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소재의 구룡마을. 구룡마을은 개포동의 대모산과 구룡산 기슭 사이에 자리 잡은 마을로 서울시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꼬방동네’다.

구룡마을로 들어서니 낡고 허름한 판잣집의 비닐지붕들이 마치 하나의 커다란 지붕처럼 엉겨붙어있고 낡은 지붕은 허옇게 바스러지고 있다.

그 남루한 비닐지붕 위로 강남의 상징이고 부의 대명사인 타워팰리스가 명품가방처럼 번들번들 빛을 발하며 솟구쳐 있다.

얼핏 보면 그 육중한 고층아파트가 바스라지기 일보직전의 판잣집들을 짓밟고 서 있는 형국이다.

몇 십 년 전의 서울에서 이런 풍경을 만나보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기억이 남아서일까? 그리 낮선 풍경만은 아니다.

구룡마을에서 만난 골목골목들이며 공중변소며 밤에 봐야 비로소 교회임을 실감하게 되는 판잣집 교회. 모두가 낯설지 않은 풍경들이다. 이런 풍경은 사실 서울의 사대문 밖에만 나가도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었다.

산허리에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며 천변 저지대는 대부분 이런 ‘꼬방동네’였다. 판자로 세운 벽체와 지붕에는 루핑이라는 콜타르를 바른 검은 비닐 막을 덮고 그 위에 다시 나무판자나 깡통을 펴서 지붕을 이은, 그때의 꼬방동네는 늘 검고 칙칙한 색이었고 후줄근한 냄새가 안개처럼 떠다녔었다.

구룡마을의 좁은 골목은 끝이 없을 것 같은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져 있고 그 골목 마다 가스통이 열을 지어 서있다.

골목 어귀에는 연탄재가 산더미를 이루고 그 옆에는 연탄재 산더미 보다 높은 재활용쓰레기들이 마치 돌탑처럼 쌓여 있다.

한낮 왕래가 뜸한 골목에는 살이 피둥피둥 찐 고양이들이 매서운 눈길로 이방인을 노려본다.

이곳에서는 고양이도 주민들도 이방인을 경계한다. 아마도 이곳까지 밀려나와 생활을 하다 보니 생겨난 피해의식 때문이리라.

원래 이곳은 주인이 따로 있는 사유지라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울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현재에 이르러 1,000가구 3,000여명의 주민으로 불어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또 이곳에는 원래 철거민 거주자인 진성거주자와 이곳이 개발될 것이란 정보를 듣고 몰래 숨어들어 온 가짜 거주자가 있다고 한다.

살 곳이 없어서 어찌어찌해서 밀려 온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틈새에서 이익을 노리고 들어온 양심을 물 말아먹은 인면수심의 사람들도 있다니 개탄스런 노릇이다.

이곳에 살던 주민들을 내쫓기 위해 서울시와 강남구가 강제철거를 준비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이 번갈아 보초를 서가며 이곳을 지키던 적도 있다고 한다. 동네 한편에 보이던 망루의 흔적. 저 망루는 삶의 마지막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이곳 주민들의 표정에는 경계심이 가득 차있다.

최근까지 물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곳. 주소가 없어서 근처 학교도 보낼 수 없는 곳. 서울시민이면서 서울시민이 아닌 사람들. 강남구에 살면서도 강남구 주민이 아닌 사람들. 이곳은 그야말로 강남의 외딴섬이었던 것이다.

허나 요즘은 그나마 전기도 들어오고 수돗물도 나오는 모양이니 다행스런 일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남의 토지를 불법 점유한 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오죽했으면 이곳까지 밀려와 이렇게 열악한 삶을 살고 있을까.

환경적이지도 못하고 도시적이지도 못한 꼬방동네 구룡마을. 이곳 주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한가지다. 이곳 마을을 고층아파트 대신 생태공원으로 조성을 하고 이곳 주민들에게도 주거지를 조성해주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쓰레기로 몸살을 앓아 황폐해진 이 마을이 생태계복원이 되고 주변 아파트단지의 주민들과도 어울려 살 수 있는 마을로 거듭나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강남구 개포동에 외딴섬 같은 마을. 구룡마을. 이 낡고 비루한 마을에도 봄이 찾아들 수 있을까. 이곳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이라는 봄이 찾아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저 높다란 고층아파트 사람들과 이웃하며 살아갔으면, 구룡산 기슭의 약수를 나눠 마시듯 같은 서울시민으로 동등한 혜택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이것이야말로 불교의 동체대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