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의 사찰들이 가장 많이 치르는 불사가 천도재가 아닐까 한다. 천도재가 없으면 사찰운영이 안 된다는 말도 있고, 천도재를 강요해 이런저런 민원을 일으키는 곳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 대찰은 몇 해 전부터 천도재를 대대적으로 치르고 있어, 눈총을 받고 있기도 하다.
사실 천도재는 얼마 전까지도 사찰에서 그리 많이, 자주 행해지던 불사는 아니었다. 천도재 보다는 방생이나 사리친견이 불자들에겐 더 친숙한 말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천도재가 사찰행사의 중추적인 위치를 점했다. 49재를 봉행하는 정도로 재를 치렀던 이제까지의 관례는, 매주 재를 올리는 7*7재로 그 횟수가 늘어났고, 심지어 49재를 49회 동안 하는 불사까지 생겨났다. 천도재가 재정적인 면에서 다른 어떤 불사보다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라고 표방하고 있는 어떤 종단 비슷한 한 단체는 불자들에게 반 겁을 주면서 천도재를 강요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곧 뉴스에 터져 나올 것이라고 걱정을 하는 목소리도 있다. 천도재 남발의 부작용이 어느 덧 표출되는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항간에는 한국불교는 죽은 귀신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신세가 되어버렸다는 탄식도 들린다. 다른 종교는 천도재 없이도 잘 살아가고 있는데, 사찰은 천도재 없이는 살기가 빠듯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불교가 산 사람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죽은 사람을 위한 종교가 되었다는 이야기, 절에서는 죽어서 가야 대접을 받지, 살아서 가면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 등이 절집 안팎에서 심심치 않게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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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많은 천도재가 엊그제부터 다시 절집의 화제가 되고 있다. 조계사 새 주지로 온 스님이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대대적으로 열어 진 빚을 갚겠다고 취임사를 통해서 선언한 것이 그 발단이 되었다. 다른 절이 아닌 한국불교 대표사찰 주지스님의 말씀인 터라 즉시 이런저런 논란이 가열되는 중이다.
다 알다시피 조계사 일주문에는 ‘한국불교총본산’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조계사가 한국불교의 총본산일 수 있는가에는 여러 이설이 있을 수 있으나 수도 서울의 중앙에 위치해 있고 장자종단인 조계종 총무원을 경내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에는 공감하는 이가 적지 않다.
조계사는 그래서 다른 절과는 달라야 한다. 조계사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사들은 한국불교 전체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귀감이 되어야 한다. 보다 불교 본연의 기능에 충실해야 하고, 가급적 미래지향적이어야 하고, 진취적이어야 한다. 조계사의 모든 프로그램은 마땅히 그런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스스로 내세운 것처럼 한국불교총본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마땅히 그래야할 조계사가 머잖아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하는 목탁소리가 끊이지 않는 사찰이 될 것 같다.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지내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찰로 조계사가 자리매김할 것만 같은 염려가 밀려온다는 뜻이다.
솔직히 천도재는 우리나라 사찰들에게 가장 큰 수입원을 제공하는 불사다. 현실적으로 절에서 천도재를 지내지 말라고 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찰이 중생들에게 베푸는 여러 기능 중의 하나일 뿐, 전적으로 매달릴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아울러 지적하고 싶다.
더구나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대대적으로 벌이려는 취지가 조계사가 지고 있는 빚을 갚기 위해서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으니, 결국 돈벌이가 목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내외에 밝힌 셈이다. 경솔한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방편은 방편일 뿐이다. 방편이 주가 되고 본질이 부가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절은 불교를 배우는 곳이다. 또 배운 불교를 실천하는 곳이다. 그렇게 해야 불교를 삶의 지침으로 삼는 사람이 늘어난다. 불교가 어떤 것인가. 부처님께서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라고 당부했을 정도로 소중한 가르침이 아닌가. 바로 이것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가르쳐 주는 곳이 절이다. 절의 기능은 불교를 선양하는 것이 최선이어야 한다. 나머지는 모두 부수적인 것이고 방편들이다.
불자로 알려졌던 유명인들 가운데도 개종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불자대통령이라고 떠들썩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얼마 전 개종을 했다는 소식이고, 박태준 전 포철회장도 몇 해 전 개종했다. 10.26사태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 대장도, 가수 한명숙 씨도, 대시주보살이었던 장영자 씨도, 탤런트 김해숙씨나 삭발머리의 조춘 씨도 개종을 했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은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개종을 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들이 한때 불자라고 불렸지만, 사실상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인연으로 절에 다녔거나, 스님들과의 인연으로 불자가 된 것이지 진정한 의미의 불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고, 무상, 무아의 진리나 고집멸도, 팔정도의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속으로부터 이해하고 이 가르침을 자신의 삶의 지침으로 삼기를 서원한 진정한 의미의 불자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그렇게 줄줄이 개종의 대열에 섰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들이 불교를 정말로 제대로 알았다면 개종을 했을까. 불교는 제대로 알기만 하면 개종이란 말이 있을 수 없을 만큼 수승한 가르침이 아닌가. 따라서 이런 경우는 개종이라기보다는 환종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천도재, 방생, 사리친견, 예수재, 구병시식 등의 '불사'는 다 소중하고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절집의 행사들이다. 거기에 이론을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런 행사들은 어디까지나 불자들의 힘겨운 삶을 도와주고 달래주는 방편들이지 본질은 아니다. 절이 여기에 중심을 두거나 매달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
거듭 강조하지만 불교의 본질은 불교를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찰에서 운영하는 모든 프로그램의 방점이 찍혀야 한다. 주객이 전도되고, 본말이 뒤바뀌면 모든 게 엉망이 된다. 특히 그런 일이 조계사와 같은 가장 핵심적인 곳에서 벌어진다면 그 과보는 더 끔찍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앞으로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대대적으로 봉행하겠다는 조계사 새주지 스님의 취임일성이 몹시 걱정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런 염려가 기우이길 바란다.
