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옆 국립민속박물관 입구에서 따끈하고 훈훈한 거리를 만났다. 이름 하여 ‘추억의 거리’다. 이 거리에 서면 금방이라도 동장군의 입김을 단숨에 녹여 주는 추억이 떠오른다.

연탄불 같은 온기가 피어오르던 그 ‘추억의 거리’는 그리운 유년시절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출발점이다. 추억의 거리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1960~1970년대 거리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일종의 야외전시장이다.

옛날 모습 그대로 사실감 있게 꾸며놓은 모습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반세기를 거슬러온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경복궁 옆 국립민속박물관 입구에는 1960-70년대 풍경을 재현해놓은 추억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추억의 거리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화개이발관의 모습. 양철지붕에 타일로 만든 벽, 담배가게까지 옛모습을 그대로 실감나게 재현해 놓았다.


맞다 맞다, 그땐 이랬다. 의자 팔걸이에 판자를 올려놓고 아이들을 그 자리에 앉히면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울고불고 그랬지.

추억의 거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인사를 해주는 곳이 화개이발관이다. 녹슨 양철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는 이발관은 70년대를 관통하고 자란 세대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회상에 젖을 만한 풍경이다. 화개이발관 안을 들여다보면, 그 순간 시간은 역행을 시작하고 어느새 더벅머리 아이 하나가 동그마니 의자에 걸터앉아 있다.

의자 팔걸이 위에 얹혀 진 판자 위에서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또 무엇에 그리도 심통이 났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짧게 깎이는 머리카락 때문에 서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기계충 걸린 머리가 창피해서 잔뜩 심통이 난 걸까. 또 아니면 머리카락이 ‘바리깡’에 쥐어뜯기는 고통 때문일까.

아이의 울음에는 아랑곳없이 이발사 아저씨는 묵묵히 바리깡을 움직이며 머리를 깎고 있다. 그 아이의 모습이 어릴적 동생의 모습 같기도 하고 내 모습 같기도 해 입가에는 자꾸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나지고 있다.

이곳 화개이발관은 52년간 운영을 해 온 최씨 할아버지의 실재 이발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내부에 있는 도구들도 모두 할아버지께서 사용하던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추억할 수 있게 이곳 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화개이발관 최씨 할아버지 덕분에 달콤한 추억 하나를 고스란히 기억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이다.

화개 이발관 앞에는 국밥집이 있다. 그 시절 아버지들이 국밥 한그릇과 탁주로 세월을 달래던 졍겨운 곳이었다.
 

국밥집의 내부 모습. 어찌나 옛날 그모습과 똑같은지. 탄성이 절로 터진다. 그리운 아버지의 술냄새가 물씬 나는 풍경이다. 

화개이발관 맞은편에는 국밥집이 있다. 입구에 세워져 있는 막걸리의 한 말들이 막걸리통을 싣고 있는 짐자전거가 반갑기 그지없다. 어린 시절, 밤이 늦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모셔오라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이런 집들을 돌다보면 그 중 한 곳에는 아버지가 계셨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엄마가 빨리 오시래요.”

그러면 얼근하게 취한 아버지는 대답대신 주인을 부르고 “배고프지. 국밥이나 한 그릇 먹 거라.” 하시며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시켜주시곤 했다.

어쩌면 친구들과의 이야기가 못내 아쉬워 국밥 한 그릇을 시켜 주고는 시간을 버셨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고기가 가득 들은 뜨끈한 국밥만큼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각인된 맛이 돼 있다. 술 취한 아버지와 추운 밤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올라치면 그땐 밤하늘에 어찌도 그리 별들이 많았던지…. 또 달빛은 어찌 그리도 밝았던지…. 지금은 탁해져 버린 눈빛만큼이나 하늘도 같이 탁해져버렸다.

“아버지. 십 원만…” 아버지에게 보채면 지갑도 없던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십 원짜리 종이돈을 꺼내 주시며 “니 엄마한텐 비밀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옛날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국밥집 앞에 서있노라니, 별 많고 달 밝던 그때 그 겨울밤이 몹시 그리워진다.

그시절 다방 이름중에는 '약속다방'이 참 많았다. 약속장소 다방 이외에 달리 마땅한 곳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닐 의자에 광목커버를 한 모습. 망사천으로 만든 커튼 등. 다방의 옛 모습들은 언제나 정겹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이런 옛날식 다방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 옆으로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이 나타나고 다방의 이름은 흔하디흔한 ‘약속다방]이다. 다방 입구에는 그 시절 다방 앞이면 흔히 볼 수 있던 빨간색 다이얼식 공중전화가 걸려있다. 모두가 반가운 물건들이고, 반가운 정경들이다. 추억의 거리답게 이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추억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아 정말 반가운 반화방이다. 어릴적 내가 다니던 학교 앞에도 저런 만화방이 있었다. 그 이름도 같은 '고바우 만화방'.


옛날 만화방의 모습은 대개 이랬다. 다만 둥근 의자보다는 길다랐게 된 나무의자가 더 흔했다.



약속다방 맞은편에는 만화방이 자리하고 있다. 그 이름도 구수한 ‘고바우만화방’이다. 당시 시사만화로 유명했던 김성환 화백의 대표작, ‘고바우영감’이 한참 인기였던 시절이라서 고바우란 이름을 건 만화방이나 서점이 많았다.

만화방 앞에 서 있자니 어디선가 ‘쫀드기’ 굽는 냄새. ‘달고나’와 ‘뽑기’ 끓는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다. 그 시절엔 만화방 앞에 으레 군것질 거리를 파는 아저씨와 아줌마가 있었다.

“침 발라서 하면 꽝이고 바늘로 띠는 것도 꽝이다.”

동그란 누르개로 노랗게 부풀려진 설탕에 ‘별’ 모양이나 숫자 ‘7’자 모양의 틀을 올려놓고 ‘쾅’ 소리가 나게 누르고 건네주는 아저씨의 경고는 지키지 않으면 세상이 절단 날지도 모를 만큼 준엄한 명령이었다.

만화방에서 머리의 이를 옮겨와 어머니께 흠씬 매타작을 받았던 기억도, 전축처럼 생긴 텔레비전 앞에서 김일 선수의 레슬링에 열광하던 기억도 고스란히 떠오른다.

레코드를 파는 가게. 이름도 정겨운 '좋은소리사'이다. 레코드 가게에서는 전축을 팔았고, 전파사와 도장집을 겸하는 경우도 많았다.


추억의 거리 끝에는 사진관과 의상실이 있다. 그시절 가장 흔했던 이름인 은하사진관, 명동의상실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사진관 내부의 모습. 멋진 서양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의자. 이 정경을 만나면 아마도 누구나 옛 추억에 잠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설 연휴기간 동안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다채로운 세시풍속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할아버지에게 토정비결을 보는 모습. 새해 토정비결 보기 프로그램은 현재 중앙2로비에서 열리고 있으며 23, 24일 오전 111-12시, 오후 1시에서 4시에 참여할 수 있다.  

이밖에도 레코드방과 어느 동네나 한 둘은 있었던 ‘은하사진관’, 그리고 ‘명동의상실’이 역시 그 시절 그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참으로 이상하다. 어찌 우리 동네에 있었던 상점들이 전부 이곳으로 이사와 있는 걸까? 특히 명동의상실은 동네가 명동도 아니면서 명동이란 이름을 붙였던 불편한 진실이었다. 하긴 이 명동의상실은 시골에 가도 늘 만날 수 있었지만.

겨울의 고도 낮은 태양이 인왕산 머리에 걸려 있다. 추억의 거리를 나서던 순간 앙칼지고 야무진 바람이 한 자락이 몰려온다. 그래도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훈풍이다.

추억의 거리를 구경하고 나니, 어쩌면 가끔은 두꺼운 이불이 깔려있고 연탄불 불구멍 활짝 열어놓아 따끈한 그 아랫목이 미치도록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국립민속중앙박물관에서는 설 명절 연휴 기간 중 다양한 세시풍속 행사를 열고 있다. 세시체험, 중국춘절 세시 체험, 세시 놀이, 만들기 체험, 음식 체험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펼쳐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