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 공릉동에 자리 잡고 있는 태릉은 문정왕후의 능이다. 문정왕후는 조선의 제11대 왕 중종의 두 번째 계비이자 제13대 왕 명종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연산군을 쫓아 낸 권신들에 의해 왕위에 오른 중종은 힘이 없었다. 중종이 많이도 사랑했던 첫 번째 왕비인 단경왕후 신씨는 산하들에 의해 폐서인이 됐고 두 번째로 맞은 장경왕후 윤씨는 원자 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죽었다. 그리고 중종이 다시 맞아들인 왕비가 문정왕후 윤씨였다. 처음에는 세자(인종)의 방패막이로 왕비가 되어 중전의 자리에 올랐지만 신하들에 치임만 당하는 중종만큼이나 힘없는 중전이 문정왕후였다.

참도를 따라가며 본 태릉의 전경. 문정왕후의 능이다.
 

태릉 정자각의 고풍스런 모습.


능침 아래 자리한 멋들어진 향나무의 모습. 시민들이 왕릉을 즐겨찾는 이유는 이런 아름다운 경관 때문이기도 하다.

딸만 내리 낳던 문정왕후는 늦은 나이에 왕자를 얻게 되었고, 단경왕후가 폐서인이 된 전후사정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자신의 안위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들인 경원대군의 안위까지 걱정하게 되었다. 문정왕후는 치밀한 계획을 짜고 적극적으로 정쟁에 뛰어들어 조금씩 힘을 키우기 시작한다. 그 세력이 바로 그 유명한 윤원형과 그의 첩 정난정으로 사극에서도 자주 등장해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인종이 왕위에 오르기는 하지만 병약했던 인종은 즉위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인종의 뒤를 이어 명종이 즉위하고, 이때부터 문정왕후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바로 명종의 등 뒤에서 국정을 관장하는 수렴청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미 정치에 눈을 뜬 문정왕후는 권신들을 일소하고 강력한 권력을 손에 움켜쥐게 되었다. 모든 신하들은 문정왕후의 손아귀에서 쥐락펴락 당했고, 나라는 문정왕후의 뜻대로 움직였다. 워낙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보니 문정왕후는 훗날 중국의 측천무후에 비견되기까지 했다.

능침은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소중한 문화재이다. 개방되지 않은 곳을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날씨가 좋으면 왕릉의 모습은 더욱 아름답다.


정자각과 능침을 한 눈에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그 아름다운 풍광을 렌즈에 잡았다.

당시는 숭유억불정책의 시대였지만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문정왕후에 의해 불교는 제2의 중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문정왕후는 허응당 보우 스님을 봉은사로 모셔와 주지로 앉히고 불교를 육성하기 시작했다. 승려가 출가했을 때 국가가 허가증을 발급하여 신분을 공인해 주던 제도인 도첩제를 실시해서 승려 4,000명을 양성하였고 전국적으로 300개의 사찰을 공인하기도 하였다.

유교의 나라 조선의 분위기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당시 문정왕후의 위세를 막을 자는 없었다. 그녀의 힘이 얼마나 막대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정왕후는 자신의 사후에 남편인 중종의 옆에 묻히기 위해 서삼릉에 있던 정릉을 풍수가 좋지 않다는 핑계로 현재의 봉은사 옆으로 이장시켰다. 그리고 봉은사를 능침사찰로 삼으면서 자신의 사후를 준비해 놓았다. 하지만 생전에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아도 사후의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 문정왕후가 죽고 나자 새로 옮긴 정릉이 홍수피해가 잦다는 이유로 끝내 중종의 곁에 눕지 못하고 지금의 태릉에 홀로 쓸쓸하게 묻히고 말게 된 것이다.

그래도 그녀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무덤은 여느 왕에 비해도 그 규모가 크면 컸지 모자람은 없었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후대에 조선의 측천무후에 불렸던 문정왕후는 실제로 측천무후에 뒤지지 않을 만큼 탁월한 정치력을 갖춘 정치가로 사가들도 인정하고 있다.

태릉조선왕릉전시관에 옛날 국장을 치르는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한 눈에 조선 국장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어 교육용으로도 그만이다.


전시실 복도에 재현해 놓은 능을 지키는 문인 석상들. 가까이에서 석상의 조각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어 좋다. 


숲이 울창한 태릉의 탐방로 풍경.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산책길은 사색을 하며 걷기에 그만이다.

그녀가 묻혀있는 태릉을 찾았다. 낙엽이 휘날리고 있는 능역을 돌아본다. 문정왕후의 모습이 눈앞에 어리는 듯하다. 불교가 최악의 상황이었던 조선시대에 불교를 일으켜 세운,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더 없이 큰 은인인 문정왕후. 그러나 현재의 한국불교계는 태릉이 문정왕후의 능인지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인과를 가르치는 불교계에서 정작 불교를 일으킨 왕후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있으니 인과를 공부하는 곳인지 의아할 정도다. 적어도 한국 최대사찰로 우뚝한 강남의 큰절 봉은사는 문정왕후가 묻혀 있는 태릉을 각별하게 대해야 마땅할 것이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활엽수들처럼, 문정왕후와 관련된 숱한 이야기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지만 그녀의 무덤은 아름다운 늦가을 풍경으로 남아 이렇게 후인들에게 사색의 오솔길을 오롯이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