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며칠 뒤. 창덕궁을 찾는다. 기록적인 폭설만큼이나 기록에 가까울 만큼 긴 한파가 이어졌기에 고궁에는 녹지 않은 흰눈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눈이 덮인 창덕궁의 아름다운 설경을 어찌 서울에 사는 일부만 만끽하도록 내버려 두랴!

창덕궁엔 관람객들이 통행할 만큼의 길만 뚫어놓았다. 눈길을 따라 창덕궁을 이리저리 돌아본다.

폭설 때문일까. 인정전과 선정전, 대조전 일대와 부용지 일원과 낙선재까지가 관람 가능 구역으로 제한되어 있다.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낙선재가 관람이 가능한 것이 다행스럽다. 낙선재는 평소에도 자주 열리는 곳이 아니기에.

낙선재 앞에서 바라보는 상량정의 풍경은 창덕궁의 풍경 중에 손꼽을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아름답게 지어진 상량정. 그 아래로 낙선재의 검은 기와지붕들. 그렇게 어우러진 고궁의 풍경은 언제 보아도 질림이 없다.

지난해 봄날 매화꽃 만발했을때 낙선재를 찾았었다. 하얀 매화꽃잎이 바람에 나풀거리던 풍경. 낙선재에 흰 눈이 쌓이니 그 봄날의 풍경이 눈에 선하니 다가온다.

알다시피 창덕궁은 태종 이방원이 조선의 이궁으로 지은 궁궐이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전각들이 소실이 되었다가 선조와 광해군에 의해 중건이 끝났으나 1917년 대조전 일원이 다시 전부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소실된 전각들은 경복궁의 교태전과 강녕전을 비롯해 여러 전각들을 해체 지금의 창덕궁의 전각들로 복원하였다고 전한다. 다행히 창덕궁의 후원인 금원의 전각들은 피해를 입지 않아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보전돼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다. 창덕궁은 1997년 12월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자랑스럽고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이기도 하다.

흰눈을 가득 덮힌 창덕궁과 후원을 돌아본다. 언제 봐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우리의 고궁들. 우리의 역사가 깃든 우리의 문화재. 잘 아끼고 보존해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지길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본다.

고궁의 모든 나무들이 이파리를 떨궈내 오직 홀로 푸르른 소나무들만이 흰 눈을 덮고 있다. 그 때문일까. 문득 성삼문의 시조 한편이 떠오른다.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충신보다는 간신배가 판을 치는 시대, 창덕궁의 환상적인 설경을 바라보며 갑자기 성삼문 같은 의로운 충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흰눈이 덮히고 나니 그 꼿꼿한 아름다움이 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