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뽑는 선거일이 꼭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현재까지 총무원장 출마를 선언한 스님이 종하, 각명, 대우 스님 등 세 분이지만, 자승, 정념, 도영, 월서 스님 등도 출마의 뜻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총무원장 선거를 한 달 앞둔 현재 적어도 6∼7명의 후보가 총무원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으로는 후보에 대한 ‘검증’이 급부상했다. 향후 종단을 이끌어갈 방향을 제시하는 종책보다는 총무원장감이 될만한 인물을 찾는데 초점이 맞춰진 분위기가 우세하다.
총무원장 선거에서 후보에 대한 검증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따라서 어떤 명분으로도 총무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분들에 대한 공개적 검증이 방해나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된다. 종교지도자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철저한 도덕성과 청청성을 요구받게 마련이다. 더구나 조계종은 이른바 정화(淨化)에 의해 세워지고, 정화 이념에 의해 존속되는 종단이 아닌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금의 종단 상황은 후보 검증을 요구하거나 제기하는 것이 조금씩 불편해지는 듯하다. 어지간한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감히 유력 예상후보에 대해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은 '음험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하다.
만에 하나 선거에서 최고의 파워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종회 의원들과 공정하게 선거를 관리해야할 총무원 집행부의 일부 부서가 후보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누르려는 힘을 행사하고 있다면, 이번 총무원장 선거가 공명선거로 치러지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현 총무부장이 선거관련 종책토론회 개최의 한 주체가 되겠다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다는데 동의하지만, 그 사건을 두고 초선 종회의원들이 즉각적으로 총무원장을 찾아가 강력한 요구를 하는 모양새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자칫 총무원장에 대한 압박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우려 성명’ 정도가 적절했을 것이다.
또한 최근 각신 스님이 기자회견을 열어 한 유력 예상후보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자, 즉각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법적 제재를 하더라도 조용히 추진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또 법적 대응 이전에 ‘공개적인 문제제기’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이 먼저가 아닐까. 문제제기가 얼토당토하지 않다는 점을 백일하에 밝히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명예회복 방법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검증과 관련된 움직임을 어렵게 만드는 정황들이 거듭되다보면, 후보들에 대한 검증의 목소리는 초가을의 기운 빠진 모깃소리처럼 미미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번 제33대 총무원장 선거의 경우, 이전 선거와는 몇 가지 점에서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첫째, 계파가 됐든, 특정한 실력자를 중심으로 한 연합이 됐든 중앙정치 무대에서 치열한 각축을 벌였던 중앙종회가 유력 예상후보 중의 한 분에 의해 사실상 평정됐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 유력 예상후보에 대한 검증여부가 후보등록 이전인데도 선거의 이슈를 독점하고 있는 점이다. 셋째는, 총무원 집행부의 일부 부실장들이 지관 총무원장 스님의 거듭된 공명선거 의지표명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휩쓸리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각 후보 또는 예상후보들이 내세우는 종단의 비전이나 종책들은 아예 뒷전이 되었거나, 뒷전이 될 전망이고, 오직 후보에 대한 검증논란만이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이는 마치 지난 대선에서 후보들간의 정책대결보다는 유력 후보에 대한 검증이 선거를 이끈 주 이슈였던 점과 비교된다. 이번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도 ‘특정후보 대 특정후보와 관련된 각종 루머’의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검증 만큼이나 중요한 종책 경쟁이 가능하도록 후보자간 합의가 절실한 이유다.
“총무원장 선거, 그거 다 끝난 거 아닌가?” 선거를 한 달 앞둔 현재 대다수 종회의원들에게서 이구동성으로 듣는 이야기다. 선거를 해볼 것도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의혹이 제기되면 내용을 소상히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의혹을 제압하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런 흐름은 종책이나 검증을 통한 공정한 경쟁이 아닌 세력, 세몰이로 총무원장을 세울 수도 있다는 매우 걱정스런 정황이 아닐 수 없다.
정황이 이렇다보니 여타후보들의 출마결심 기준이 한 유력 예상후보가 그를 둘러싼 루머를 극복하지 못하고 낙마할 것인가, 아니면 헤치고 완주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는 분위기다. 이런 선거분위기는 총무원장 선거를 통해 종단이 새로운 변화와 쇄신, 이를 통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기회를 무산시킨다는 점에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선거는 공정한 룰에 의한 경쟁이다. 선거에는 상대가 있고, 승리를 위해 경쟁이 과열되다보면 불가피하게 혼란을 부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런 과정을 통해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고, 새 지도자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는 계기를 만드는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선거의 과정 중에 매우 중요한 절차 중의 하나가 후보에 대한 검증이다. 후보의 이력을 촘촘히 되살펴 보고, 의문점에 대해서는 후보 입장에서는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검증과 평가가 필요하다. 검증은 청정비구(니)종단이며 한국불교 장자종단인 조계종의 대표자가 될 사람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의례가 아닐 수 없다. 검증에 통과할 자신이 없다면 출마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이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은 출사표를 통해 공통적으로 철저한 검증의 필요성에 대해 목청을 높이고 있다. 종단을 위한 원력과 평소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절대다수의 불자들은 새 총무원장이 도덕성과 청정성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고 응답한 바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검증이 ‘키워드’로 등장한 제33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후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통해 인천의 사표가 될 자격을 갖춘 분을 총무원장으로 선출하기를 사부대중은 바라고 있다. 10월 22일 총무원장 선거일은, 검증을 거뜬하게 통과하고 잘 준비된 종책을 제시한 지도자를 여법히 선출함으로써 한국불교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 축제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