨다. 테크닉만 약간 다를 뿐 가르쳐 주는 내용은 반드시 주석서나 스승에 의해서 검증된 내용이지 자기 깜냥이 아니었다. 그래 믿음이 갔다.

전자(前者)는 도(道)라는 것을(깨달음의 다른말도 되겠다) 설정해놓고 현묘(玄妙)하게 허공에 매달려있는 것처럼 관념적인 얘기를 했지만, 후자(後者·위빠사나 스승들)는 그렇지 않았다. 일목요연 간단명료했다. 하긴 조사선(祖師禪)에도 어느 선사(禪師)의 말씀처럼 “불법(佛法)은 정말 명료하구나, 깨달음이라는 것이 세수할 때 코만지는 격이라”고 하셨듯이 부처님이 우리 중생에게 중뿔난 것을 가르쳐주시고 보여준 것이 있었는가. 부처님이야말로 있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신 분 아니신가.

즉, 부처님은 법(法)의 발명가(發明家)가 아니고 법을 재발견(再發見)하신 분인 것이다. 매일 수행력이 증진하고 얻어지는 과정이 확연하게 들어남에 드디어 목마른 자 옹달샘을 만난 격으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목마른 자에게는 물이 필요하지만 환경과 여건에 따라 그리고 각자의 성향에 따라 쥬스나 콜라, 사이다 등 다른 음료를 좋아하고 선택하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나도 내가 찾아서 선택한 이 물을 만나 실컷 마시고 있는 중이다. 이 갈증이 풀리는 날이 nibbana(열반)에 근접한 날일런 지. 그러나 그러한 바람도 탐욕의 소산으로 알고 크게 욕심낸다거나 수행이 더디다고 짜증내고 불만해 않으며 부설거사님 팔죽송(八竹頌)처럼 그러면 그런대로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며 열심히 공부할 뿐이다. 일어나는 번뇌망상을 잘라 낼 수 있는가, 억눌러 놓을 수 있는가, 밀려오는 잠의 유혹을 이겨 낼 수 있는가 열심히 수행을 할 뿐이다. 그런데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단번뇌(斷煩惱)라거나 수마의 조복이란 말은 없다.

번뇌망상이 손님으로 오면 ‘망상’이라고 알아차리면 믿지 못하겠끔 곧 사라진다. 그것은 마음은 한 순간에 한가지 일밖에 못하기 때문에 나중에 알아차림 하는 마음을 일어나게 하면 앞서 일어났든 괴로움이나 번뇌망상은 사라지게 된다. 마음의 본성품과 생멸법(生滅法)을 알았을 때의 법열(法說)이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일상(日常)이 되어버린 잠자기 전 와선(臥禪)에서도 길게는 두세 시간의 알아차림의 수행도 하지만 잠이 밀려올 때 잠과 싸우지 않고 ‘잠이 옴’하고 서너 번 알아차리면 꿈도 없는 숙면을 갖게 되는 등 나는 드디어 생활에 접목된 이 수행법으로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수행의 맛에 매료되고 탐닉되어 가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