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방송은 음성을 통한 포교라는 불자들의 여망으로 탄생한 불교계의 매우 중요한 공공재이다. 많은 불자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불교방송은 따라서 모든 불자의 방송이기도 하다. 불교방송의 이사로 주요종단과 주요사찰, 그리고 불교진흥원과 몇몇 신심 장한 불자들이 참여한 것도 이런 사부대중의 바람을 대변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개국 20년을 넘긴 불교방송이 그동안, 특히 최근 들어, 불자들에게 보여준 모습은 기대를 저버린 것이었다. 고질적인 파벌조성과 대립, 다툼들. 이사장과 사장 임명과 선출을 둘러싼 볼썽사나운 모습 등은 불자들의 실망을 자아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 모습은 최근 몇 년 간 더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어느 것 하나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것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는 게 불교방송을 바라보는 교계의 여론이다.

불교방송에서는 사회 통념상 객관적이고 정상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일들이 관행처럼 지속되거나 벌어지고 있다. 21세기 선진국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는 한국사회에서, 그것도 가장 모범적이어야 할 방송사에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어떻게 버젓이 진행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불교방송 개국 초기의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만들어지고 적용된 기준들이,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았을, 모든 것이 달라진 오늘날까지, 20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승려 이사는 정관에 소속 종단 대표의 추천서를 첨부해야 한다는 규정은 그동안 지켜지지 않아 왔다. 94년 종단개혁 이후 겸직금지로 인해 사문화된 조계종 총무원장의 당연직 이사 규정이 아직도 폐기되지 않았다. 이사장은 조계종 승려 가운데 해야 한다는 독소적 규정도 시급히 폐기해야 할 조항이지만 난공불락처럼 굳건하게 살아 있다. 이사장을 조계종 승려가 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더 웃긴 것은 이사 자리가 무슨 유산처럼 승계되고 있는 점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아내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아들이 이사직을 승계한다. 참으로 해괴한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어느 방송에 이런 제도가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설립 당시 대한불교진흥원(이하 진흥원) 이사장을 불교방송 사장으로 선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진흥원의 사장 추천권 제도가 개국이후 20년 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살아 있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스님들은 스님들이라서 그렇다 하더라도 교육수준도 높고 사회에서도 성공한 덕망 있는 분들로 구성된 진흥원 이사들이 마치 권력처럼 사장추천권을 움켜쥐고 있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나마 이런 문제투성이 규정들도 힘 있는 자의 편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되거나 적용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으니 더 큰 일이다. 규정에 의해 사장 후보를 추천해도 힘 있는 이가 내키지 않다며 무시하면 그만이다. 내키면 따르고, 내키지 않으면 따르지 않아도 되는 엉터리 규정으로 방송사가 운영되고 있으니 방송사가 발전한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불교방송이 발전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점증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과보일 것이다. 최근에는 이대로 가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있는 듯 없는 듯 하던 노조가 최근 부쩍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불교방송이 처한 현실이 그만큼 다급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제 불교방송의 발전을 가로막는 시대착오적인 제도는 시급히 폐기하거나 고쳐야 한다. 특히 이사장과 감사를 독점하고 있으며 당연직 이사자리는 물론 승려 이사의 추천권한까지 갖고 있는 조계종의 대표자, 즉 총무원장은 불교방송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 당사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불교방송의 일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하면서 만에 하나 물밑에서 정치적 거래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종단 소속 승려의 이사추천 제도가 정관의 규정에 있으면 이를 실행해야 하고, 이사장과 감사가 한 종단의 승려로 되어 있는 것도 상식적으로 분리해야 맞다. 감사 자리는 감사 전문가에 맡겨야 하는게 정상이 아니겠는가.

이사를 유산처럼 대를 이어 승계하고 양도하는 제도도 이제는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해괴한 제도는 정말이지 소가 웃을 일이기 때문이다.

진흥원도 오늘날 불교방송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데 일조한 당사자임을 우선 깨달아야 하고, 당장 불교방송 사장추천권부터 스스로 반납해야 할 것이다. 불교방송에 연간 수억을 지원하고 있다는 이유로 추천권을 고집한다면, 그들이 그토록 비판하고 있는 종단의 대표들(스님)과 다를 게 무엇인가. 불교방송 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진흥원 이사가 5명에 이르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본다.

최근 불교계에는 오는 8월 11일 열리는 불교방송 이사회에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이번 이사회가 주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이사회에서는 임기 만료로 새로이 선출될 불교방송 이사장의 향배 문제, 그리고 불교방송 새 사장 선출 문제라는 중차대한 두 가지의 안건이 다뤄지게 된다.

특히 불교방송 이사장이 누가 될 것인가를 두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 이사장이 재임할 것이냐, 아니면 새 이사장이 선출될 것인가를 놓고 갖가지 설이 분분하다. 문제는 불교방송의 정상화와 미래를 누가 잘 이끌 수 있을 것인가가 논의의 중심이 아니라 종단의 여러 정치적 역학관계가 더 많이 거론된다는 점이다. 불교방송 이사장 자리가 ‘매체포교의 중심기관인 불교방송을 발전시킬 적임자가 누구냐’라는 기준에서 정해지지 않는다면 불행한 일이다. 불교방송의 운영에 사실상 무한책임을 지고 있는 조계종 총무원장이 정치논리를 배제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계종 이사들이 11일 이사회를 앞두고 9일 안팎 회합을 갖는다는 소식이다. 9일의 회합은 정치적 거래나 나눠먹기, 권력 분배의 자리가 아니라 불교방송을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인물이 이사장에 선출되는 것이 옳은가를 객관적이고 합리적 기준에서 고민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기회에 불교방송 정관 중에서 온갖 불합리한 것들을 거둬내고, 21세기에 맞는 합리적이고 모범적인 규정을 도입하는 건설적인 논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진흥원 이사들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일로 감정 대립을 하거나, 그동안 행사해온 권한을 지키려 하지만 말고 우리 사회 통념상 가장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용단을 스스로 내려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사장후보 추천권에 연연할 것인가.

부디 8월 11일 열리는 불교방송 이사회가 불교방송이 진정 살아나는 일대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 일대 전기는 불교방송의 발전을 위해 가진 것을 포기하고 상식과 시대의 변화에 맞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며, 그 기준에 충실할 때 마련될 수 있음은 두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